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한 러스트와 나르시시즘 (초안)

초안입니다. 논리적 오류, 표현, 접속사, 사실 여부 등 계속 검토 중입니다.

어휘 검토:

  • 완벽: 46번 사용되었고, 6장에서 사용된 “완벽”이라는 단어가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나, “신화”라는 단어도 종종 나오므로 “완벽한 언어라는 러스트” 신화를 비판하기 위한 수사학적 표현으로 판단하지만, 허위사실 유포나 허수아비 공격은 없는지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접속사 검토:

  • 논리 검토
  • 동일 접속사 반복 여부 검토

립서비스하지 말고, 제가 받을 정신적 충격을 고려하지 말고 피드백 주세요.

서론: ‘완벽한 언어’라는 종교, 러스트 생태계를 돌아보다

프로그래밍 세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러스트(Rust)는 지난 몇 년간 가장 뜨거운 언어였습니다. 개발자 설문조사에서 수년째 ‘가장 사랑받는 언어’로 선정되었고, 그 지지자들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러스트의 가치를 설파합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Why Rust?’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쾌하고 단호하게 들립니다. “가비지 컬렉터(GC) 없이도 메모리 안전성을 달성하며, 실행 시 리소스가 극도로 효율적입니다. Cargo라는 통일된 툴체인으로 개발 환경은 파편화되지 않았으며, Result 타입으로 에러 처리가 강제되어 프로그램의 안정성이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높습니다.”

일견 모든 것이 사실처럼 보입니다. 러스트는 실제로 많은 기술적 성취를 이뤄낸 뛰어난 언어임이 분명합니다. 다만,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그 주장들의 맥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기술에 대한 객관적 평가라기보다는 특정 신념을 강화하기 위한 논리가 반복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연한 사실이 특별한 전유물로 포장되고, 복잡한 현실은 단순한 이분법으로 재단되며, 불편한 진실은 의도적으로 외면당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리소스 효율성과 GC 부재’는 러스트만의 고유한 장점이 아니라, C, C++, Ada 등 수십 년간 시스템 프로그래밍의 역사를 이끌어온 네이티브 컴파일 언어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마치 러스트만의 위대한 발명인 것처럼 제시하는 것은, 다른 시스템 언어들의 존재와 가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평가절하의 한 방식입니다. 특히 최고 수준의 예측 가능성이 요구되는 항공, 국방 분야에서 검증된 Ada와 같은 언어 앞에서 이 특징을 내세우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Cargo를 중심으로 한 통일된 개발 환경’이 강력한 장점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언어 자체의 완벽성을 증명하는 근거가 되지는 않으며, 필요에 따라 다른 빌드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다는 현실을 가리지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Result 타입을 통한 명시적 에러 처리’는 훌륭한 설계지만, ‘throw/catch는 위험하다’는 주장은 Java의 ‘Checked Exception’과 같은 대안을 무시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더 나아가, 이는 수십 년 전부터 언어 차원의 엄격한 예외 처리를 통해 안전성을 제공해 온 Ada의 역사를 애써 외면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명백한 논리적 비약과 사실 왜곡을 감수하면서까지 비슷한 주장들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이 책은 그 원인을 기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아닌, 일부 커뮤니티 구성원에게서 관찰되는 ‘집단적 나르시시즘’과 그 ‘방어기제’라는 심리학적 렌즈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그 기저에는 “나는 완벽한 언어를 사용한다, 고로 나는 우월하고 특별하다”는 자기애적 투사가 깔려 있습니다. 자신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완벽한 도구’에 완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이 순간부터 기술에 대한 합리적 비판은 곧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깨지기 쉬운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 커뮤니티는 ‘러스트’를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이상화하고, 비판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한 자’로 평가절하하며, 기술적 논점 대신 “열등감 때문에 비판한다”며 비판자의 의도를 공격합니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기술의 발전을 위한 건강한 토론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한 ‘종교 전쟁’에 가깝습니다. 가장 큰 비극은, 이러한 맹목적인 숭배와 공격성이 오히려 건설적인 비판을 통한 성장의 기회를 차단하고, 그 기술 생태계 자체를 병들게 한다는 점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러스트 커뮤니티의 특정 현상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우리는 러스트를 사례로 삼아, 인간 본연의 나르시시즘적 특성과 집단 심리가 어떻게 특정 기술 커뮤니티 내에서 발현되고 증폭되는지 탐구할 것입니다. 이는 ‘소수의 비정상적인 광신도’나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어느 커뮤니티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 심리와 집단 역학의 한 단면을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책은 러스트의 기술적 성취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잠재력을 믿기에, 현재의 나르시시즘적 문화가 어떻게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퇴보를 야기하는지를 면밀히 추적할 것입니다. 제1부에서는 러스트의 핵심 특징을 소개하고, 제2부에서는 안전성, 개발 경험, 소유권이라는 3대 신화가 어떻게 우월주의로 변질되는지 해부합니다. 제3부에서는 그 결과로 나타나는 커뮤니티의 폐쇄성, 생태계의 성장통, 거버넌스의 실패를 분석하고, 마지막 제4부에서는 나르시시즘을 극복하고 진정한 성숙으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제언을 담았습니다.

이 책은 러스트에 대한 찬사도, 저주도 아닙니다. 이것은 러스트 생태계가 스스로를 비추어볼 수 있는, 차갑지만 정직한 거울이 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궁극적으로 제가 바라는 것은 개발자들이 기술적 편향에 휩쓸리지 않고, 장점과 한계를 모두 이해하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언어를 선택할 수 있도록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부디 이 비판적 성찰의 여정이 더 건강하고 성숙한 기술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1부: 러스트란 무엇인가

제1장: 러스트 언어 소개 및 주요 특징

1.1. 탄생 배경과 철학: 왜 러스트인가?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는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탄생하지만, 러스트(Rust)처럼 기존의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에서 시작된 경우는 드뭅니다. 러스트의 탄생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스템 프로그래밍 세계가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고질적인 딜레마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십 년간, 저수준(low-level) 시스템을 다루는 개발자들은 ‘성능’과 ‘안전성’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양자택일을 강요받아 왔습니다. 한쪽에는 C/C++와 같은 언어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드웨어를 직접 제어하는 막강한 성능과 제어권을 제공했지만, 그 대가로 세그멘테이션 폴트(segmentation fault), 버퍼 오버플로우(buffer overflow), 데이터 경쟁(data race)과 같은 치명적인 메모리 오류의 책임을 전적으로 프로그래머에게 떠넘겼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Java나 C#과 같은 가비지 컬렉터(GC) 기반의 언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동 메모리 관리를 통해 높은 수준의 안전성을 제공했지만, GC의 런타임 오버헤드와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실시간 시스템이나 운영체제 커널과 같은 모든 시스템 영역을 대체할 수는 없었습니다.

모질라(Mozilla)의 연구 프로젝트로 시작된 러스트는 바로 이 ‘성능이냐, 안전성이냐’의 오랜 딜레마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대담한 목표를 가지고 탄생했습니다. 즉, “C++ 수준의 빠른 성능를 가지면서도, GC 없이 높은 수준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언어”를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이 야심 찬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러스트는 설계 초기부터 안전성, 성능, 동시성이라는 핵심 목표를 일관되게 추구했습니다.

안전성 (Safety)

러스트의 핵심적인 철학은 메모리 안전성입니다. 컴파일 시점에 코드의 메모리 사용 규칙을 엄격하게 검사하여,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버그들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프로그래머의 실수를 탓하는 대신, 컴파일러가 실수를 저지를 수 없도록 강제하는 새로운 접근법입니다.

성능 (Performance)

러스트는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습니다. GC와 같은 무거운 런타임에 의존하지 않고, 하드웨어의 성능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제로 코스트 추상화(Zero-Cost Abstractions)’라는 원칙은, 개발자가 고수준의 편리한 기능을 사용하더라도 추가적인 런타임 비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러스트의 자신감을 보여줍니다.

동시성 (Concurrency)

현대의 멀티코어 프로세서 환경에서, 여러 스레드가 충돌 없이 안전하게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러스트는 언어의 소유권 시스템을 통해, 컴파일 시점에 ‘데이터 경쟁’과 같은 동시성 관련 버그를 찾아내고 방지합니다. 이를 통해 개발자들은 ‘두려움 없는 동시성(Fearless Concurrency)’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왜 러스트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이 세 가지 목표의 교차점에 있습니다. 러스트는 성능, 안전성, 동시성이라는, 이전까지는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웠던 가치들을 하나의 언어 안에서 구현하기 위한 체계적인 시도입니다. 그리고 이 대담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러스트는 ‘소유권’이라는 독특하고 강력한 개념을 언어의 핵심에 도입했습니다.

1.2. 소유권(Ownership), 빌림(Borrowing), 생명주기(Lifetimes)

가비지 컬렉터 없이 메모리 안전성을 달성하는 핵심 원리

앞서 언급한 러스트의 대담한 목표들, 특히 ‘가비지 컬렉터(GC) 없는 메모리 안전성’은 기존의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으로 여겨졌습니다. C/C++처럼 프로그래머의 수동 관리에 의존하면 실수가 발생하고, Java처럼 GC에 의존하면 런타임 성능 저하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러스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런타임이 아닌 컴파일 타임에 메모리 관리 규칙을 엄격하게 강제하는, 언어의 독창적이자 핵심적인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바로 소유권, 빌림, 생명주기라는 세 가지 개념입니다.

1. 소유권 (Ownership): 모든 값에는 주인이 있다

러스트의 메모리 관리 철학은 ‘소유권’이라는 단 하나의 단순한 규칙에서 시작합니다.

  • 모든 값(value)은 단 하나의 소유자(owner) 변수만을 가집니다.
  • 소유자가 스코프(scope, 유효 범위)를 벗어나면, 그 값은 자동으로 메모리에서 해제(drop)됩니다.
  • 소유권은 다른 변수로 ‘이동(move)’될 수 있으며, 이동 후 원래의 소유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 규칙은 매우 강력한 효과를 낳습니다. 하나의 값은 오직 하나의 소유자만이 해제할 수 있으므로, ‘이중 해제(double free)’ 오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집니다. 또한, 소유권이 이동하면 이전 변수는 사용할 수 없게 되므로, 이미 해제된 메모리를 사용하려는 ‘해제 후 사용(use-after-free)’ 오류의 상당수를 컴파일 시점에 막아줍니다.

2. 빌림 (Borrowing): 소유권 없이 안전하게 접근하기

만약 소유권 이동만이 유일한 데이터 전달 방식이라면, 함수에 값을 전달할 때마다 소유권이 계속 이동하여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편할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러스트는 ‘빌림’이라는 개념을 제공합니다. 이는 데이터의 소유권을 넘기지 않고, 특정 스코프 내에서 데이터에 대한 접근 권한(참조, reference)을 잠시 빌려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빌림’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엄격한 규칙이 있습니다.

  • 특정 데이터에 대해, 여러 개의 ‘읽기 전용 빌림(immutable borrow, &T)’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수정 가능한 빌림(mutable borrow, &mut T)’은 단 하나만 존재할 수 있으며, 이 기간 동안에는 다른 어떤 빌림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컴파일러는 이 규칙을 통해, 하나의 데이터에 대해 동시에 여러 곳에서 수정하려는 시도나, 데이터를 읽는 동시에 수정하려는 시도를 컴파일 시점에 완벽하게 차단합니다. 이것이 바로 러스트가 ‘데이터 경쟁(data race)’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고 ‘두려움 없는 동시성’을 달성하는 핵심 원리입니다.

3. 생명주기 (Lifetimes): 빌린 데이터의 유효 기간 보장

빌림이 있다면, 빌려온 것이 언제까지 유효한지를 보장하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생명주기’는 바로 이 ‘빌림(참조)’이 유효한 스코프, 즉 ‘생존 기간’을 컴파일러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컴파일러는 생명주기 분석을 통해, 빌려온 데이터가 소유자에 의해 먼저 해제되어 발생하는 ‘댕글링 포인터(dangling pointer)’ 문제를 방지합니다. 즉, “데이터의 실제 생존 기간보다, 그것을 빌려온 참조의 생존 기간이 더 길어지는” 위험한 상황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컴파일러가 생명주기를 자동으로 추론하지만, 복잡한 상황에서는 개발자가 명시적으로 생명주기를 지정하여 컴파일러의 분석을 돕습니다.

이 세 가지 개념, 즉 소유권으로 자원의 생애를 관리하고, 빌림으로 데이터 경쟁 없이 안전하게 공유하며, 생명주기로 댕글링 포인터를 방지하는 이 정교한 시스템은 ‘보로 체커(Borrow Checker)’라는 컴파일러의 일부에 의해 강제됩니다. 이 엄격한 체커는 러스트의 가파른 학습 곡선의 주된 원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러스트가 그토록 자랑하는 ‘성능 저하 없는 안전성’을 실현하는 심장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1.3. 성능: 제로 코스트 추상화(Zero-Cost Abstractions)

고수준의 편리함과 저수준의 제어 능력을 동시에 제공

전통적인 프로그래밍 언어의 세계에서 ‘추상화 수준’과 ‘성능’은 오랜 기간 상충 관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파이썬(Python)이나 자바(Java)와 같은 고수준 언어는 개발자가 사용하기 편리한 강력한 추상화 기능을 제공하지만, 그 편리함의 대가로 런타임에 보이지 않는 비용(overhead)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반대로 C언어와 같은 저수준 언어는 하드웨어에 가까운 수준의 성능을 제공했지만, 개발자는 모든 것을 수동으로 제어해야 했고 코드의 가독성과 유지보수성이 떨어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읽고 쓰기 편한 아름다운 코드”와 “빠른 성능”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것입니다.

러스트는 이 오랜 딜레마에 대해 “추상화를 위해 성능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철학을 제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로 코스트 추상화(Zero-Cost Abstractions, ZCA)’ 원칙입니다. ZCA란, 개발자가 이터레이터(iterator), 제네릭(generics), 트레잇(trait) 등 고수준의 편리한 추상화 기능을 사용해 코드를 작성하더라도, 컴파일된 최종 결과물은 저수준에서 손으로 직접 최적화한 코드와 동일한 성능을 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러스트가 추상화에 대한 비용을 런타임이 아닌 컴파일 타임에 모두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컴파일러는 개발자가 작성한 고수준의 추상적인 코드를 분석하여, 실행 시점에는 아무런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매우 효율적인 기계 코드로 변환해 줍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터레이터입니다. 다음의 코드를 보겠습니다.

