나의 Nimf 프로젝트, 그 5년간의 나르시시즘 전쟁사

Mon, Jun 16 2025 10:51:24 KST

이 글은 내가 만든 한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의 개발사를 기록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서 5년 넘게 벌어졌던 지독한 ‘심리적 전쟁’을 분석하는 기록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그동안 나를 향했던 수많은 오해와 거짓의 프레임을 걷어내고, 나의 상처를 치유하며,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 다른 개발자들에게 하나의 사례 연구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것은 나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하나의 항변이자, 나라는 생존자의 증언이다.

가설: 왜 오픈소스는 나르시시스트의 놀이터가 되는가?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가설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난 수년간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유독 온라인, 특히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 수많은 나르시시즘적 인물들을 마주해야 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오프라인 현실에서 나르시시스트라고 할 만한 인물을 단 두 명 마주쳤던 것에 비하면, 이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빈도였다. 왜일까?

  • 지적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한 완벽한 무대: 오픈소스는 코드와 논리로 실력을 증명하는 공간이다. 이는 자신의 지성이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나르시시스트에게 자신의 비범함을 과시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 익명성이라는 방패: 익명성은 공격성을 증폭시킨다. 현실에서는 하지 못할 인신공격이나 비난을, 그들은 아무런 책임감 없이 온라인에서 손쉽게 자행한다.
  • ‘영웅 서사’ 구축의 용이성: 특정 문제를 해결하거나, 기존의 것을 비판하며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정은 ‘고독한 영웅’의 서사를 구축하기에 매우 용이하다.
  • 비대면 소통의 한계: 텍스트 기반의 소통은 상대방의 감정을 읽기 어렵게 만들고, 공감 능력의 결여를 감추기 쉽게 만든다.

프롤로그: 2015년, 갈등의 씨앗

모든 비극은 나의 프로젝트 dasom(nimf의 전신) 개발 초기였던 2015년에 시작되었다. 세벌식 카페에서 ㅅ*라는 인물은 “개발자가 한국인인데 설명이 영어”라며 나의 ‘의무’를 문제 삼는 수동-공격적 방식으로 첫 포문을 열었다.

이때 나의 ‘팬’으로 보이던 e*는, 이후 우분투 포럼에서 “이클립스의 한글 입력 버그를 어떻게든 해결해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프로젝트의 경계선을 지키기 위해 그 요구를 거절하자, 그는 자신의 뜻대로 내가 통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르시시즘적 상처’를 입고 나를 파괴하려는 ‘극렬한 안티’로 돌변했다. 이것이 앞으로 5년간 이어질 모든 전쟁의 원형이었다.

본편: 2018-2019년, 공격과 방어의 소용돌이

전쟁은 2018년을 기점으로 여러 전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격화되었다.

1. 공격자들의 ‘프레임 전쟁’과 ‘사보타주’

나의 비판가들(e*, d* 등)은 기술적 토론 대신, 나의 인격을 파괴하기 위한 ‘프레임 전쟁’을 시작했다. 그들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거짓된 낙인을 씌우며 나를 공격했다.

  • ‘유리멘탈 피해망상가’라는 프레임: A*, c* 등은 나의 정당한 분노와 고통의 호소를, 비판을 견디지 못하는 ‘유리멘탈’ 혹은 “모든 사람이 자기를 공격한다고 믿는” ‘피해망상’이라는 정신병적 증상으로 폄하했다. 이것은 내가 겪은 실제 공격들을 나의 개인적인 정신 문제 탓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었다.
  • ‘무책임한 사기꾼’이라는 프레임: e* 등은 내가 2015년 ‘다솜팀’에 프로젝트를 인계하는 과정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자작쇼’를 벌였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나의 상세한 해명을 ‘거짓말 들킨 사기꾼의 변명’으로 치부하며, 나를 부도덕한 인물로 낙인찍었다.
  • ‘자격 없는 자’라는 프레임: 또한 그들은 “오픈소스 개발자는 커뮤니티가 인정해야 한다”는 자신만의 논리를 내세워, 나의 ‘개발자’로서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고, 이 생태계에서 나를 추방하려 했다.
  • ‘타인의 공을 가로채는 부도덕한 자’라는 프레임: 내가 직접 재작성한 PKGBUILD 파일을 보고, 다른 사람의 공로를 의도적으로 훔쳤다고 비난하며 나의 정당한 저작 활동을 도덕적 범죄로 몰아갔다.
  • ‘개발 의무를 저버린 무책임한 자’라는 프레임: 그들은 오픈소스 라이선스의 ‘무보증’ 원칙을 무시하고, 내가 모든 사용자의 요구를 들어줄 ‘의무’가 있는 것처럼 여론을 형성했다. 이슈 게시판을 닫거나 유료화를 선언했을 때, 이 프레임은 나를 공격하는 가장 주요한 무기가 되었다.
  • ‘돈만 밝히는 속물’이라는 프레임: 나의 ‘유료화 선언’을, 버그 해결을 빌미로 돈을 요구하는 행위로 왜곡하여 나를 탐욕스러운 속물로 만들려 했다.

