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남긴 배신감을 극복하기까지: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 후 트라우마 치유 일지

Sun, Jun 15 2025 22:20:39 KST

관계는 끝났다. 연락처를 차단했고, 더 이상 그 사람을 만나지도 않는다. 물리적으로는 완벽하게 헤어졌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전쟁이 계속된다. 밤이 되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감정, 바로 지독한 ‘배신감’이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 후 남는 배신감은 일반적인 이별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것은 단순히 약속이 깨진 것에 대한 실망감이 아니다. 내가 믿었던 ‘관계의 현실’ 전체가, 나의 ‘진심’이, 그리고 ‘나 자신’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영혼에 남는 상처에 가깝다.

오늘은 이 깊고 끈질긴 배신감의 실체를 해부하고, 이 고통스러운 감정의 터널을 통과하여 진정한 치유에 이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치유 일지’의 형식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배신감’의 해부학: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고통스럽게 하는가?

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내가 느끼는 배신감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1. 나의 ‘현실’이 부정당했다

가장 큰 고통은, 내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사실은 한 사람의 ‘연극’이었을지 모른다는 깨달음에서 온다. 행복했던 기억, 사랑의 속삭임, 우리가 함께 쌓았다고 믿었던 그 모든 세계가 사실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을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은 나의 현실 감각을 송두리째 흔들고, 가스라이팅의 후유증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의심하게 만든다.

2. 나의 ‘진심’이 이용당했다

내가 베풀었던 순수한 공감, 연민, 그리고 사랑. 이 가장 아름다운 감정들이 상대에게는 그저 자신의 자존심을 채우는 ‘연료(나르시시스트적 공급원)’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깊은 모멸감을 느낀다. 나의 가장 좋은 점이, 오히려 나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던 것이다.

3. 나 자신에 대한 배신감

결국 모든 분노는 나 자신에게로 향한다. “나는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그 명백한 위험 신호들을 왜 무시했을까?”. 상대를 탓하는 단계를 지나, 자신을 기만하고 방치했던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기 배신감’의 늪에 빠지게 된다.

치유의 여정: 배신감을 다스리는 3가지 방법

이 깊은 배신감의 늪에서 걸어 나오기 위해서는,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치유의 노력이 필요하다.

1. 기록하기: 흩어진 현실의 조각을 맞추는 일

가스라이팅이 남긴 혼란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객관적인 기록’이다.

실천 방법: 더 이상 감정만 기록하지 마라. 있었던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지 날짜와 함께 구체적으로 적어보라. 당신의 기억이 흔들리고 “혹시 내 착각이었나?”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기록은 당신의 편이 되어줄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진실의 증거’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해 당신은 가해자가 만들어낸 거짓 서사에서 벗어나, 당신만의 온전한 이야기와 현실 감각을 되찾게 될 것이다.

2. 이야기하기: 고립의 감옥에서 걸어 나오는 일

나르시시스트적 학대는 종종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은 나뿐일 거야”,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라는 수치심 속에 가둔다.

실천 방법: 신뢰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당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라. 친구도 좋고, 가족도 좋다. 중요한 것은 당신을 비난하거나 섣불리 조언하려 하지 않고, 당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외부의 건강한 시선을 통해 나의 경험을 검증받는 것은, 나의 현실 감각을 회복하고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위안을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3. 전문가의 도움 받기: 나의 ‘상처’를 정확히 진단하는 일

때로는 우리의 상처가 스스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깊고 복잡할 수 있다. 그럴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용감한 선택이다.

실천 방법: 트라우마나 나르시시즘적 학대 관련 전문성을 가진 심리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라.

기대 효과: 전문가는 당신이 겪은 혼란스러운 경험에 ‘트라우마 본딩’, ‘가스라이팅’과 같은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어, 당신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또한 인지행동치료(CBT) 등 검증된 방법을 통해, 트라우마로 인해 생긴 왜곡된 사고방식을 교정하고 건강한 자아상을 회복하는 구체적인 길을 안내해 줄 것이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가 남긴 배신감을 극복하는 여정은 길고, 때로는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좋은 날과 나쁜 날이 반복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잊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상처’가 아닌 ‘성장’으로 다시 써 내려가는 것입니다. 배신은 그들의 인격이었고, 그들의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딛고 일어나 더 나은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온전히 당신의 여정이자 당신의 승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