// 1부터 99까지의 숫자 중, 3의 배수만 골라 제곱한 값들의 합을 구하는 코드
let sum = (1..100).filter(|&x| x % 3 == 0).map(|x| x * x).sum::<u32>();

이 코드는 filter, map, sum과 같은 고수준 메서드를 연쇄적으로 사용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를 선언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C언어였다면 for 루프와 if 조건문, 그리고 별도의 합계 변수를 사용하여 복잡하게 작성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러스트 컴파일러는 이 고수준의 이터레이터 코드를 최적화하여, 사실상 손으로 짠 for 루프와 완전히 동일한 기계 코드를 생성해 냅니다. filtermap과 같은 중간 단계의 호출 비용은 컴파일 과정에서 모두 사라집니다.

이러한 마법은 러스트의 강력한 타입 시스템과 제네릭, 그리고 컴파일러의 적극적인 인라이닝(inlining)과 모노모피제이션(monomorphization) 같은 기술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컴파일러가 더 많은 일을 하는 대신, 런타임의 사용자는 아무런 비용도 지불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제로 코스트 추상화는 개발자가 ‘성능 저하’에 대한 걱정 없이, 자신이 원하는 더욱 표현력 높고 안전한 방식으로 코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러스트의 핵심적인 성능 철학입니다. 이는 개발자가 “편리함과 성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1.4. 강력한 타입 시스템과 패턴 매칭

컴파일 시점에 에러를 잡아내는 엄격함

러스트가 추구하는 ‘안전성’은 단순히 메모리 관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러스트는 언어의 근간을 이루는 정적 타입 시스템(static type system)을 통해, 프로그램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상태와 오류 가능성을 코드 수준에서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컴파일러가 이를 강제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는 잠재적인 런타임 오류를 컴파일 시점에 미리 발견하여,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안정성을 극대화하는 핵심적인 전략입니다. 이 전략의 중심에는 러스트의 강력한 타입 시스템, 그리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패턴 매칭(pattern matching)이 있습니다.

러스트의 타입 시스템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은 바로 열거형(enum)입니다. 다른 언어에서 단순히 몇 가지 상수를 나열하는 용도로 쓰이는 enum과 달리, 러스트의 enum은 각 변형(variant)이 서로 다른 타입과 양의 데이터를 가질 수 있는 강력한 데이터 구조입니다. 러스트는 이를 활용하여 프로그램의 불확실한 상태를 매우 안전하게 다룹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널 포인터(null pointer) 문제를 해결한 Option<T> 타입입니다. 러스트에는 null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값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상황을 Some(value) 또는 None이라는 두 가지 상태를 가진 Option 열거형으로 표현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컴파일러는 개발자가 None일 경우를 반드시 처리하도록 강제하여, ‘null 포인터 역참조’와 같은 런타임 오류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성공 또는 실패 가능성이 있는 연산은 Result<T, E> 타입을 통해 Ok(value) 또는 Err(error) 상태를 명시적으로 반환하도록 하여, 오류 처리를 누락하는 실수를 방지합니다.

이러한 강력한 타입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다루게 해주는 도구가 바로 패턴 매칭입니다. 러스트의 match 표현식은 Option이나 Result와 같은 열거형의 모든 가능한 경우를 남김없이 검사하도록 컴파일러가 강제합니다. 이를 소진 검사(exhaustiveness checking)라고 합니다.

let maybe_number: Option<i32> = Some(10);

// `match`는 `maybe_number`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경우(`Some`과 `None`)를
// 처리하도록 강제합니다. 만약 `None` 경우를 빼먹으면 컴파일 에러가 발생합니다.
match maybe_number {
    Some(number) => println!("숫자: {}", number),
    None => println!("숫자가 없습니다."),
}

이처럼 프로그래머가 특정 상태나 오류 케이스를 처리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흔한 실수를, 컴파일러가 “당신은 이 경우를 빠뜨렸습니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며 막아주는 것입니다.

요컨대, 러스트의 강력한 타입 시스템은 프로그램의 상태를 명시적으로 모델링하게 하고, 패턴 매칭은 그 모든 상태를 빠짐없이 안전하게 처리하도록 강제합니다. 이는 “컴파일러를 까다로운 조력자로 삼아, 런타임에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잠재적 버그를 컴파일 시점에 미리 박멸하는 것”이라는 러스트의 핵심 설계 철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1.5. 생태계: 카고(Cargo)와 크레이트(Crates.io)

현대적인 빌드 시스템과 패키지 매니저

하나의 프로그래밍 언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언어 자체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개발자들이 그 언어를 쉽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생태계와 도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특히 C/C++와 같은 전통적인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들은 공식적인 패키지 관리나 빌드 시스템이 없어, 개발자들이 프로젝트마다 다른 도구(Makefile, CMake 등)와 복잡한 라이브러리 의존성 문제로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습니다.

러스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어의 설계 초기부터 현대적인 개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핵심 목표 중 하나로 삼았습니다. 그 중심에는 러스트의 공식 빌드 시스템이자 패키지 매니저인 카고(Cargo)와, 공식 라이브러리 저장소인 크레이트(Crates.io)가 있습니다.

카고는 단순히 코드를 컴파일하는 것을 넘어, 프로젝트의 생명주기 전체를 관리하는 올인원(All-in-one) 커맨드 라인 도구입니다. 개발자는 일관된 명령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작업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 프로젝트 생성 (cargo new): 표준화된 디렉터리 구조를 가진 새로운 프로젝트를 생성합니다.
  • 의존성 관리: Cargo.toml이라는 설정 파일에 필요한 라이브러리(러스트에서는 ‘크레이트’라고 부릅니다)의 이름과 버전만 명시하면, 카고가 자동으로 해당 라이브러리와 그 하위 의존성까지 모두 다운로드하고 관리합니다.
  • 빌드 및 실행 (cargo build, cargo run): 단 한 줄의 명령어로 프로젝트를 컴파일하고 실행합니다.
  • 테스트 및 문서화 (cargo test, cargo doc): 프로젝트에 포함된 테스트 코드를 실행하고, 소스코드 주석을 바탕으로 깔끔한 HTML 문서를 생성합니다.

이 모든 작업의 중심에는 크레이트(Crates.io)가 있습니다. 이는 Node.js의 NPM이나 파이썬의 PyPI와 같은 중앙 집중형 패키지 저장소로, 전 세계의 러스트 개발자들이 자신이 만든 라이브러리를 손쉽게 공유하고, 다른 사람의 라이브러리를 가져다 쓸 수 있는 거대한 광장 역할을 합니다.

결론적으로, 카고와 크레이트 생태계는 러스트의 가파른 학습 곡선에도 불구하고, 많은 개발자들이 러스트를 “생산성이 높다”고 평가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입니다. 프로젝트 설정부터 의존성 관리, 빌드, 테스트에 이르는 복잡한 과정들을 단 하나의 표준화된 도구로 통합함으로써, 개발자가 오롯이 코드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쾌적하고 현대적인 개발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제1부에서는 러스트가 왜 ‘가장 사랑받는 언어’로 불리는지, 그 기술적인 이상과 매력적인 철학, 그리고 현대적인 생태계를 살펴보았습니다. 러스트는 분명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매우 잘 설계된 언어입니다.

하지만, 이 눈부신 이상 뒤에는 ‘우월주의’와 ‘나르시시즘’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제2부부터는 이 이상이 어떻게 현실에서 신화가 되고, 그 신화가 커뮤니티와 생태계에 어떤 균열을 만들어내는지를 본격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제2부: “우리는 다르다”: 러스트 우월주의의 발현과 특징

제2장: 러스트의 “안전성” 신화와 독선

2.1. ‘혁신’과 ‘안전성’의 재정의: 러스트의 위치 재조명

러스트(Rust)를 둘러싼 담론의 중심에는 항상 ‘혁신’과 ‘안전성’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러스트 커뮤니티는 이 두 가치를 언어의 존재 이유이자, 다른 모든 언어에 대한 우월성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용어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대신, 그 의미를 엄밀하게 파고들기 시작하면, 견고해 보였던 논리의 성벽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절에서는 러스트의 우월주의를 지탱하는 이 두 기둥이 어떻게 교묘하게 재정의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진실이 외면당하는지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혁신’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입니다.

러스트의 혁신성을 옹호하는 이들은 종종, Ada와 같은 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스트가 ‘안전한 시스템 프로그래밍’이라는 가치를 비로소 대중화시킨 ‘실용적 혁신’을 이뤘다고 주장합니다. 일견 타당하게 들리는 이 주장 이면에는, ‘혁신’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정의하려는 교묘한 수사학이 숨어있습니다.

‘혁신’의 정의와 논리적 궤변: 러스트의 진짜 위치는 어디인가?

‘혁신(innovation)’의 사전적 의미는 “묵은 방법이나 관습을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면, “러스트가 과연 혁신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타당한 문제 제기가 됩니다. 러스트가 달성했다고 평가받는 목표, 즉 ‘GC 없는 성능과 메모리 안전성의 양립’은 사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수십 년 전, Ada와 그 정형 검증 서브셋인 SPARK는 수학적 증명이라는, 러스트의 보로 체커보다 훨씬 더 엄격한 방식으로 이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또한 러스트의 핵심 설계인 ‘소유권’ 개념 역시, C++이 RAII 패턴과 스마트 포인터를 통해 발전시켜 온 자원 관리 철학의 성공적인 진화에 가깝습니다. 이처럼 러스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훌륭한 개념들을 매우 영리하게 통합하고, 컴파일러를 통해 시스템적으로 ‘강제’한 것에 가깝습니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위대한 공학적 성취이지만, ‘완전한 새로움’을 의미하는 ‘혁신’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러스트 지지자들은 ‘혁신’의 의미를 ‘실용성의 혁신’으로 재정의하여 반론을 제기합니다. Ada의 접근법이 너무 학술적이고 비용이 높아 현실 세계에 널리 쓰이지 못한 반면, 러스트는 Cargo와 같은 현대적인 툴체인과 상대적으로 낮은 진입 장벽을 통해 ‘안전한 시스템 프로그래밍’의 가치를 대중화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논점을 교묘하게 바꾸는 논리적 궤변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실용적 성공’을 근거로, 마치 러스트가 ‘개념적 유일성’까지 가진 것처럼 주장하며 다른 언어들의 역사적 성취를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합니다.

‘실용적 혁신’이라는 반론 분석: 가치의 대중화인가, 논점 흐리기인가?

앞서 ‘완전한 새로움’이라는 엄격한 잣대로 볼 때 러스트는 혁신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지만, 러스트 지지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강력한 반론을 제기합니다. 그들은 러스트의 혁신이 ‘개념의 발명’이 아닌 ‘가치의 대중화’, 즉 ‘실용적 혁신’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Ada/SPARK가 추구했던 높은 수준의 안전성은 엄청난 비용(높은 학습 곡선, 복잡한 툴체인, 느린 개발 속도)을 요구했기 때문에, 결국 항공, 국방과 같은 극소수의 특수 분야에만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반면, 러스트는 Cargo라는 현대적이고 편리한 툴체인, 상대적으로 낮은 진입 장벽, 그리고 활발한 커뮤니티를 통해, 이전까지는 소수의 전문가들만 누릴 수 있었던 ‘안전한 시스템 프로그래밍’이라는 가치를 일반 대중 개발자들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도 쓸 수 없었던 완벽한 기술보다, 많은 사람이 쓸 수 있는 ‘충분히 좋은’ 기술이 더 혁신적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으며, 러스트가 이룬 괄목할 만한 성취를 담고 있습니다. 러스트가 개발자 경험(DX)을 개선하고 안전성의 가치를 널리 알린 공로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실용적 혁신’이라는 주장이 사용되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종종 ‘개념적 혁신’의 부재라는 비판을 회피하고, 논점을 흐리기 위한 수사학적 도구로 사용됩니다.

‘A는 개념적으로 새로운가?’라는 질문에 대해, ‘A는 시장에서 성공했고 사용하기 편하다’고 답하는 것은 동문서답에 가깝습니다. 두 번째 주장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이 되지는 않습니다.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논리적 비약을 저지릅니다. 그들은 러스트의 ‘실용적 성공’을 근거로, 마치 러스트가 ‘개념적 유일성’까지 가진 것처럼 주장하며, Ada와 C++ 같은 언어들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역사적 성취를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합니다.

결국 ‘실용적 혁신’이라는 주장은, ‘혁신’의 본래 의미에 대한 비판을 피하면서도 ‘혁신’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은 계속 유지하고 싶을 때 사용되는 편리한 논리입니다. 이는 이 책이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자신들의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용어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재정의하고 논점을 흐리는 태도의 또 다른 예시일 뿐입니다.

‘메모리 안전성’의 범위 축소: 의도적으로 외면된 ‘메모리 릭(Memory Leak)’ 문제

용어의 재정의 문제는 ‘혁신’이라는 단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러스트의 존재 이유와도 같은 ‘메모리 안전성’이라는 핵심 가치에서 이 문제는 더욱 교묘하고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러스트는 의심할 여지 없이 뛰어난 메모리 안전성을 제공합니다. 컴파일러는 널 포인터 역참조, 해제 후 사용(use-after-free), 데이터 경쟁(data race)과 같은 치명적인 메모리 오류들을 컴파일 시점에 거의 완벽하게 차단합니다. 이것은 러스트가 C/C++에 비해 갖는 명백한 우위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메모리 릭(memory leak)입니다. 메모리 릭은 프로그램이 할당된 메모리를 해제하지 않아, 시스템의 가용 메모리가 점차 줄어드는 심각한 메모리 관리 문제입니다. 그런데 러스트의 ‘안전성 보장’은 이 메모리 릭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Rc<T>RefCell<T>을 함께 사용할 때 발생하는 순환 참조(reference cycle)는 메모리 릭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며, 이는 ‘safe’ 코드로 분류됩니다.

문제는 러스트가 메모리 릭을 막지 못한다는 기술적 한계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가 ‘메모리 안전성’이라는 용어를 홍보할 때, 이 메모리 릭 문제를 의도적으로 논의의 범위에서 제외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필자 역시 러스트를 공부하며 메모리 릭 문제를 제기했을 때, “러스트가 보장하는 메모리 안전성은 메모리 릭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논점에서 벗어난다”는 식의 답변을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타당한 주장일까요?