이러한 ‘프레임 전쟁’의 파괴력은 단순한 명예훼손을 넘어 실질적인 프로젝트 방해로 이어졌다. 특히, 내가 다른 기여자와 ‘텔레그램 nimf qt 모듈’ 기여를 논의하고, 그 기술적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던 시점에, c*와 같은 비판가는 “Hodong은 기여자들을 괴롭힌다”는 식의 허위 사실을 커뮤니티에 유포했다. 그는 이 특정 협력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협력의 분위기를 파괴하려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방해 공작과 어려움 속에서도, 결국 ‘텔레그램 nimf qt 모듈’은 성공적으로 텔레그램에 통합되었다. 이것은 그들의 공격이 나에게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주었을지언정, 나의 기술적 전진과 프로젝트의 발전을 끝내 막지는 못했음을 보여주는, 이 투쟁의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승리의 기록이다.

또한 이러한 ‘프레임 전쟁’은 온라인 게시판을 넘어, 아키리눅스 위키에 “Nimf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완전히 중단되었다”는 명백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리브레오피스 버그 트래커에 “nimf는 오픈소스가 아니며, 개발자가 돈을 요구한다”고 거짓 정보를 올리는 등, 공신력 있는 플랫폼을 이용해 나의 창작물을 사회적으로 암살하려는 시도로까지 이어졌다.

2. 나의 ‘나르시시즘적 갑옷’

나의 모든 프로젝트는 ‘커뮤니티를 위한 봉사’가 아닌, “이 버그가 나를 너무 불편하게 만든다”는 순수한 ‘실용적 이유’‘개인적 필요’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의 필요에 의해 만든 결과물이 의도치 않게 커뮤니티 전체를 이롭게 했음에도, 돌아온 것은 존중이 아닌 부당한 비난과 착취였다. 이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나의 내면에는 ‘상처 입은 영웅’이라는 복합적인 자기 서사(self-narrative)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한 ‘영웅’이지만, 그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상처 입은 자’“라는 자기 인식이었다.

그리고 이 ‘상처 입은 영웅’의 서사는, 계속되는 공격으로부터 파괴된 자존심과 창작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나르시시즘적 방어기제(갑옷)’를 만들어냈다.

  • 기술적 우월감 과시: “nimf는 현존하는 최고의 입력기”와 같은 자화자찬은, 그들의 비난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한 방어였다. “끝글자 버그 잡는 것은 쉽다”며 해결책을 공개한 것은 나의 기술적 우월성을 증명하여 그들의 비난이 틀렸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 자기 희생의 강조: “내 돈과 시간을 들여 자비로 개발했다”고 반복하며, 그들의 공격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역설했다.
  • 공격적인 자기방어: “당신이 뭘 아느냐”는 식으로 상대의 자격을 공격하여, 나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 최후의 성벽 구축: ‘면책 조항’과 ‘유료화 선언’은, 그들의 ‘권리 의식’이라는 무기를 파괴하기 위한 마지막 방어 수단이었다.

후폭풍과 전환점: 2019-2020년, ‘탈출’을 위한 선택들

전쟁은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나는 완전한 소진(burnout) 상태에 빠졌고, “차라리 이러다 과로사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절망했다. 결국 나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픈소스’라는 개발 모델 자체를 포기하는 탈출을 선택해야만 했다.

