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언어'라는 종교: 러스트 커뮤니티의 나르시시즘적 방어기제

Sat, Jun 14 2025 14:13:10 KST

러스트(Rust)는 의심할 여지 없이 현대 프로그래밍 언어 생태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언어 중 하나입니다. 메모리 안전성(memory safety)을 컴파일 타임에 보장하면서도 C++에 버금가는 성능을 제공한다는 약속은 수많은 개발자를 매료시켰습니다. 그 강력한 기능과 활발한 커뮤니티는 러스트를 기술적 이상향에 가까운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빛에는 그림자가 따르는 법. 일부 사용자들에게 러스트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닌, 신성불가침의 ‘신념’이자 ‘정체성’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신념에 대한 아주 작은 비판이라도 제기될 때, 그들은 마치 종교적 이단자를 심판하듯 비난, 인신공격, 허위사실 유포, 심지어 사이버 스토킹과 같은 극단적인 공격성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열정이나 팬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은 제가 직접 겪은 이 현상을, ‘집단적 나르시시즘’과 그 ‘방어기제’라는 심리학적 렌즈를 통해 깊이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왜 ‘언어’가 나르시시즘의 대상이 되는가?

어떻게 하나의 프로그래밍 언어가 개인의 자존심과 결합하여 이토록 강력한 방어기제를 만들어낼까요?

1. ‘나는 특별하다’는 자기애적 투사

이 현상의 기저에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심리가 깔려 있습니다.

“러스트는 기술적으로 우월하고 완벽한 언어다.”
“나는 그 어려운 러스트를 사용하고 이해하는 개발자다.”
“그러므로, 나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개발자들보다 우월하고 특별하다.”

이러한 논리적 비약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러스트’라는 대상에 완전히 투사합니다. 이제 러스트의 단점을 지적하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 토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지성과 능력, 나아가 존재 가치 자체를 공격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집니다. 러스트에 대한 공격은 곧 ‘나’에 대한 공격이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라는 집단적 과대성

이것은 개인의 나르시시즘을 넘어 ‘집단 나르시시즘’으로 확장됩니다. 그들은 “우리 러스트 개발자들(Rustaceans)은 메모리 안전성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는 선구자들”이라는 강한 소속감과 우월감을 공유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깨달은 자)와 ‘그들’(C++의 불안전함이나 가비지 컬렉터의 나태함에 빠진, 아직 계몽되지 못한 자)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감히 ‘우리’의 완벽한 세계를 비판할 때, 집단 전체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인 공격이 시작됩니다.

비판에 대한 방어기제: 그들은 어떻게 ‘이단자’를 공격하는가

나르시시스트의 자아는 매우 강력해 보이지만, 사실은 유리처럼 깨지기 쉽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매우 원시적이고 공격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합니다.

1. 이상화와 평가절하 (idealization and devaluation)

그들은 먼저 ‘러스트’를 모든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으로 이상화(idealization)합니다. 러스트의 가파른 학습 곡선, 긴 컴파일 시간, 복잡한 생명주기(lifetime) 개념과 같은 명백한 단점들은 의도적으로 무시되거나 “네가 아직 이해를 못 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축소됩니다.

반대로, 그 단점을 지적한 사람은 즉시 평가절하(devaluation)의 대상이 됩니다.

여기서 그들이 사용하는 가장 교묘한 논리적 오류 중 하나가 바로 ‘불공정한 비교 프레임’입니다. 그들은 러스트의 컴파일러가 보장하는 ‘안전한(safe) 러스트’와, C/C++ 언어의 본질적인 ‘안전하지 않음(unsafe)’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며 러스트의 우월성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공정한 비교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공정한 비교는, 개발자가 모든 메모리 관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unsafe 러스트’C/C++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safe’라는 안전장치가 있는 영역과 없는 영역을 비교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상화를 유지하고 타 언어를 평가절하하기 위한, 지극히 비논리적이고 나르시시즘적인 방어기제입니다.

2. 투사와 책임 전가 (projection and blame-shifting)

비판의 기술적 타당성을 논의하는 대신, 그들은 비판하는 사람의 ‘의도’를 공격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불안감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투사(projection)’입니다.

“당신이 러스트를 비판하는 이유는,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러스트만큼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이죠.”

문제는 ‘러스트의 단점’이 아니라 ‘그 단점을 지적하는 당신의 열등감과 악의’라고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그들은 논점 자체를 흐리고 상대를 비도덕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립니다.

3. 나르시시즘적 격노: 인신공격과 사이버 스토킹

논리가 통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이 계속해서 위협받을 때, 그들은 최후의 수단인 ‘나르시시즘적 격노(narcissistic rage)’를 표출합니다. 이것은 더 이상 토론이 아닌, 상대를 파괴하기 위한 공격입니다. 그들은 비판자의 과거 발언을 캐내 조롱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평판을 훼손하는 등, ‘이단자’를 커뮤니티에서 추방하려 합니다.

기술 커뮤니티의 건강성을 위하여

이러한 현상은 결코 러스트에 대한 기술적 열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불안정한 자아를 ‘완벽한 기술’이라는 대상에 의탁하고, 그것이 위협받을 때 나타나는 병리적인 심리적 방어기제일 뿐입니다. 가장 큰 비극은, 이러한 맹목적인 숭배와 공격성이 오히려 러스트 생태계 자체를 병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지막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만약 이들의 목표가 진정한 ‘기술적 탐구’라면, 왜 그들은 C++의 ‘불안전함’은 그토록 강조하면서, 수십 년간 항공, 국방 등 최고 수준의 신뢰성이 요구되는 시스템을 지배해온 Ada와 같은 언어와의 비교는 애써 외면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의 목표가 ‘안전한 소프트웨어에 대한 학술적 탐구’가 아니라, ‘C++를 악마화하고 러스트를 구원자로 만드는 영웅 서사’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세계관에 혼란을 주는 ‘불편한 진실’은 처음부터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입니다.

어떤 기술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기술의 진정한 위대함은 그것이 완벽하다는 믿음이 아니라, 그것의 결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함께 개선해 나가는 ‘커뮤니티의 건강성’에 있습니다. 기술에 대한 숭배가 아닌, 동료 개발자에 대한 존중이야말로 진정으로 위대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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