러스트의 공식 문서, 특히 ‘러스트노미콘(The Rustonomicon)’에 따르면 러스트의 ‘안전성(Safety)’이 보장하는 것은 단 하나, 즉 “안전한(Safe) 코드는 절대로 Undefined Behavior(UB, 정의되지 않은 동작)를 유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UB란 널 포인터 역참조나 데이터 경쟁처럼 프로그램의 동작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오류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메모리 안전성’을 ‘Undefined Behavior(정의되지 않은 동작)를 유발하지 않는 것’으로 범위를 좁게 재정의합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메모리 릭은 Undefined Behavior가 아니므로, 러스트는 ‘메모리 안전한’ 언어가 맞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커뮤니티의 일부가 이 기술적으로 협소한 정의를 대중을 상대로 한 홍보에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일반적인 개발자가 ‘메모리 안전성’이라는 단어에 기대하는 바와 실제 보장 내용 사이의 인지적 간극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러스트가 마치 ‘모든 메모리 관련 문제를 해결한 언어’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착시 효과를 낳습니다. 자신들의 한계를 가리고 ‘완벽한 안전성’이라는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 핵심 용어의 범위를 축소하는 행위는, 이 책이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적인 논점 흐리기와 사실 왜곡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C언어 개발자들의 문화와 비교해볼 때, 그 모순과 특수성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C언어 개발자들은 자신들의 언어가 메모리 안전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메모리 관리를 온전히 개발자의 ‘책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에게 메모리 릭을 포함한 메모리 관리에 대한 토론은, 피해야 할 ‘치부’가 아니라 실력을 가늠하고 향상시키는 ‘일상적인 훈련’에 가깝습니다.

반면,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는 ‘도구의 완벽함’이라는 신화를 수호하기 위해, 도구가 해결하지 못하는 특정 문제(‘메모리 릭’)가 거론되는 것 자체를 ‘논점 이탈’이라며 방어벽을 칩니다. 이는 문제 해결의 책임을 개발자의 역량으로 내재화하는 대신, 문제 자체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외재화하려는 시도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러스트 우월주의가 기술적 논쟁을 넘어, 어떻게 책임과 성숙의 문제로 이어지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증명의 영역: Ada/SPARK의 수학적 안전성과 러스트의 한계

러스트의 ‘안전성’이 C/C++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안전성이 시스템 프로그래밍 세계에서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정점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명백한 과장입니다. 안전성이라는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간 가장 엄격한 신뢰성을 요구하는 분야를 지배해 온 Ada/SPARK 생태계와 러스트의 보장 수준을 직접 비교해야만 합니다.

러스트의 안전성 보장: ‘메모리 안전’의 영역

러스트의 핵심적인 안전성은 ‘소유권’과 ‘빌림’ 규칙을 통해 컴파일 시점에 메모리 안전(memory safety)과 데이터 경쟁(data race) 부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컴파일만 통과하면 해당 유형의 버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선언이며, ‘제로 코스트 추상화’ 원칙 덕분에 런타임 성능 저하 없이 이 모든 것을 달성합니다. 이것은 러스트가 이룬 위대한 공학적 성취입니다.

하지만 러스트의 보장은 이 영역에 머무릅니다.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논리적 정확성(logical correctness)이나, 모든 종류의 런타임 오류(runtime error) 부재까지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정수 오버플로우, 배열 인덱스 초과, 0으로 나누기 등의 오류는 여전히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메모리 오염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빠지는 대신, ‘패닉(panic)’이라 불리는 통제된 프로그램 중단으로 이어질 뿐,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안정적 실행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Ada/SPARK의 안전성 보장: ‘프로그램 정확성’의 영역

반면, Ada/SPARK 생태계는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안전성을 목표로 합니다.

  1. Ada의 기본 안전성: Ada 언어 자체는 강력한 타입 시스템과 계약 기반 설계(pre, post 조건 등)를 통해 메모리 오류뿐만 아니라 논리적 오류까지도 방지하려 시도합니다. 특히 정수형 연산에서의 오버플로우를 기본적으로 검사하며, 오버플로우가 발생할 경우 런타임에 ‘Constraint_Error’와 같은 예외(exception)를 발생시켜 프로그램이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빠지는 것을 막습니다. 만약 컴파일 시점에 증명할 수 없는 잠재적 오류(예: 런타임 입력값에 따른 배열 접근)가 있다면, 이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예외(exception)를 발생시키는 코드를 런타임에 포함시켜 프로그램의 예측 불가능한 붕괴를 막습니다. 이는 오류로부터 시스템이 회복하여 임무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회복력(Resilience)’을 제공합니다.

  2. SPARK의 수학적 증명: SPARK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Ada의 ‘런타임 검사’조차 필요 없게 만든다. SPARK의 정형 검증 도구는 코드의 실행 경로를 수학적으로 분석하여, 런타임 오류 자체가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여기에는 정수 오버플로우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산술적 오류, 배열 인덱스 초과, 0으로 나누기 등이 포함됩니다.

아래 표는 두 언어(와 서브셋)의 보장 수준 차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오류 유형 Rust Ada (기본) SPARK
메모리 오류 (UB) 컴파일 시 차단 (보장) 컴파일/런타임 차단 (보장) 수학적으로 부재 증명
데이터 경쟁 컴파일 시 차단 (보장) 컴파일/런타임 차단 (보장) 수학적으로 부재 증명
정수 오버플로우 panic 또는 순환(설정따라 다름) 런타임 예외 발생 (안전) 수학적으로 부재 증명
배열 범위 초과 panic (프로그램 중단) 런타임 예외 발생 (안전) 수학적으로 부재 증명
논리적 오류 프로그래머 책임 계약 기반 설계로 일부 방지 계약에 따라 부재 증명 가능

표에서 명확히 드러나듯이, 러스트의 안전성은 뛰어나지만 Ada/SPARK 생태계가 제공하는 다층적이고 수학적인 보증 수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특히 Ada는 오버플로우를 포함한 산술적 오류를 언어 표준에 따라 기본적으로 검사하고 예외를 발생시키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는 러스트가 릴리즈 모드에서 오버플로를 묵시적으로 처리(예: 순환, wrapping)하거나, 사용자가 빌드 환경 설정(Cargo.toml 등)을 통해 명시적으로 검사를 활성화해야 하는 방식과 대비되는 Ada의 주요 안전성 특징으로 평가됩니다.

따라서 러스트의 안전성이 마치 ‘궁극의 정점’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커뮤니티의 지배적인 서사는, 오직 C/C++만을 비교 대상으로 삼고 더 넓은 기술의 역사를 외면하는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시각에 불과합니다.

진화하는 거인: 현대 C/C++ 생태계의 다층적 안전성

러스트의 ‘구원자 서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악마’가 필요하며, 그 역할은 언제나 C/C++의 몫이었습니다. 러스트의 정체성은 “C/C++이 수십 년간 해결하지 못한 메모리 문제들을 해결했다”는 대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이 주장은 C/C++을 1990년대의 모습, 즉 malloc/free와 날것의 포인터가 난무하던 시대에 박제시켜 놓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위험한 C++’이라는 이 낡은 프레임은, 지난 20년간 C++ 언어 자체와 그 생태계가 겪어온 눈부신 ‘진화’를 의도적으로 무시합니다. 현대 C/C++ 개발의 현실은, 러스트 일부 지지자들의 주장처럼 무방비 상태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 않으며, 다음과 같은 다층적 안전망을 통해 신뢰성을 확보합니다.

언어의 진화: 모던 C++와 스마트 포인터

첫째로, 언어 자체의 발전입니다. C++11 표준 이후 ‘모던 C++’이라 불리는 현대 C++은, RAII 패턴을 언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스마트 포인터(std::unique_ptr, std::shared_ptr)를 표준 라이브러리에 도입했습니다. 이는 자원의 소유권을 명확히 하고 메모리를 자동으로 관리하여, 구식 C++의 고질적인 메모리 문제 상당수를 방지합니다.

도구 생태계의 성숙: 자동화된 다층 방어

둘째는 정적 및 동적 분석을 아우르는 성숙한 도구 생태계입니다. 오늘날 전문적인 C/C++ 개발자들은 다음과 같은 자동화된 도구들을 겹겹이 쌓아 안전성을 확보합니다.

  • 실시간 린팅: Clang-Tidy와 같은 린터(linter)는 개발자가 코드를 작성하는 순간부터 잠재적인 오류와 좋지 않은 코딩 습관을 지적하며, 현대적인 IDE에 통합되어 실시간 피드백을 제공하는 첫 번째 안전망이 됩니다.
  • 정적 분석: Clang Static Analyzer, Coverity, PVS-Studio와 같은 강력한 정적 분석 도구들은 코드베이스 전체를 정밀하게 분석하여 컴파일 전에 수많은 잠재적 버그를 찾아내는 두 번째 방어선 역할을 합니다.
  • 동적 분석: Valgrind와 같은 동적 분석 도구는 프로그램을 실제 실행하며 메모리 접근을 감시하여, 정적 분석만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미묘한 메모리 릭이나 use-after-free 등의 오류를 런타임에 정확히 잡아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세 번째 안전망을 구축합니다.

미션 크리티컬 시스템의 접근법: 엄격한 규율과 증명

셋째,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동차, 항공, 의료 기기와 같이 단 하나의 오류도 허용되지 않는 ‘미션 크리티컬(Mission-Critical)’ 시스템 분야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엄격한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 분야에서 C/C++은 ‘날것 그대로’ 사용되지 않고, 다음과 같은 체계를 통해 신뢰성을 ‘검증’받습니다.

  1. 코딩 표준 강제: 자동차 산업에서 시작된 MISRA C/C++와 같은 코딩 표준은, 동적 메모리 할당이나 재귀 함수 호출처럼 예측 불가능성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언어 기능의 사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안전한 코딩 패턴을 강제합니다.
  2. 코드 계약 명시: 개발자는 SAL(Standard Annotation Language)이나 ACSL(ANSI/C Specification Language)과 같은 애노테이션 언어를 사용하여 ‘이 포인터는 절대 null이 아님’ 또는 ‘이 함수가 실행된 후에는 이 값이 양수여야 함’과 같은 ‘계약’을 코드에 직접 명시합니다.
  3. 정적 검증 수행: 이렇게 작성된 코드는 Polyspace, Frama-C와 같은 정적 코드 검증(Static Code Verification) 도구를 통해, MISRA 표준과 명시된 계약의 준수 여부 및 런타임 오류 발생 가능성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검증’받습니다.

이 과정을 통과한 C/C++ 코드는, 일반적인 애플리케이션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C/C++은 위험하다’는 러스트 지지자들의 주장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낡은 과거의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러스트의 컴파일러 내장 안전장치가 매우 강력하고 훌륭한 접근법인 것은 사실이나, 그것만이 안전을 향한 유일한 길이 아니며, ‘모던 C++ 언어와, 일반적인 정적/동적 분석, 그리고 미션 크리티컬 분야의 엄격한 검증’으로 이어지는 C/C++의 다층적 안전성 확보 방식 또한 존중받아야 할 현실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실용적 대안: 가비지 컬렉션의 재평가 (Go, C#, Java)

러스트의 ‘영웅 서사’에서 C/C++이 ‘타도해야 할 낡은 악마’라면, 가비지 컬렉션(GC)을 사용하는 언어들(Go, C#, Java 등)은 ‘성능을 포기한 나태한 자들’로 묘사되곤 합니다. 러스트 지지자들은 종종 “GC는 예측 불가능한 ‘Stop-the-World’ 멈춤 현상을 유발하고, 메모리 사용량이 많아 진짜 시스템 프로그래밍에는 부적합하다”고 주장하며, GC가 없는 러스트의 우월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1990년대의 초기 GC 기술에 대한 기억에 머물러 있는, 시대착오적인 비판에 불과합니다. 지난 20여 년간 가비지 컬렉션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으며, 현대의 GC는 과거의 비효율적인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성능과 예측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주류 언어들이 사용하는 GC는 제너레이셔널(Generational) GC, 동시성(Concurrent) GC, 병렬(Parallel) GC 등 정교한 기법들을 통해 애플리케이션의 실행을 거의 방해하지 않으면서 메모리를 관리합니다. 특히 Go 언어의 GC는 마이크로초(µs) 단위의 매우 짧은 멈춤 시간을 목표로 설계되어, 수많은 고성능 네트워크 서버와 클라우드 인프라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Java 진영의 ZGCShenandoah GC와 같은 최신 GC들은 수백 기가바이트(GB)에 달하는 거대한 힙(Heap)에서도 밀리초(ms) 수준의 일시 정지를 보장하며, ‘GC 때문에 시스템이 멈춘다’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결국, 이는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에 대한 철학의 차이일 뿐,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한 것이 아닙니다.

  • 러스트의 비용: 개발자가 ‘보로 체커와 싸우는’ 정신적 비용과 가파른 학습 곡선, 그리고 긴 컴파일 시간이라는 ‘인간의 시간’과 ‘개발 시간’을 비용으로 지불합니다.
  • 현대 GC 언어의 비용: 런타임에 약간의 CPU와 메모리 자원을 사용하는 ‘기계의 시간’을 비용으로 지불합니다.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는 ‘인간의 고통’을 감수하여 ‘기계의 완벽한 효율’을 추구하는 것을 유일하게 올바른 길처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값비싼 개발자의 시간을 아끼고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다면, 저렴한 하드웨어 자원을 조금 더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입니다.

물론, 하드웨어 제약이 극심한 임베디드 시스템이나 하드 리얼타임(hard real-time) 운영체제와 같이 GC의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운 영역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한 경우를 일반화하여 모든 GC 언어를 ‘시스템 프로그래밍에 부적합하다’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편협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절대적 우위는 없다: 성능, 메모리, 생산성의 상충 관계 분석

지금까지 우리는 Ada/SPARK의 수학적 증명, 진화하는 C/C++ 생태계, 그리고 현대적인 가비지 컬렉션(GC) 언어라는 다양한 선택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모든 논의는 단 하나의, 그러나 매우 중요한 결론으로 귀결됩니다. 바로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단 하나의 완벽한 언어, 즉 ‘만능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공학의 세계는 언제나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의 연속입니다. 일반적으로 언어의 특성은 성능(Performance), 메모리 제어(Memory Control), 그리고 개발 생산성(Developer Productivity)이라는 세 가지 축 위에서 평가받으며,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최고 수준으로 만족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각 언어와 생태계는 자신들의 철학에 따라 이 세 가지 요소 사이에서 각기 다른 지점을 선택한 것뿐입니다.