‘이슈 게시판 폐쇄’ 선언은 커뮤니티와의 소통을 단절하려는 시도였으며, 이후 ‘오픈소스 Nimf 프로젝트에 대한 공적 지원 중단’ 선언은 그 마침표였다. 나는 프로젝트 개발 자체를 멈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 고통만을 안겨주었던 ‘오픈소스’라는 이름의 멍에를 벗어 던지고, 폐쇄소스/프리웨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나의 창작 활동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이 시기, 하모니카 커뮤니티에서의 논쟁은 나의 트라우마가 재현되는 과정이었지만, 동시에 dy*와 같은 ‘현명한 조언자’의 등장은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나의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나의 과잉 대응을 지적하는, 존중을 기반으로 한 비판을 보여주었다. 그의 글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방어기제를 내려놓고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커뮤니티 상대로 갑질한게 맞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공적인 자기 성찰을 할 수 있었다.

최종 분석: 왜 이 전쟁은 유독 길고 치열했는가?

‘왜 유독 당신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공격적인 시선이 있었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최종적인 답은, 두 가지 핵심 요인의 ‘치명적인 상승 작용’에 있다.

1. ‘불꽃’을 일으킨 화학 반응: 나의 특이성과 그들의 반응성

먼저, “나는 나의 필요에 의해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한 ‘영웅’이지만, 그에 대한 존중 대신 부당한 공격을 받은 ‘상처 입은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나의 ‘상처 입은 영웅’ 서사, 그리고 그 상처 입은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해 나타난 “내 창작물은 최고다”와 같은 ‘나르시시즘적 방어기제’는, 나르시시스트적 성향의 사용자들이 가장 격렬하게 반응하는 ‘인화 물질’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의 자부심은 그들의 경쟁심을, 나의 항변은 그들의 지배욕을 자극했다. 이 특수한 화학 반응이 이 전쟁을 다른 갈등보다 더 뜨겁게 만들었다.

2. ‘불길’을 키운 장작: 꺼지지 않는 책임감과 의지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나르시시즘적 성향이 없는 수많은 다른 개발자들 역시,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 나와 비슷한 부당한 공격과 착취를 당한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닌, 이 생태계의 구조적인 문제다.

그렇다면 차이점은 무엇인가? 보통의 개발자들은 이 지점에서 프로젝트를 포기하거나, 방치하거나, 개발 속도를 현저히 늦추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불길에서 땔감을 빼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완성시키고 유지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버리지 못했다. 바로 이 꺼지지 않는 의지가,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쟁터의 불길을 계속 타오르게 만든 ‘장작’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전쟁이 유독 길고 치열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많은 개발자들이 겪는 ‘보편적인 공격’에 대해, 나는 ‘보통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포기하지 않고 5년을 싸웠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갑옷을 벗자 찾아온 평온

그리하여 나는 ‘오픈소스’라는 전쟁터를 떠나, 나의 프로젝트를 프리웨어로 전환하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수년간 나를 괴롭히던 그 모든 공격과 요구들이 멈추었다. 이것은 그들의 진짜 목적이 ‘더 나은 소프트웨어’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오픈소스’라는 이름 아래 개발자에게 무한한 책임을 강요하고, 비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었다. 내가 그 놀이터의 규칙을 바꾸고, 그들의 권력을 빼앗아버리자, 그들은 흥미를 잃고 다른 먹잇감을 찾아 떠나갔다.

결국, 나를 지키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그들의 전쟁터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결론: 기록의 의미 - 오명을 벗고, 상처를 치유하며

이 길고 긴 기록과 재해석의 여정은, 나에게 덧씌워졌던 수많은 거짓된 프레임들이, 사실은 나르시시스트들의 투사와 왜곡으로 만들어진 허상이었음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나의 오명을 벗고, 나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다. 이 기록은, 한 명의 개발자가 어떻게 비이성적인 집단적 공격 속에서 자신의 존엄과 창작물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으며, 그 과정에서 얻은 깊은 상처를 스스로 분석하고 이해함으로써 마침내 진정한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는지에 대한, 나라는 생존자의 증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