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유독 '나쁜 사람'에게 끌리는가?: 상처와 끌림의 심리학
Sat, Jun 14 2025 08:08:21 KST안정적이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자꾸만 나를 힘들게 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심지어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로 향합니다. 친구들은 모두 “대체 왜 그런 사람을 만나?”라고 묻지만, 나 자신도 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부족하거나 어리석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매우 복잡한 심리적 현상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나쁜 점’ 그 자체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불러일으키는 ‘익숙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끌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왜 독이 든 사과인 줄 알면서도, 그 치명적인 끌림에서 벗어나기 어려운지, 그 이면에 숨겨진 심리학적 원인 3가지를 탐구해 보겠습니다.
치명적인 끌림의 3가지 심리적 원인
1. ‘익숙함’이라는 무서운 끌림 (terrifying pull of ‘familiarity’)
인간의 뇌는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선호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는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익숙함’의 원칙이 관계에 적용될 때, 비극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만약 당신이 어린 시절, 감정적으로 무관심하거나 비판적인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당신에게 ‘사랑’이란 ‘불안정하고, 항상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각인되었을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된 후,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의 그 익숙한 감정적 환경을 재현하는 파트너를 찾게 됩니다. 안정적이고 다정한 사람은 오히려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반면, 나를 불안하게 하고 애정을 갈구하게 만드는 ‘나쁜 사람’에게서 이상한 안정감, 즉 ‘익숙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받지 못했던 사랑을 현재의 파트너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즉 ‘과거를 고쳐 쓰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이기도 합니다. “이번에야말로 이 사람에게서 사랑을 얻어내겠어”라고 생각하며, 끝나지 않는 게임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 것입니다.
2. ‘드라마’와 ‘열정’의 착각 (illusion of ‘drama’ and ‘passion’)
안정적인 관계가 주는 ‘평온함’을 ‘지루함’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독이 되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극심한 감정의 기복, 즉 뜨겁게 사랑하다가도 차갑게 돌아서는 예측 불가능한 패턴은 종종 ‘강렬한 열정’이나 ‘운명적인 사랑’으로 오해됩니다. 큰 싸움 뒤에 찾아오는 극적인 화해의 순간은, 평온한 관계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강력한 쾌감과 안도감을 줍니다.
이것은 이전 글에서 다룬 ‘간헐적 강화’와 같은 원리입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잭팟(애정)을 기다리며, 우리는 그 불확실성과 드라마 자체에 중독됩니다. 뇌는 이 자극적인 드라마를 ‘열정’으로, 조용한 평화를 ‘권태’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3. ‘구원자 판타지’와 상처의 공명 (‘savior’ fantasy and resonance of wounds)
때로는 상대방의 ‘나쁜 점’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상처’에 끌리기도 합니다. 특히 연약하고 우울해 보이는 상대(내향적 나르시시스트 등)를 보면, “내가 이 사람을 구원해 줄 수 있어”라는 ‘구원자 판타지’가 발동합니다.
이는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욕구와 연결됩니다. “이렇게 상처 입은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믿음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강력한 만족감을 줍니다.
또한, 나의 상처가 상대방의 상처를 알아보는 ‘상처의 공명’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상대의 외로움과 결핍을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강하게 이끌립니다. “나만이 너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듯한 이 관계는 건강한 치유가 아닌, 서로의 결핍에 기생하는 의존적인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끌림의 고리를 끊으려면
이 무의식적인 끌림의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 나의 ‘상처’ 정면으로 바라보기: 내가 왜 이런 패턴을 반복하는지, 나의 과거 어떤 경험이 현재의 끌림에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탐색해야 합니다. 자기 성찰, 글쓰기, 전문가와의 상담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편안함’과 ‘지루함’을 구분하기: 안정적인 관계가 주는 평온함과 편안함을 ‘지루함’이 아닌 ‘안전함’으로 인식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드라마가 없는 관계가 진짜 건강한 관계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 의식적으로 다른 선택하기: 과거와 비슷한,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끌림이 느껴질 때, 그것을 ‘운명’의 신호가 아닌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조금은 지루해 보이더라도 나를 존중해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나쁜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결코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과거가 현재에 보내는,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다는 신호일 뿐입니다. 그 신호를 이해하고 나의 내면을 돌볼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의 상처를 반복하는 관계가 아닌, 나를 성장시키는 건강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