  • C/C++: ‘개발 생산성’과 ‘안전성’을 희생하는 대신, ‘절대적인 성능과 메모리 제어권’을 선택했습니다. 개발자는 강력한 힘을 얻는 대가로, 모든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합니다.
  • Java/Go/C#: ‘절대적인 성능과 메모리 제어권’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압도적인 개발 생산성’을 선택했습니다. 기계(GC)가 더 많은 일을 하는 대가로, 인간은 더 빠르고 쉽게 개발할 수 있습니다.
  • Ada/SPARK: 다른 모든 가치보다 ‘궁극의 신뢰성과 안전성’을 선택했습니다. 그 대가로 가장 높은 수준의 개발 비용과 노력을 요구합니다.
  • 러스트: “성능과 안전성”을 동시에 잡으려 시도한, 이러한 상충 관계 속에서 새로운 해법을 찾으려는 도전입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보로 체커와의 싸움으로 대표되는 ‘가파른 학습 곡선과 인지적 부하’, 즉 ‘개발 생산성’의 일부를 비용으로 지불합니다.

문제는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가, 자신들이 절충하여 선택한 이 독특한 지점이 마치 유일하게 올바르거나 도덕적으로 우월한 길인 것처럼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는 공학적 현실을 무시하는 독선적인 태도입니다. 프로젝트의 요구사항에 따라 최적의 선택은 달라집니다.

  • 빠른 시장 출시가 중요한 웹 서비스 백엔드에, 러스트의 높은 학습 비용과 생태계 미성숙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때는 Go나 C#이 더 나은 선택지입니다.
  • 단 하나의 런타임 오류도 허용할 수 없는 항공기 제어 시스템이라면, 러스트가 아닌 SPARK가 정답입니다.
  • 새로운 CLI 도구나 웹 브라우저의 핵심 엔진처럼, 메모리 안전성과 성능이 동시에 극도로 중요한 특정 ‘틈새시장’에서는 러스트가 아주 훌륭하고 매력적인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최고의 언어’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특정 문제에 가장 적합한 도구’가 있을 뿐입니다. 모든 언어는 각자의 장점과 그에 따르는 비용을 가집니다. 성숙한 엔지니어는 이러한 상충 관계를 이해하고, 주어진 문제에 가장 적합한 도구를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춘 사람입니다. 특정 언어를 ‘만능 해결책’처럼 여기고 다른 모든 대안을 폄하하는 태도는, 기술적 성숙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메모리 너머의 위험: 러스트가 막지 못하는 버그들

지금까지 우리는 러스트의 안전성이 가진 한계와, 그것이 다른 언어 및 생태계와 비교하여 절대적인 우위에 있지 않음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러스트가 자랑하는 그 강력한 ‘안전성’이 오직 ‘메모리 안전성’이라는 매우 특정한 영역에 국한된다는 점입니다.

러스트 커뮤니티의 ‘안전성’에 대한 끊임없는 강조는, 자칫하면 “러스트로 컴파일된 프로그램은 치명적인 버그로부터 자유롭다”는 위험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진실이 아닙니다. 러스트의 안전망은 견고하지만 특정 영역만을 보호합니다. 그 성벽 너머에는 컴파일러가 감지하지 못하는, 그리고 전적으로 개발자의 책임으로 남는 광활한 버그의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 논리적 오류 (Logical Errors): 소프트웨어 버그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논리적 오류입니다. 코드는 메모리 관점에서 완벽하게 안전하고, 컴파일러는 아무런 경고도 보내지 않지만, 프로그램은 완전히 잘못된 동작을 합니다. 이자 계산 프로그램이 덧셈 대신 뺄셈을 하거나, 할인율을 두 번 적용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러스트의 보로 체커는 당신의 코드가 메모리 관점에서 안전한지는 알지만, 당신의 코드가 ‘옳은 일’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 정수 오버플로우 (Integer Overflows): 디버그 모드에서는 정수 오버플로우 발생 시 panic을 일으키지만, 성능이 중요한 릴리즈 모드에서는 기본적으로 값이 조용히 순환(wrap)해버립니다. 이는 의도된 설계지만, 예기치 못한 데이터가 입력될 경우 재고 수량이 음수가 되거나, 자금이 사라지는 등의 심각한 논리적 오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리소스 고갈 (Resource Exhaustion):
    • 메모리 릭: 앞서 지적했듯, RcRefCell의 순환 참조는 safe 코드에서도 메모리 릭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오래 실행될수록 가용 메모리는 계속해서 줄어들 것입니다.
    • 기타 리소스: 러스트는 파일 핸들, 네트워크 소켓, 데이터베이스 커넥션과 같은 자원을 자동으로 닫아주지 않습니다. 개발자가 직접 자원 해제를 관리하지 않으면, 시스템은 결국 리소스 고갈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 데드락 (Deadlocks): 러스트의 소유권 시스템은 여러 스레드가 동일한 데이터에 동시에 접근하여 발생하는 ‘데이터 경쟁’을 훌륭하게 막아줍니다. 하지만, 여러 스레드가 서로 다른 자원을 점유한 채 상대방의 자원을 무한정 기다리는 ‘교착 상태(데드락)’는 방지하지 못합니다. 이는 메모리 문제가 아닌, 동시성 설계의 논리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러스트는 C/C++ 시대의 가장 고질적인 악몽이었던 메모리 오류를 해결하는 데 있어 기념비적인 진전을 이룬 언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버그 없는 소프트웨어’를 보장하는 만능 해결책은 결코 아닙니다. 소프트웨어 공학의 본질적인 어려움은 언제나 복잡한 요구사항을 정확한 논리로 구현하는 데 있으며, 이 책임은 그 어떤 위대한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결국 개발자 자신에게 있습니다. 도구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신화일 뿐입니다.

2.2. 보로 체커(Borrow Checker)는 만능인가?

보로 체커의 순기능 인정, 하지만 과도한 맹신

러스트의 ‘안전성 신화’를 떠받치는 가장 실질적이고 강력한 기둥은 단연 보로 체커(Borrow Checker)입니다. 보로 체커는 의심할 여지 없이 러스트를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기념비적인 기술적 성취입니다. 소유권, 빌림, 생명주기라는 규칙을 컴파일 시점에 강제함으로써, 가비지 컬렉터의 런타임 비용 없이도 메모리 안전성과 데이터 경쟁 부재를 보장한다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시스템 프로그래밍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보로 체커는 C/C++ 개발자들이 수십 년간 겪어온 고질적인 악몽을 해결해 주는 강력한 수호자 역할을 합니다. 컴파일만 통과하면, 적어도 해당 유형의 오류에 대해서는 두려움 없이 코드를 실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여합니다. 이 책은 보로 체커가 이룬 이러한 위대한 공학적 순기능을 결코 부정하거나 폄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둘러싼 ‘과도한 맹신’‘신격화’의 문화입니다.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에서는 보로 체커가 단순한 ‘컴파일러의 기능’을 넘어,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현명한 스승’이나 오류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절대적인 수호신’처럼 숭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컴파일 에러는 보로 체커의 한계나 비효율성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니라, 오롯이 프로그래머의 미숙함과 잘못된 설계를 꾸짖는 ‘신성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러한 태도는 보로 체커를 비판 불가능한 ‘성역’으로 만들고, 그것이 강요하는 막대한 비용에 대한 건전한 토론을 억압합니다. 러스트의 컴파일러가 제공하는 안전 보증서의 뒷면에는, ‘극악의 학습 곡선’, ‘개발 생산성의 저하’, 그리고 ‘특정 디자인 패턴 구현의 어려움’이라는 매우 비싼 가격표가 붙어있다는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절에서는 이 과도한 맹신이 어떻게 개발 생산성에 실질적인 대가를 치르게 하고, “보로 체커와 싸우는 즐거움”이라는 기이한 자기 합리화로 이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개발 생산성 저하와 학습 곡선이라는 현실적 대가

러스트의 안전성이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은, 러스트를 처음 배우는 모든 개발자가 ‘통곡의 벽’처럼 마주하는 가파른 학습 곡선에서부터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다른 대부분의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쌓아온 경험과 직관은 러스트의 세계에서는 종종 무력해집니다. 객체지향, 함수형, 절차형 프로그래밍의 패러다임에 익숙한 개발자라 할지라도, 모든 값의 ‘소유권’을 추적하고, 데이터의 ‘빌림’ 관계를 따지며, 참조의 ‘생명주기’를 명시해야 하는 러스트의 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새로운 문법 몇 개를 배우는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프로그램의 구조 자체를 보로 체커의 엄격한 규칙에 맞춰 설계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개발자들은 필연적으로 ‘컴파일러와의 싸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논리적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코드임에도 불구하고, 컴파일러는 “소유권이 이미 이동했다”, “가변 참조와 불변 참조가 공존할 수 없다”, “생명주기가 충분히 길지 않다”와 같은, 처음에는 암호처럼 느껴지는 에러 메시지를 쏟아냅니다.

이 ‘싸움’의 대가는 바로 개발 생산성의 저하입니다. 개발자는 문제의 본질적인 비즈니스 로직을 구현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컴파일 에러를 해결하기 위해 몇 시간이고 코드를 이리저리 수정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가장 흔한 해결책은 일단 .clone()을 추가하여 소유권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지만, 이는 불필요한 메모리 할당과 복사를 유발하여 러스트가 자랑하는 ‘성능’의 장점을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로 체커의 규칙이 너무 엄격하여 특정 디자인 패턴의 구현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자료 구조 중 하나인 이중 연결 리스트(doubly-linked list)나 그래프(graph) 구조에서 부모 노드를 가리키는 포인터를 구현하는 것은 ‘안전한(safe) 러스트’ 코드만으로는 지극히 까다롭고 부자연스럽습니다. 이는 보로 체커가 만능이 아니며, 그 분석 모델이 모든 유효한 프로그램을 표현할 수는 없다는 명백한 한계를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러스트의 컴파일 타임 안전성은 매우 비싼 ‘통행세(toll)’를 요구합니다. 그 비용은 바로 개발자의 시간, 노력, 그리고 인지적 부하입니다. 모든 공학적 결정이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는 과정이기에, 이러한 비용의 존재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가 이 명백한 대가를 인정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다음 절에서 살펴볼 것처럼 이것을 ‘즐거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보로 체커와 싸우는 즐거움”이라는 이중적 태도 비판

앞서 우리는 보로 체커의 엄격함이 가파른 학습 곡선과 실질적인 개발 생산성 저하라는 비싼 대가를 요구한다는 현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러스트 커뮤니티 일부에서 나타나는, 매우 기이하고 모순적인 태도와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즐거움’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러스트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보로 체커와 싸우는 것은 즐겁다”거나, “컴파일러에게 내가 틀렸음을 배우는 과정이 나를 더 나은 프로그래머로 만든다”는 식의 주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옳아 보이는 코드가 암호 같은 에러 메시지와 함께 거부당하며 보내는 좌절의 시간을, 그들은 마치 ‘현명한 스승과의 지적인 스파링’이나 ‘고수가 되기 위한 통과 의례’처럼 묘사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노력 정당화(Effort Justification)’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러스트는 생산적이고 우월한 언어다”라는 강한 믿음과, “나는 지금 이 언어 때문에 몇 시간째 고통받고 있다”는 현실 사이의 괴리는 상당한 심리적 불편함을 낳습니다. 이 부조화를 해소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신이 쏟아부은 막대한 노력을 폄하하는 대신, 그 고통스러운 과정 자체에 숭고하고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즉, “나의 고통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장을 위한 즐거운 과정이었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자기 합리화입니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태도가 드러내는 지독한 이중잣대(Double Standard)입니다. 현대적인 개발자 경험(DX)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척하는 커뮤니티가, 실질적으로는 최악의 개발 경험 중 하나인 ‘컴파일러와의 기나긴 싸움’을 찬양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입니다. 만약 다른 언어의 컴파일러가 그토록 불친절하고 엄격하게 굴었다면, 그것은 ‘현명한 스승’이 아니라 ‘결함 있는 도구’라고 비판받았을 것입니다.

결함마저 ‘가르침’이나 ‘즐거움’으로 포장하는 이러한 맹신은 두 가지 심각한 결과를 낳습니다. 첫째, 이제 막 러스트에 입문하여 이 ‘싸움’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수많은 개발자들에게 “당신은 이 길을 걸을 자격이 없다”는 식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듭니다. 둘째, 보로 체커의 에러 메시지를 개선하거나, 더 유연한 분석 모델을 탐구하는 등 언어 자체의 발전을 위한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를 억누릅니다. 버그가 아닌 ‘기능’으로 포장된 고통을 개선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보로 체커와 싸우는 즐거움’이라는 수사학은 러스트의 우월성을 지키기 위한 정교한 심리적 방어기제일 뿐, 결코 건강한 개발 문화의 모습이 아닙니다. 이는 러스트의 진정한 발전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신화’에 불과합니다.

2.3. unsafe 블록과 위선의 경계

안전성 강조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unsafe: 그 존재 이유와 통제 문제

‘안전성’이라는 절대적인 가치를 정체성으로 삼아온 러스트에는, 그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판도라의 상자’가 하나 존재합니다. 바로 unsafe 키워드입니다. unsafe는 말 그대로, 개발자가 컴파일러에게 “이 블록 안에서는 내가 모든 책임을 질 테니, 당신의 엄격한 규칙(보로 체커)을 잠시 멈춰달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블록 안에서는 날것의 포인터(raw pointer)를 역참조하거나, 안전하지 않은 함수를 호출하는 등 C/C++에서나 가능했던 위험한 작업들이 허용됩니다.

그렇다면 안전성을 그토록 강조하는 언어가 왜 이러한 ‘탈출구’를 마련해 두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러스트가 현실 세계에서 유용한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로 기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1. 세상과의 소통: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운영체제는 러스트의 안전 규칙을 알지 못합니다. 하드웨어의 특정 메모리 주소에 직접 접근하거나, C언어로 작성된 운영체제의 API나 외부 라이브러리를 호출하기 위해서는, 컴파일러의 통제를 벗어나는 unsafe 코드가 필수적입니다.
  2. 컴파일러의 한계 초월: 보로 체커는 매우 뛰어나지만 만능은 아닙니다. 일부 복잡한 자료구조나 고도로 최적화된 코드는, 실제로는 안전함에도 불구하고 보로 체커의 분석 능력을 벗어난다는 이유로 컴파일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unsafe는 이러한 컴파일러의 한계를 넘어, 개발자가 ‘안전함’을 스스로 증명하고 구현할 수 있게 해주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실제로 러스트의 표준 라이브러리 내부도 수많은 unsafe 블록으로 채워져 있으며, 이 위험한 코드가 안전하게 추상화되어 우리에게 제공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unsafe의 존재 이유가 아니라, 그것이 러스트의 ‘안전성 보장’이라는 대전제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흔드는가에 있습니다. unsafe 블록이 단 하나라도 포함되는 순간,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안전성은 더 이상 컴파일러에 의해 100%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제 프로그램의 안전성은, 코드 전체에 흩어져 있는 모든 unsafe 블록들이 단 하나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작성되었을 것이라는 ‘믿음’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최첨단 보안 시스템과 두꺼운 강철문(safe 코드와 보로 체커)으로 요새를 지어놓고, 곳곳에 관리자만 아는 ‘비밀 뒷문’(unsafe 블록)을 만들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요새의 전체적인 안전성은 이제 강철문의 두께가 아니라, 그 비밀 뒷문들이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는지에 달려있게 된 것입니다. 단 하나의 unsafe 블록 안에서 발생한 실수는, 러스트가 막아준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 메모리 오염과 보안 취약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unsafe는 러스트를 실용적인 언어로 만들어주는 필요악입니다. 하지만 그 존재는 러스트가 ‘마법처럼 안전한 언어’가 아니라, ‘거대한 안전한 부분(safe subset)과 작지만 치명적인 불안전한 부분(unsafe subset)으로 이루어진 언어’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진짜 문제는 unsafe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이어지는 절에서 살펴볼 것처럼 이 위험한 탈출구를 대하는 커뮤니티의 이중적인 태도와 책임 전가의 문제입니다.

unsafe 사용 시 러스트 개발자의 책임 전가와 “너는 안전하게 쓰고 있니?”식의 태도 비판

unsafe 블록의 존재가 만들어내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것이 기술적인 허점을 넘어 커뮤니티의 ‘지적 위선(intellectual hypocrisy)’과 ‘책임 전가’를 위한 완벽한 알리바이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러스트의 안전성을 칭송할 때와, 그 안전성이 깨졌을 때의 태도가 180도 달라지는 이중적인 모습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러스트 커뮤니티는 C/C++의 위험성을 비판하며, 러스트의 보로 체커가 어떻게 개발자를 ‘인간의 실수’라는 책임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어떤 라이브러리에서 unsafe 코드로 인한 메모리 오류나 세그멘테이션 폴트가 발생하여 보고되면, 그들의 태도는 돌변합니다. “러스트가 안전하지 않다”는 비판에 대해, 그들은 즉시 다음과 같은 방어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혹시 unsafe 코드를 사용하지는 않으셨나요? 그 라이브러리는 unsafe를 얼마나 사용하나요? 당신은 unsafe를 안전하게 감싸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이 질문의 저의는 명백합니다. 프로그램의 붕괴는 ‘러스트의 안전성 보장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개발자가 unsafe를 부주의하게 사용한 탓’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책임은 다시 ‘인간의 실수’에게로 전가됩니다. ‘안전한 러스트’의 신화는 흠집 없이 유지되고, 모든 실패는 ‘안전하지 않은 코드’라는 꼬리표가 붙은 채 개인의 책임으로 축소됩니다.

이러한 책임 전가가 위선인 이유는, 앞서 살펴보았듯 unsafe가 일부 전문가만 사용하는 특수한 기능이 아니라, 사실상 모든 실용적인 러스트 프로그램의 기반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Vec<T>, String, HashMap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자료구조조차도 그 내부 구현은 unsafe 코드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운영체제와 통신하는 모든 저수준 기능, 다른 언어와의 모든 상호작용(FFI)은 unsafe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즉, 안전한(safe) 러스트의 편리함과 성능은, 누군가가 작성한 불안전한(unsafe) 코드라는 희생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모순에 빠집니다.

  1. 성공 시: “우리가 unsafe를 안전하게 추상화하여 제공했기 때문에, 당신은 안전하게 코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러스트의 위대함입니다.”
  2. 실패 시: “당신이 사용한 라이브러리에 unsafe가 있었군요. 그것은 러스트의 안전성 보장 범위 밖의 일입니다. 러스트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는 마치 자동차 회사가 ‘궁극의 안전성’을 광고하며 차를 팔고, 막상 에어백(unsafe에 해당하는, 본질적으로 위험한 부품)이 오작동하여 사고가 나자 “원래 폭발물(에어백)이 들어있는 부품의 안전까지는 저희가 보증하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직접 그 안전성을 검증했어야죠”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태도는 unsafe 코드를 작성하는 용감한 개발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안전성 신화’의 단물만을 취하려는 기만적인 행위입니다. 이는 커뮤니티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고, 저수준 라이브러리 개발을 위축시키는 명백한 ‘위선’입니다.

2.4. ‘안전한 실패’의 역설: Segmentation Fault와 Panic

패닉의 본질: 메모리 오염 없는 크래시(Crash)일 뿐인가?

러스트의 안전성 신화를 방어하는 마지막 논리는 “설령 프로그램이 죽더라도, 러스트는 안전하게 죽는다”는 것입니다. C/C++에서 발생하는 세그멘테이션 폴트(Segmentation Fault)는 메모리 오염, 데이터 손상, 보안 취약점 등 예측 불가능한 상태를 야기하는 ‘더러운 죽음’인 반면, 러스트의 패닉(panic)은 스택을 안전하게 풀고 자원을 정리하며 종료되는 ‘깨끗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술적 구분은 명백한 사실이며, 디버깅의 용이성이나 보안적인 측면에서 panic이 세그멘테이션 폴트보다 훨씬 더 나은 실패 방식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러스트 컴파일러는 프로그램이 통제 불능의 상태로 폭주하는 대신, 명확한 유언을 남기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종료되도록 보장합니다.

하지만, ‘안전하게 죽는 것’이 과연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관점을 개발자의 컴퓨터 앞에서 최종 사용자의 현실로 옮겨와야 합니다. 문서를 작성하던 사용자, 중요한 금융 거래를 처리하던 서버, 혹은 게임의 클라이맥스를 즐기던 게이머에게, 프로그램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은 그 원인이 ‘메모리 오염’이든 ‘통제된 패닉’이든 본질적으로 동일한 ‘실패’일 뿐입니다. 워드프로세서는 멈췄고, 거래는 실패했으며, 게임은 꺼졌습니다.

이를 비행기 조종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한 조종사는 엔진 고장이 발생하자 조종간을 놓고 비행기가 멋대로 빙글빙글 돌며 산에 추락하게 내버려 둡니다(세그멘테이션 폴트). 다른 조종사는 같은 고장 상황에서 승객들에게 “회복 불가능한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라고 침착하게 안내 방송을 한 뒤, 기체를 완벽하게 수평으로 유지하며 똑같은 산에 그대로 충돌합니다(패닉).

사고 기록을 분석하는 조사관(개발자)의 입장에서는 두 번째 조종사가 남긴 블랙박스가 훨씬 더 분석하기 쉽고 깔끔할 것입니다. 하지만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사용자)에게 그 결과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안전한 비행’이라는 약속은 두 경우 모두 똑같이 깨졌습니다.

결론적으로, 러스트의 panic이 기술적으로 더 우아한 실패 방식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안전한 죽음’을 러스트가 제공하는 ‘안전성’의 핵심적인 승리인 것처럼 강조하는 것은, ‘시스템의 생존’과 ‘서비스의 연속성’이라는 더 중요한 가치를 가릴 수 있습니다. 이는 ‘안전성’의 의미를 ‘신뢰성’이나 ‘강건함’이 아닌, ‘깔끔한 사후 처리’라는 협소한 의미로 축소시키는 또 다른 형태의 용어 재정의일 수 있습니다.

사용자 관점에서의 프로그램 중단: Segfault와 Panic의 실질적 차이

앞서 우리는 프로그램이 갑자기 중단되는 순간, 사용자에게는 세그멘테이션 폴트(Segfault)와 패닉(Panic)의 경험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사라진 그 이후’의 상황을 고려하면, 두 실패 사이에는 분명 실질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차이점이 항상 러스트에 유리하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러스트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가장 큰 차별점은 바로 데이터 무결성(Data Integrity)의 보존입니다. 세그멘테이션 폴트는 정의되지 않은 동작(UB)의 결과이므로, 프로그램이 충돌하기 직전에 어떤 일을 저질렀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저장 중이던 파일이 깨지거나, 데이터베이스가 오염되는 등 2차적인 피해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반면, 러스트의 패닉은 스택 되감기(unwinding)를 통해 각 객체의 소멸자(drop)를 호출하므로, 파일 버퍼를 안전하게 비우고, 데이터베이스 트랜잭션을 롤백하는 등의 정리 작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즉, 프로그램은 죽더라도, 자신이 다루던 데이터는 오염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패닉은 세그멘테이션 폴트보다 명백히 우월한 실패 방식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안전성의 역설’이라고 부를 만한 새로운 문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안전한 죽음’이 보장된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강건함(Robustness)을 해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C/C++ 개발자는 “모든 것이 위험하다”는 건강한 공포 속에서 살아갑니다. 포인터는 언제나 null일 수 있고, 배열의 경계는 언제나 넘어설 수 있으며, 그 결과는 예측 불가능한 재앙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러한 공포는 개발자에게 강력한 방어 코딩을 강제합니다. 모든 입력을 의심하고, 모든 반환 값을 검사하며, 오류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든 프로그램을 안정적인 상태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반면, 러스트 개발자는 “컴파일러가 나를 지켜준다”는 강력한 심리적 안전망 속에서 개발합니다. 메모리 오류는 컴파일러가 막아줄 것이고, 다른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프로그램은 ‘안전하게’ 패닉할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바로 이 ‘안전한 패닉’이라는 존재가, 개발자에게 ‘굳이 복잡한 오류 처리를 하기보다, 문제가 생기면 그냥 패닉하게 내버려 두자’는 유혹을 만들어냅니다. Result 타입을 일일이 처리하는 대신 .unwrap()이나 .expect()를 남용하는 코드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결국 사용자의 관점에서는 어떤 경험이 더 나을까요? 잘못된 입력을 받았을 때 “입력이 잘못되었습니다. 다시 시도해주세요.”라는 에러 메시지를 보여주고 정상 작동하는 C 프로그램과, 같은 상황에서 아무런 설명 없이 화면에서 사라져버리는 러스트 프로그램 중 어느 쪽이 더 신뢰성 높은 소프트웨어일까요?

결론적으로, 패닉은 데이터 무결성 측면에서 분명한 장점을 가집니다. 하지만 ‘안전한 실패’라는 개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문화는, 개발자가 오류로부터 회복하고 서비스를 지속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데이터는 지켰지만 프로그램은 죽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결코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결국, 언어의 안전성이 아닌 개발자의 역량과 철학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결국은 프로그래머의 역량: 언어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환상 비판

우리는 지금까지 러스트의 ‘안전성’이 가진 여러 겹의 신화를 해체해 보았습니다. ‘혁신’과 ‘안전성’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자의적으로 재정의되는지, 보로 체커의 엄격함이 어떤 현실적인 대가를 요구하는지, unsafe라는 탈출구가 어떻게 신화의 완전성을 해치는지, 그리고 ‘안전한 실패’라는 panic이 사용자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모든 논의의 끝에서, 우리는 결국 가장 근본적이고도 당연한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소프트웨어의 품질을 결정하는 최종적인 변수는 언어나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프로그래머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훌륭한 목수는 평범한 톱과 망치를 가지고도 견고하고 아름다운 가구를 만들어내지만, 미숙한 목수는 최첨단 레이저 절단기를 가지고도 서랍이 맞지 않는 가구를 만듭니다. 프로그래밍의 세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메모리 관리 원칙을 깊이 이해하고, 방어적으로 코딩하며, 엄격한 테스트를 수행하는 숙련된 C++ 개발자는, .clone().unwrap()을 남발하며 보로 체커만 통과시키는 데 급급한 미숙한 러스트 개발자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신뢰성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러스트는 매우 위험한 특정 유형의 버그(메모리 오류, 데이터 경쟁)를 막아주는 강력한 안전망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공학의 진짜 어려움은 그 너머에 있습니다.

  • 복잡한 요구사항을 정확한 논리로 변환하는 능력
  • 유지보수와 확장이 용이한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능력
  • 다양한 예외 상황을 예측하고, 시스템이 우아하게 대처하도록 만드는 능력
  • 자신이 작성한 코드가 정말 올바르게 동작하는지 증명하는 철저한 테스트를 작성하는 능력

러스트는 이 중 그 어떤 것도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러스트의 컴파일러는 코드의 ‘메모리 안전성’은 알지만, 코드의 ‘정확성’, ‘효율성’, ‘유지보수성’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러스트를 사용하면 안전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은, ‘최고급 주방기구를 사면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있다’는 믿음과 같습니다. 좋은 도구는 분명 도움이 되지만, 결코 장인의 기술과 철학, 그리고 경험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소프트웨어의 품질은 결국 그것을 만든 개발자의 역량이라는 거울에 비친 상일 뿐입니다.

따라서 ‘언어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믿음이야말로, 러스트의 우월주의가 만들어 낸 가장 위험하고도 근본적인 환상입니다.

제3장: “개발 경험”이라는 이름의 자기애

러스트의 기술적 이상과 신화를 해체하고 나면, 우리는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와 마주하게 됩니다. 러스트 커뮤니티가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가치 중 하나는 바로 ‘개발자 경험(Developer Experience, DX)’입니다. 훌륭한 컴파일러 에러 메시지, 카고(Cargo)로 대표되는 통일된 툴체인 등은 분명 뛰어난 개발 경험의 요소입니다.

하지만 이 ‘개발 경험’이라는 단어 이면에는,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경험마저 특별한 가치로 포장하고, 그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는 이들을 폄하하는 기묘한 ‘자기애’가 숨어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러스트 커뮤니티의 ‘개발 경험’ 담론이 어떻게 나르시시즘의 또 다른 표현이 되는지를 분석합니다.

3.1. 가파른 학습 곡선과 ‘고통의 미학’

러스트를 배우려는 모든 개발자는 예외 없이 거대한 벽과 마주합니다. 바로 소유권, 빌림, 그리고 특히 생명주기로 대표되는, 다른 어떤 주류 언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복잡한 개념들입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문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 프로그래밍에 대한 기존의 사고방식 자체를 완전히 재구성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문제는 이 ‘고통’의 존재 자체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가 이 가파른 학습 곡선을 ‘결함’이나 ‘개선점’이 아닌, ‘자격의 증표’이자 ‘성장의 과정’으로 신성시하고 미화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그들은 컴파일러와의 길고 지루한 싸움을 ‘지적인 유희’로, 수많은 컴파일 실패의 좌절을 ‘더 나은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한 통과 의례’로 포장합니다. 이는 고통을 쾌감으로 여기는 도착적인 ‘고통의 미학’이라 부를 만합니다.

이러한 ‘고통의 미학’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 어두운 결과를 낳습니다.

첫째는 신규 개발자에 대한 ‘가스라이팅’과 ‘책임 전가’입니다. 이 문화 속에서, 학습 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은 ‘나약함’의 증거가 됩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솔직한 질문에 돌아오는 것은 공감이나 친절한 설명이 아니라, “공식 문서를 다시 읽어보라”, “당신이 아직 다른 언어의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해서 그렇다”, 혹은 “노력이 부족하다”는 식의 훈계와 질책입니다. 모든 책임은 시스템의 복잡성이 아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 전가됩니다. 이는 러스트라는 높은 성벽 안의 ‘깨달은 자’들이, 성벽을 오르지 못하는 이들을 내려다보며 선민의식을 충족시키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실제 프로젝트에서의 ‘생산성 저하’ 문제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컴파일러와의 즐거운 싸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곧바로 프로젝트 일정의 지연과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는, 현실적인 ‘리스크’일 뿐입니다. 하지만 ‘고통의 미학’에 심취한 이들은, 자신들이 겪는 개발 과정의 비효율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들은 러스트로 작성된 ‘최종 결과물’의 순수성과 안전성만을 찬양하며, 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동료들이 겪어야 했던 좌절과 야근, 그리고 그로 인해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다른 합리적인 기술적 선택들을 애써 외면합니다. 이는 결과만 좋으면 과정의 고통은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위험하고 비공학적인 태도입니다.

가파른 학습 곡선: 소유권(Ownership) 및 빌림(Borrowing) 개념의 복잡성

러스트의 학습 곡선이 유독 가파르다고 이야기되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문법이나 라이브러리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프로그래머가 수십 년간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쌓아온 프로그래밍에 대한 근본적인 직관과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혁명적인 변화의 중심에 바로 소유권(Ownership)빌림(Borrowing), 그리고 그와 얽힌 생명주기(Lifetimes) 개념이 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주류 언어에서, 변수에 값을 할당하거나 함수에 인자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여러 변수가 동일한 데이터를 참조하고, 자유롭게 수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러스트는 이러한 모든 행위에 ‘소유권’이라는 엄격한 족쇄를 채웁니다. 모든 데이터는 단 하나의 ‘소유자’만이 존재하며, 변수에 값을 할당하는 순간 데이터의 ‘소유권’이 이전(move)되고 이전 소유자는 더 이상 그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다는 규칙은, 다른 언어에 익숙한 개발자에게는 극도의 인지 부조화를 유발합니다. 코드의 모든 줄에서 “지금 이 데이터의 소유자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추적해야 하는 것은 상당한 정신적 부담입니다.

‘소유권’이라는 첫 번째 벽을 넘어서면, ‘빌림’과 ‘생명주기’라는 더 높고 복잡한 벽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유권을 직접 넘기지 않고 데이터에 접근하기 위해 ‘참조(reference)’를 사용하면, 이제 개발자는 보로 체커(Borrow Checker)의 더 엄격한 규칙과 마주해야 합니다. “수정 가능한 참조는 단 하나만 존재할 수 있으며, 이 기간 동안에는 다른 어떤 읽기 전용 참조도 존재할 수 없다”는 규칙은, 간단해 보이지만 복잡한 함수 호출과 데이터 구조 속에서는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변합니다.

그리고 이 실타래의 정점에는 ‘생명주기’가 있습니다. 컴파일러가 “이 참조가 저 참조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없음을 보장하라”며 'a, 'b와 같은 기호를 동원해 던지는 에러 메시지는, 수많은 개발자들에게 프로그래밍이 아닌, 마치 추상적인 수학 증명 문제를 푸는 듯한 좌절감을 안겨줍니다. 내가 해결하려는 실제 비즈니스 문제와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이 문법적 제약과 싸우는 데 개발자의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결론적으로, 소유권과 빌림, 그리고 생명주기는 단순한 언어 기능이 아닙니다. 그것은 개발자의 사고방식 자체를 재구성하도록 강요하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이 패러다임 전환에 필요한 높은 수준의 추상적 사고와 정신적 노력이 바로 러스트의 가파른 학습 곡선을 만드는 주된 원인이며, 수많은 이들이 ‘통곡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이유입니다.

복잡한 타입 시스템 및 제네릭(Generics)의 난해함

개발자가 소유권과 빌림이라는 첫 번째 거대한 벽을 힘겹게 넘어서면, 곧이어 두 번째 벽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러스트의 강력하지만 동시에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타입 시스템과 제네릭(Generics)입니다. 러스트의 안전성과 제로 코스트 추상화는 모두 이 정교한 타입 시스템 위에서 구현됩니다. 하지만 그 강력함의 이면에는, 개발자에게 상당한 수준의 추상적 사고와 학습을 요구하는 비싼 대가가 숨어있습니다.

간단한 구체적인 타입만을 사용하는 코드를 작성할 때는 이 복잡성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개발자가 재사용 가능하고 추상적인 코드를 작성하기 위해 제네릭을 사용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다른 많은 언어들과 달리, 러스트의 제네릭은 매우 엄격합니다. 제네릭 타입이 어떤 동작을 할 수 있는지는 트레잇(Trait)과 트레잇 바운드(Trait Bound)를 통해 컴파일러에게 명시적으로, 그리고 남김없이 알려줘야 합니다.

프로그램의 로직이 복잡해질수록, 함수의 시그니처는 T: Clone + Debug + Send + Sync + 'static과 같이, 의미를 알기 어려운 트레잇들의 긴 행렬로 뒤덮이기 시작합니다. 이는 코드의 가독성을 심각하게 해치며, 개발자는 비즈니스 로직이 아닌 타입 시스템의 제약을 해결하는 데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됩니다.

이 난해함은 연관 타입(Associated Types)고차원 트레잇 바운드(Higher-Ranked Trait Bounds, HRTB)와 같은 고급 기능으로 넘어가면 극에 달합니다. 연관 타입은 트레잇 내부에 존재하는 또 다른 타입으로, 고도로 추상적인 API를 설계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그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for<'a>와 같은 문법으로 표현되는 HRTB는, ‘어떠한 생명주기에 대해서도 동작하는’ 함수를 정의하는 기능으로, 그 복잡성 때문에 숙련된 러스트 개발자들조차 어려움을 토로하는 ‘끝판왕’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결론적으로, 러스트의 타입 시스템과 제네릭은 언어의 강력함을 보장하는 원천인 동시에, 학습 곡선을 극도로 가파르게 만드는 또 다른 주된 원인입니다. 개발자는 종종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컴파일러라는 엄격한 수학 선생을 만족시키기 위해 복잡한 타입 체계를 증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겪는 지적 피로감과 좌절 역시, 앞서 언급한 ‘고통의 미학’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지고 미화되는 또 하나의 ‘현실적 대가’입니다.

러스트의 높은 진입 장벽을 ‘도전’과 ‘성장’으로 포장하는 경향

러스트의 가파른 학습 곡선과 복잡한 타입 시스템이 가져오는 현실적인 고통과 생산성 저하는, 그 어떤 옹호론자도 부정하기 힘든 명백한 사실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가 이 사실을 부정하는 대신, 훨씬 더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높은 진입 장벽’ 자체를 가치 있는 ‘도전’이자 ‘성장의 기회’로 재포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담론 속에서, 러스트의 어려움은 더 이상 언어의 ‘결함’이 아니라, 실력 없는 개발자들을 걸러내는 ‘정예 개발자 필터’로 둔갑합니다. “아무나 쉽게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러스트를 사용하는 개발자들은 본질적으로 더 뛰어나다”는 엘리트주의적 자부심이 여기서 싹틉니다. 보로 체커와의 기나긴 싸움은, 이 엘리트 클럽에 가입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일종의 ‘입단식’이 되며, 이 과정을 통과했다는 사실 자체가 ‘특별한 자격’을 얻은 것처럼 여겨집니다.

또한, 이 고통스러운 학습 과정은 ‘프로그래머로서의 강제적인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됩니다. 그들은 컴파일러가 쏟아내는 암호 같은 에러 메시지를 ‘잘못된 설계를 꾸짖는 스승의 회초리’로 여기고, 컴파일을 통과시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메모리 관리와 시스템 설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즉, 러스트를 배우는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고통을 통해 당신은 다른 언어에서는 얻을 수 없는 깊은 깨달음을 얻고 결국 더 나은 프로그래머가 된다는, 일종의 ‘고진감래’ 서사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전’과 ‘성장’이라는 포장은, 앞서 언급한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고 ‘노력 정당화’를 이루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심리적 방어기제입니다. 자신이 겪은 엄청난 시간적, 정신적 비용을 헛된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성장시킨 값진 투자였다고 믿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포장지는, 그 이면에 있는 ‘노력 부족’이라는 낙인과 ‘생산성 저하’라는 냉혹한 현실을 가리는 역할을 합니다. 다음 절에서는 이 포장지가 어떻게 신규 개발자들을 좌절시키고, 실제 프로젝트에 어떤 부담을 주는지 더 깊이 파고들겠습니다.

신규 개발자의 진입 장벽과 생산성 저하, 그리고 이를 ‘노력 부족’으로 치부하는 태도

‘어려움’을 ‘도전’과 ‘성장’으로 포장하는 문화는, 그들만의 성벽 안에서는 우아한 지적 유희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성벽에 이제 막 도달한 신규 개발자들에게, 그것은 그저 높고 차가운 진입 장벽일 뿐입니다. 그들은 ‘깨달음의 즐거움’을 위해 러스트를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주어진 업무를 해결하고,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하는 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목표를 가진 개발자들에게, 보로 체커와의 기나긴 싸움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는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입니다. 다른 언어였다면 몇 시간 만에 끝났을 프로토타이핑이, 러스트에서는 며칠이 걸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좌절감을 커뮤니티에 토로했을 때, 그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공감이나 도움의 손길이 아닌, 종종 차가운 ‘선배’의 훈계입니다.

  • “공식 문서를 다시 정독해 보세요.” (당신의 학습 태도가 부족하다)
  • “아직 C++의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했군요.” (당신의 과거 경험이 오염되었다)
  • “그 부분은 원래 그렇게 싸워서 배우는 겁니다.” (당신이 겪는 고통은 당연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훈계의 기저에는 “당신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오만한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언어의 복잡성과 가파른 학습 곡선이라는 시스템의 문제를, 그것을 힘겨워하는 개인의 역량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들이 통과한 고통스러운 입단식을 정당화하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어려운 언어’를 사용한다는 엘리트 의식을 지키기 위한, 전형적인 ‘책임 전가’이자 ‘피해자 비난하기(victim blaming)’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신규 개발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을 넘어, 러스트 생태계 전체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칩니다. 재능 있는 개발자들이 초반의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생태계를 떠나게 만들고, 기업 입장에서는 신규 인력의 높은 교육 비용과 낮은 초기 생산성 때문에 러스트 도입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노력 부족’이라는 한마디는, 이 모든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가장 편리하고도 무책임한 변명일 뿐입니다.

실제 프로젝트에서의 생산성 저하와 일정 압박에 대한 외면

‘고통을 통한 성장’이라는 서사는 개인의 학습 과정에서는 일종의 낭만적인 무용담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서사는 ‘시간’과 ‘비용’이라는 냉정한 잣대가 지배하는 실제 상업적 프로젝트의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 그 설득력을 완전히 잃어버립니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개발자의 시간은 곧 돈입니다. 프로젝트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약속된 일정에 맞춰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컴파일러와의 즐거운 싸움’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닌,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협하는 명백한 ‘리스크(Risk)’이자 ‘비용(Cost)’일 뿐입니다.

러스트의 가파른 학습 곡선과 낮은 초기 생산성은, 팀에 새로운 멤버가 합류할 때마다 값비싼 ‘교육 비용’과 긴 ‘적응 기간’을 요구합니다. 다른 언어에 능숙한 시니어 개발자라 할지라도, 러스트 생태계에서 이전과 같은 생산성을 발휘하기까지는 수개월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보로 체커의 예측 불가능성은 프로젝트 일정 관리를 매우 어렵게 만듭니다. 간단해 보였던 기능 하나가 예기치 못한 생명주기 문제에 부딪혀 며칠간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문제는, 러스트의 우월성을 옹호하는 일부 커뮤니티가 이러한 경제적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러스트 도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생산성 저하나 일정 지연의 문제를, 언어 자체의 고유한 특성이 아닌 ‘미숙한 팀의 역량 문제’나 ‘잘못된 프로젝트 관리’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그들은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이 막대한 자원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거대 기업의 성공 사례만을 부각하며, 러스트가 가진 ‘이상적인 성능’과 ‘기술적 순수성’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빠듯한 예산과 촉박한 일정 속에서 러스트의 높은 진입 장벽 때문에 고통받거나, 결국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팀들의 현실은 철저히 외면됩니다.

결론적으로, ‘고통의 미학’은 시간과 자원의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소수의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에 가깝습니다. 대다수의 평범한 프로젝트가 마주한 ‘생산성’이라는 현실적인 가치를 무시하는 이러한 태도는, 러스트가 모든 문제에 대한 ‘최적의 선택’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애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3.2. 러스트는 “최적의 선택”이라는 강박

앞서 분석한 ‘고통의 미학’은, 경제학과 심리학에서 말하는 ‘매몰 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라는 더 깊은 인지 편향과 만나, ‘최적 선택’에 대한 강박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자기애로 발전합니다. 매몰 비용의 오류란, 이미 투자한 시간과 노력(매몰 비용)이 아까워서, 그 결정이 더 이상 최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수하려는 비합리적인 경향을 의미합니다.

러스트의 가파른 학습 곡선은 개발자에게 막대한 양의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매몰 비용’으로 지불하게 만듭니다. 이 거대한 투자를 하고 나면, “나의 이 고통스러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정당화하고 싶은 강력한 욕구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내가 선택한 이 도구가 모든 문제에 대한 최적의 해결책”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러스트가 ‘특정 문제에만 좋은 언어’라고 인정하면, 자신의 막대한 투자가 어떤 상황에서는 ‘낭비’였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황금 망치 증후군(Golden Hammer Syndrome)’이 탄생합니다. 이는 소프트웨어 공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즉 ‘문제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도구를 선택해야 한다’는 지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으로 이어집니다.

문제 해결의 다양성 무시: 모든 문제를 러스트로 해결하려는 시도

개발자가 소유권과 보로 체커라는 험난한 산을 넘어 러스트에 숙달되면, 그가 겪었던 막대한 학습 비용과 정신적 고통은 ‘특별한 자격’이라는 훈장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이 훈장의 가치를 증명하고 유지하기 위해, “내가 수년 간 단련한 이 ‘황금 망치’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여야만 한다”는 강력한 심리적 동기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황금 망치 증후군’은, 소프트웨어 공학의 가장 근본적인 지혜, 즉 “문제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도구를 선택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면으로 무시합니다. 성숙한 엔지니어링은 언제나 상충 관계(trade-off)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무엇인가? 마감일은 얼마나 촉박한가? 팀원들의 기술 역량은 어떠한가? 활용 가능한 라이브러리 생태계는 충분한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종합하여 최적의 기술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엔지니어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러스트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복잡하고 다층적인 분석 과정을 “러스트를 사용한다”는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결정으로 대체해버립니다.

  • 몇 줄의 파이썬(Python) 스크립트로 몇 분이면 끝날 간단한 데이터 처리 작업을, 굳이 러스트로 구현하며 타입 시스템과 싸웁니다.
  • 거대한 생태계와 압도적인 생산성을 자랑하는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프레임워크가 훨씬 더 적합한 프론트엔드 웹 개발에, 러스트와 웹어셈블리(WebAssembly)를 도입하려 합니다.
  • 빠른 프로토타이핑과 즉각적인 피드백이 중요한 초기 단계의 프로젝트에서, 느린 컴파일 시간과 경직된 코드 수정을 감수합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기술적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겠지만, 그 본질은 공학적 합리성의 부재입니다. 이는 프로젝트의 성공이라는 최종 목표보다, ‘러스트’라는 특정 도구를 사용한다는 행위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주객전도의 상황입니다. 결국 문제 해결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이러한 태도는, 기술적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개인의 자기애는 충족시킬지 모르나, 팀의 생산성을 저해하고 프로젝트를 실패의 위험으로 이끄는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귀결될 뿐입니다.

다른 언어와 프레임워크에 대한 편협한 시각과 불필요한 비하

‘러스트가 모든 문제에 대한 최적의 선택’이라는 강박적인 믿음은, 필연적으로 다른 모든 기술적 선택지를 ‘열등한 것’으로 규정해야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만약 다른 언어나 프레임워크가 특정 문제에 대해 더 나은 해결책임을 인정하는 순간, ‘러스트가 최적’이라는 대전제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다른 기술들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견지하고 불필요한 비하를 서슴지 않습니다.

이는 러스트 커뮤니티 일부에서 관찰되는, 다른 기술 생태계에 대한 전형적인 ‘평가절하’의 모습입니다.

  • C/C++: 수십 년간 소프트웨어 세계의 기반을 다져온 이 언어들과 그 개발자들은, ‘안전 불감증에 걸린 낡은 세대’ 혹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다루는 무모한 자들’로 묘사됩니다. 그들이 쌓아 올린 막대한 자산과 진화의 노력은 무시된 채, 오직 ‘메모리 불안전성’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모든 것이 재단됩니다.
  • Go: ‘단순함’이라는 Go 언어의 핵심 철학은, 이들의 세계에서는 ‘미개함’ 또는 ‘표현력의 부족’으로 폄하됩니다. 구글과 같은 거대 기업에서 수많은 분산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그 간결한 동시성 모델은, ‘진정한 시스템 프로그래밍을 이해하지 못한 장난감’으로 취급받기 일쑤입니다.
  • Java / C#: 이 언어들이 가진 압도적인 생산성과 방대한 엔터프라이즈 생태계는, ‘느리고 부풀려진 가상머신(VM)의 죄악’이라는 한마디로 간단히 무시당합니다. 현대적인 GC와 런타임이 이뤄낸 눈부신 성능 개선은 그들의 논의 대상에서 처음부터 제외됩니다.
  • Python / JavaScript: 이 동적 타입 언어들은 ‘타입 시스템도 없는 장난감’으로 치부되어, 진지한 비교나 논의의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진정으로 자신감 있는 장인은 다른 연장을 탓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 연장의 장단점을 존중하고, 자신의 작업에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지혜를 자랑스러워합니다. 다른 모든 도구를 깎아내려야만 자신의 도구가 빛난다고 믿는 태도는,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한 선택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깊은 불안감의 발로일 뿐입니다.

결국, 다른 기술에 대한 이러한 편협한 시각과 비하는, 러스트 생태계를 다른 커뮤니티로부터 고립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이는 기술적 토론이 아닌, 자신들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한 소모적인 ‘종교 전쟁’을 유발하며, 다양한 기술로부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특정 도메인에 대한 과도한 일반화 (예: 웹 백엔드는 무조건 러스트)

다른 기술에 대한 편협한 시각은 필연적으로, 자신들의 기술을 모든 곳에 적용하려는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로 이어집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러스트 커뮤니티 일부에서 나타나는 “웹 백엔드 개발의 미래는 러스트에 있다” 또는 “새로운 백엔드는 무조건 러스트로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입니다.

물론, 러스트가 웹 백엔드 영역에서 가질 수 있는 장점은 분명합니다. C/C++에 버금가는 극단적인 성능과 낮은 메모리 사용량은, 초당 수십만 건의 요청을 처리해야 하는 고성능 API 게이트웨이나, 실시간 통신이 중요한 게임 서버, 혹은 클라우드 인프라의 핵심 컴포넌트를 개발하는 데 있어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타입 안전성과 메모리 안전성은 말할 것도 없이 서버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러스트가 뛰어난 ‘일부 특정’ 백엔드 분야에서의 장점을, ‘모든’ 웹 백엔드 개발이라는 훨씬 더 넓고 다양한 영역 전체로 무분별하게 확장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대다수의 평범한 웹 애플리케이션(예: 쇼핑몰, SaaS 서비스, 사내 관리 시스템)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원초적인 성능이 아니라, ‘빠른 개발 속도’‘시장 출시 시간(Time-to-Market)’입니다. 이 영역에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훨씬 더 중요하게 고려됩니다.

  • 개발 생산성: 얼마나 빨리 아이디어를 코드로 구현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며, 버그를 수정할 수 있는가?
  • 생태계와 라이브러리: 인증, 결제, 데이터베이스 ORM 등 복잡한 기능들을 직접 구현할 필요 없이, 이미 검증된 수많은 라이브러리를 가져다 쓸 수 있는가?
  • 학습 용이성과 인력풀: 새로운 팀원이 얼마나 빨리 적응하여 생산성을 낼 수 있으며, 시장에서 관련 개발자를 구하기가 얼마나 용이한가?

이러한 현실적인 비즈니스 척도에서, 러스트는 현재 명백한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생산성과 거대한 생태계를 자랑하는 C#/.NET과 Java/Spring, 간결함과 빠른 개발 속도를 무기로 하는 Go, 그리고 프로토타이핑에 최적화된 Python/Django나 Node.js와 같은 기존의 강자들은, 대부분의 웹 백엔드 프로젝트에서 러스트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지’입니다.

결론적으로, ‘웹 백엔드는 무조건 러스트’라는 주장은 공학적 분석이 아닌, 자신들이 선택한 ‘황금 망치’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종교적 신념에 가깝습니다. 이는 문제의 특성과 비즈니스의 현실을 고려하여 최적의 도구를 선택하는 엔지니어의 지혜를 무시하고, 오직 자신들이 가진 도구의 우월성만을 내세우는 자기애의 또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3.3. 비동기 프로그래밍(async/await)과 복잡성 과시

러스트가 제공하는 ‘두려움 없는 동시성’의 약속은, 현대적인 비동기 프로그래밍을 위한 async/await 문법에서 정점에 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Go 언어의 고루틴(goroutine)과 같은 무거운 그린 스레드 없이, 운영체제 스레드 위에서 극도로 효율적인 비동기 코드를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제안입니다.

하지만 이 약속의 이면에는, 소유권과 생명주기를 넘어선 또 다른 종류의 ‘통곡의 벽’이 존재합니다. async 블록과 Future 트레잇의 내부가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개발자는 PinGenerator와 같은, 다른 어떤 주류 언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지극히 추상적이고 난해한 개념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Pin, Generator 등 고난이도 개념에 대한 과도한 자랑

러스트의 async/await는 컴파일러가 코드를 복잡한 상태 기계(state machine)로 변환하는 방식으로 동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비동기 함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참조를 포함하는 ‘자기 참조 구조체(self-referential struct)’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조체의 메모리 주소가 예기치 않게 변경되는 것을 막기 위해, 러스트는 Pin이라는 특수한 포인터 타입을 도입했습니다.

문제는 이 Pin이라는 개념이 지독하게 비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 작동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너레이터(Generator)와 같은 언어의 가장 깊은 내부 동작까지 파고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라이브러리 사용법을 배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의 학술적인 수준의 탐구를 요구합니다.

여기서 러스트 커뮤니티 일부의 기묘한 ‘자기애’가 다시 한번 드러납니다. 그들은 이러한 극단적인 복잡성을 언어 설계의 ‘개선점’이나 ‘추상화 실패’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난해한 개념을 이해하고 다룰 줄 안다는 사실 자체를 ‘진정한 러스트 개발자(Rustacean)’의 증표로 여기며 과시하고 자랑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기술 블로그에는 Pinunsafe 코드를 동원하여 복잡한 비동기 라이브러리를 구현하는 것을 ‘지적인 도전’이자 ‘희열’로 묘사하는 글들이 넘쳐납니다. 이는 앞서 분석한 ‘보로 체커와 싸우는 즐거움’과 정확히 동일한 맥락의 ‘고통의 미학’입니다. 기술의 복잡성과 난해함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지적 우월성을 과시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결국, 대다수의 평범한 개발자들에게 async/await는 그저 편리한 비동기 처리 도구여야만 합니다. 그 내부의 복잡한 구현은 언어와 런타임이 알아서 처리해야 할 몫입니다. 하지만 러스트에서는 이 추상화의 벽이 너무나도 얇아서, 개발자들은 끊임없이 Pin과 같은 내부 구현의 파편과 마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커뮤니티는 이 ‘새어 나오는 추상화(leaky abstraction)’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것을 정복했다는 사실을 자랑하며 또 다른 진입 장벽과 선민의식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실제 디버깅의 어려움과 복잡성 대비 낮은 효용성

Pin과 같은 난해한 개념에 대한 자부심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동작할 때에만 유지될 수 있는 지적인 사치입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언제나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실패하며, 이때 개발자는 ‘디버깅’이라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러스트 async의 화려한 이론적 우아함은 종종 끔찍한 개발 경험으로 돌변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개발자가 작성하는 코드와 실제 실행되는 코드 사이의 거대한 괴리감입니다. 개발자는 async fn.await이라는 간결하고 익숙한 문법으로 코드를 작성하지만, 러스트 컴파일러는 이 코드를 내부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거대한 상태 기계(State Machine) 객체로 변환합니다. 개발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이 거대한 ‘블랙박스’가 바로 디버깅의 어려움을 낳는 주된 원인입니다.

  • 무의미한 스택 트레이스: async 코드 블록 안에서 panic이 발생했을 때 출력되는 스택 트레이스는 대부분의 경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비동기 런타임(tokio 등)의 내부 스케줄러 함수들과, 컴파일러가 생성한 정체불명의 상태 기계 호출들뿐, 정작 “어떤 .await 호출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단서를 찾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 추적: 동기 함수라면 디버거를 통해 각 변수의 값을 쉽게 추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sync 함수에서는 모든 지역 변수가 거대한 상태 기계 객체 안에 캡처되어 있어, 내가 원하는 변수가 지금 어떤 값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부터가 고난도의 작업이 됩니다. 개발자는 디버거 앞에서 무력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디버깅의 복잡성은, 과연 러스트 async가 추구하는 ‘제로 코스트’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물론, 복잡한 연산이 주를 이루어 CPU에 큰 부하가 걸리는 특수한 상황이라면, 러스트 async 모델의 성능상 이점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동기 작업, 특히 웹 애플리케이션의 본질인 I/O 바운드(I/O-bound) 작업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프로그램의 성능 병목은 비동기 런타임의 스케줄링 오버헤드가 아니라, 네트워크 레이턴시나 데이터베이스 응답 속도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Go의 고루틴과 같이 약간의 런타임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훨씬 더 단순하고 디버깅이 쉬운 모델과 비교했을 때, 러스트 async가 제공하는 실질적인 성능상의 효용은 미미하거나 거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러스트의 async‘기계의 비용(CPU, 메모리)’을 아끼는 대신, 그 비용을 고스란히 ‘개발자의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에게 전가하는 방식입니다. 그 복잡성에 비해 대다수의 일반적인 상황에서 얻는 효용은 낮으며, ‘제로 코스트’라는 이상을 위해 디버깅의 용이성이라는 실용적인 가치를 희생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다른 비동기 모델에 대한 배척

러스트 async가 가진 극단적인 복잡성과 어려운 디버깅이라는 현실은, 합리적인 공학 문화라면 “과연 이 접근법이 최선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마땅합니다. 더 단순하고 생산적인 대안은 없는지, 우리가 치르는 비용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건강한 성찰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통의 미학’과 ‘복잡성 과시’에 빠진 커뮤니티 일부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러스트의 복잡한 모델을 유일하게 ‘올바른’ 길로 여기며, 단순함을 추구하는 다른 언어의 비동기 모델들을 ‘미개한’ 혹은 ‘진짜가 아닌’ 것으로 폄하하고 배척합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공격 대상은 바로 Go 언어의 고루틴(Goroutine)입니다. Go의 동시성 모델은 언어 런타임이 관리하는 매우 가벼운 ‘그린 스레드’를 기반으로 합니다. 개발자는 go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 복잡한 내부 동작에 대한 고민 없이 매우 쉽게 동시성 코드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방식은 런타임 스케줄러와 가비지 컬렉터로 인한 약간의 오버헤드가 있다는 기술적 사실이 존재합니다. 러스트 지지자들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어, “Go의 방식은 ‘제로 코스트’가 아니므로 진정한 시스템 프로그래밍이라 할 수 없다”거나 “성능이 중요한 작업에는 부적합하다”는 식으로 평가절하합니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편협한 잣대를 이용한 의도적인 폄하’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런타임 오버헤드’라는 자신들이 우위에 있는 단 하나의 척도만으로 다른 모델을 평가하면서, 그 모델이 가진 압도적인 장점들은 의도적으로 무시합니다.

  • 개발 생산성: Go로 네트워크 서비스를 작성하는 것은 러스트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고 빠릅니다.
  • 디버깅 용이성: Go의 동시성 코드는 디버깅하기 훨씬 더 쉽고, 스택 트레이스는 명확합니다.
  • 학습 용이성: 개발자가 Pin과 같은 개념과 싸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만약 Go의 단순한 모델이 세상의 99%의 네트워크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데 ‘충분히 좋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면, 자신들이 PinGenerator의 복잡성을 정복하기 위해 쏟아부었던 막대한 ‘매몰 비용’의 가치가 퇴색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고통스러운 노력이, 사실은 대부분의 문제에 필요하지 않았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단순함을 추구하는 다른 모델에 대한 배척은, 기술적 우월성에 대한 합리적인 분석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걸어온 어려운 길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길이어야만 한다는 ‘나르시시즘적 자기애’와, 복잡한 것을 다룰 줄 아는 자신들만이 ‘진정한 시스템 프로그래머’라는 엘리트 의식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일 뿐입니다. 이는 러스트 생태계를 더욱 고립시키고, 다양한 공학적 해법을 존중하지 않는 편협한 문화의 단면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3.4. ‘우아한 에러 처리’라는 신화: Result 타입의 실용성 재고

소프트웨어의 신뢰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역사는, 오류를 다루는 방식의 발전사와도 같습니다. C언어가 널리 퍼지기 이전에도, Lisp의 ‘컨디션 시스템(Condition System)’이나 PL/I의 ‘ON-조건’과 같이, 오류로부터 시스템을 유연하게 회복시키려는 정교한 시도들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시스템 프로그래밍의 주류가 된 C와 Unix 철학은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버헤드를 최소화하고 단순함을 유지하는 대신, errno와 반환 값을 확인하는 책임을 전적으로 프로그래머에게 맡기는 ‘관습’ 기반의 방식이었습니다. 이 C의 유산 위에서, C++은 try...catch라는 예외 처리 메커니즘을 도입하여 오류 처리의 책임을 언어 차원으로 가져오려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러스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Result 타입과 패턴 매칭을 통해 오류 처리를 런타임이 아닌 컴파일 시점에 ‘강제’하는, 함수형 프로그래밍의 아이디어와 결합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러스트 커뮤니티는 바로 이 지점을 언어의 가장 ‘우아한’ 장점 중 하나로 내세웁니다. 하지만 이 ‘우아함’이라는 신화 역시,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try…catch는 과연 죄악인가?: 다른 언어의 에러 처리 방식 재평가

러스트의 Result 타입이 가진 ‘우아함’과 ‘안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는 다른 언어들이 수십 년간 사용해 온 try...catch 기반의 예외(Exception) 처리 모델을 ‘죄악’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주된 비판은 예외 처리가 “어디서 발생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보이지 않는 GOTO문”과 같아서, 프로그램의 제어 흐름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Result를 ‘선(善)’으로, try...catch를 ‘악(惡)’으로 규정하는 단순한 이분법적 프레임을 구축하여, Result 타입의 우월성을 부각시키려는 전형적인 수사학입니다. 하지만 이는 성숙한 예외 처리 메커니즘이 가진 본질적인 가치와 철학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편협한 시각입니다.

첫째, 예외 처리의 핵심 철학은 ‘관심사의 분리(Separation of Concerns)’입니다. try 블록 안에는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해피 패스(happy path)’ 로직을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각종 예외적인 상황에 대한 처리는 catch 블록에 위임함으로써, 오히려 코드의 가독성과 유지보수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여러 단계의 함수 호출 깊은 곳에서 발생한 오류를 모든 중간 함수가 Result로 받아 다시 반환하는 장황함 대신, 예외 처리는 오류를 그것을 실질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지점까지 한번에 전달하는 효율적인 메커니즘을 제공합니다.

둘째, “어떤 예외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비판 역시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사실이 아닙니다. 자바(Java)의 ‘체크 예외(Checked Exception)’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입니다. 함수가 던질 가능성이 있는 특정 예외들을 함수의 시그니처에 throws 키워드로 명시하도록 강제하고, 이를 호출하는 쪽에서는 반드시 try...catch로 처리하거나 다시 상위로 던지도록 컴파일러가 강제합니다. 이는 오류 처리를 누락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러스트의 Result 타입과 동일한 목표를 다른 방식으로 달성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현대적인 예외 처리 시스템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류 상황을 기록(logging)하고, 자원을 안전하게 해제하며(finally), 시스템을 안정적인 상태로 ‘복구(Recovery)’하여 서비스의 중단을 막는, 즉 ‘시스템의 회복력(Resilience)’을 높이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결론적으로, try...catch는 결코 ‘죄악’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잡한 소프트웨어의 강건함을 높이기 위해 수십 년간 발전해 온 성숙한 공학적 도구이며, 그 나름의 장점과 상충 관계를 가집니다. 이를 무조건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악마화하는 태도는, 다른 기술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편협한 시각이자, 자신들의 방식을 유일한 정답으로 포장하려는 우월주의의 또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함수형 언어에서 차용한 아이디어: ‘새로움’에 대한 과장된 홍보

러스트의 ResultOption 타입이 보여주는 명시적인 오류 및 상태 처리 방식은, 의심할 여지 없이 훌륭하고 강력한 기능입니다. 하지만 러스트 커뮤니티 일부에서는 이 기능의 우수성을 넘어, 마치 러스트가 발명한 전례 없는 ‘혁신’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움’에 대한 과장된 홍보는, 이 책이 지속적으로 비판하는 ‘역사적 맥락의 의도적 외면’을 통해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또 다른 시도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ResultOption 같은 타입을 이용해 오류와 값의 부재를 처리하는 아이디어는 결코 러스트가 처음이 아닙니다. 이 개념의 뿌리는 함수형 프로그래밍(Functional Programming) 언어 진영에 깊이 닿아 있습니다.

  • 하스켈(Haskell):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순수 함수형 언어인 하스켈에는 러스트의 Result<T, E>와 개념적으로 거의 동일한 Either a b 타입과, Option<T>과 동일한 Maybe a 타입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모나드(Monad)’라는 개념을 통해, 여러 연산을 안전하고 우아하게 연결하는 방법을 제공해왔습니다.

  • ML 계열 언어 (OCaml, F#, Standard ML): 이 언어들 역시 강력한 타입 시스템과 패턴 매칭을 기반으로, ‘합 타입(Sum Type)’ 또는 ‘태그 유니온(Tagged Union)’이라 불리는 데이터 구조를 통해 이러한 방식의 오류 처리를 오랫동안 지원해왔습니다.

즉, 러스트의 Result 타입은 완전히 새로운 발명품이라기보다는, 함수형 프로그래밍 세계에서 그 유용성과 안정성이 이미 충분히 증명된 훌륭한 아이디어를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의 맥락에 맞게 성공적으로 ‘차용’하고 ‘재해석’한 것에 가깝습니다. 러스트의 진짜 기여는 ? 연산자와 같은 편리한 문법 설탕(syntactic sugar)을 통해 이 개념을 더 많은 개발자들이 쉽게 사용하도록 ‘대중화’한 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자주 생략하는 것일까요? 이는 ‘러스트 구원자 서사’를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null 포인터와 불안정한 예외 처리라는 ‘과거의 죄악’을, 오직 러스트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해결했다는 서사가 훨씬 더 극적이고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Result 타입의 ‘새로움’에 대한 과장된 홍보는, 다른 언어 커뮤니티가 쌓아 올린 지적 자산을 존중하지 않는 편협한 태도이자, 자신들의 언어를 신화적 존재로 만들려는 또 다른 자기애의 표현일 뿐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와 .map_err(): ‘편리성’과 코드 가독성의 현실

러스트의 Result 타입에 대한 논의에서, 지지자들은 ? 연산자를 ‘우아함’과 ‘편리성’의 핵심적인 증거로 내세웁니다. ? 연산자는 오류가 발생했을 때, 현재 함수의 실행을 중단하고 그 오류를 즉시 반환해 주는 훌륭한 문법 설탕(syntactic sugar)입니다. match 표현식을 장황하게 반복해야 했던 과거에 비하면,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큰 발전이며, 간단한 오류 전파 시나리오에서는 매우 편리하게 작동합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은, 모든 함수가 동일한 오류 타입을 반환하는 ‘교과서적인 예제’ 속에서나 온전히 빛을 발합니다. 여러 외부 라이브러리를 조합하고, 자체적인 비즈니스 로직을 추가해야 하는 ‘현실 세계의 애플리케이션’에서는 ? 연산자의 우아함은 쉽게 빛을 잃고, 개발자는 새로운 종류의 ‘보일러플레이트 지옥(boilerplate hell)’과 마주하게 됩니다.

문제의 핵심은 ‘서로 다른 오류 타입’입니다. 현실의 프로그램은 수많은 외부 의존성을 가집니다. 파일 I/O 라이브러리는 std::io::Error를 반환하고, 데이터베이스 라이브러리는 sqlx::Error를, HTTP 클라이언트 라이브러리는 reqwest::Error를 반환합니다. 하지만 이들을 호출하는 나의 함수는 단 하나의 통일된 애플리케이션 오류 타입(예: MyAppError)만을 반환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개발자는 각기 다른 라이브러리에서 발생한 모든 종류의 오류를 나의 MyAppError로 변환해주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코드를 직접 작성해야만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바로 끝없이 이어지는 ?.map_err()의 체인이 등장합니다.

// 현실에서 마주하는 코드의 예시
let file_content = fs::read_to_string("config.toml")
    .map_err(MyAppError::from)?; // io::Error를 MyAppError로 변환

let user = database::get_user(id)
    .await
    .map_err(MyAppError::from)?; // sqlx::Error를 MyAppError로 변환

물론 From 트레잇을 구현하여 이 과정을 더 깔끔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것 역시 모든 오류 타입에 대해 impl From<OtherError> for MyAppError 블록을 작성해야 하는, 상당한 양의 사전 준비 작업을 요구합니다.

결국,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비즈니스 로직은, 타입 시스템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많은 오류 타입 변환 코드의 안개 속에 파묻히게 됩니다. 이는 코드의 가독성을 심각하게 해치며, 개발 생산성을 저해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명시적인 오류 처리’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오류 처리의 본질보다 타입 변환이라는 기술적인 문제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 연산자가 제공하는 편리함은 제한적입니다. Result 타입을 통한 오류 처리는, 그 엄격한 타입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종종 코드의 장황함과 복잡성이라는 비용을 개발자에게 청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아한 에러 처리’라는 신화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실용성의 현실입니다.

제4장: 러스트의 ‘소유권’ 개념: 역사적 맥락과 오해

지금까지 우리는 러스트를 둘러싼 여러 신화들을 해체해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러스트의 정체성이자 가장 독창적인 기능으로 칭송받는 ‘소유권(Ownership)’ 시스템의 실체를 마주할 시간입니다. 러스트 커뮤니티는 종종 소유권 개념을 러스트만의 고유한 발명품처럼 이야기하지만, 이 역시 기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뿌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러스트의 소유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스템 프로그래밍의 오랜 지배자였던 C/C++가 수십 년간 ‘자원 관리’라는 문제와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소유권’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 처절한 싸움의 역사 속에서 탄생하고 진화해 온, 매우 오래된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4.1. C/C++에서의 자원 관리와 ‘소유권’의 뿌리

C 언어의 수동 메모리 관리와 ‘책임’의 문제

‘소유권’이라는 개념의 역사적 뿌리를 찾아가려면, 우리는 모든 것의 시작점인 C언어의 메모리 관리 철학을 먼저 마주해야 합니다. C언어는 시스템 프로그래밍을 위해 태어난 언어답게, 프로그래머에게 하드웨어에 대한 거의 무한한 자유와 제어권을 부여합니다. malloc()free()라는 두 함수는 이러한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개발자는 malloc()을 통해 운영체제로부터 원하는 만큼의 메모리를 직접 할당받고, free()를 통해 사용이 끝난 메모리를 직접 반납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극도의 유연성과 성능을 보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책임’이 뒤따릅니다. C언어와 컴파일러는 프로그래머를 완전히 신뢰하며, 메모리 관리에 대해 아무런 도움도, 간섭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메모리 청소의 책임은 온전히 프로그래머의 몫입니다. malloc()으로 할당받은 모든 메모리에 대해,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램의 수많은 실행 경로 속에서 정확히 한 번, 그리고 정확히 올바른 시점에 free()를 호출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실수는 필연적입니다. C언어의 설계는 이러한 ‘인간의 실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그 결과 지난 50년간 수많은 소프트웨어를 괴롭혀 온 고질적인 메모리 버그들이 탄생했습니다.

  • 메모리 릭 (Memory Leak): 가장 흔한 실수입니다. 프로그래머가 단순히 free() 호출을 잊어버리는 경우입니다. 프로그램이 오래 실행될수록 사용 가능한 메모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결국 시스템 전체가 느려지거나 멈추게 됩니다.
  • 이중 해제 (Double Free): 이미 해제된 메모리를 또다시 해제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는 메모리 관리자의 내부 상태를 망가뜨려, 당장은 아니더라도 프로그램 실행 중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측 불가능한 충돌을 일으킵니다.
  • 해제 후 사용 (Use-after-Free): 해제된 메모리 공간을 다시 사용하려는, 가장 위험한 실수 중 하나입니다. 이미 다른 데이터가 그 공간에 할당되었을 수 있기 때문에, 이전에 해제된 포인터를 통해 데이터를 쓰면 다른 데이터를 오염시키고, 읽으면 민감한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심각한 보안 취약점으로 이어집니다.

결론적으로, C언어의 수동 메모리 관리 방식은 “프로그래머는 절대 실수하지 않는다”는 비현실적인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수십 년의 역사는 이 전제가 틀렸음을 명백히 증명했습니다. 프로그래머 개인의 규율과 책임에만 의존하는 방식의 한계가 드러나자, C++ 개발자들은 이 ‘책임’의 문제를 시스템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RAII와 스마트 포인터(unique_ptr, shared_ptr)를 통한 C++의 발전

C언어의 수동 메모리 관리가 낳은 수많은 재앙에 직면한 C++ 커뮤니티는, 단순히 “더 조심해서 코딩하자”는 식의 개인적 규율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 언어 차원에서 이 문제를 시스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C++의 가장 우아하고도 강력한 해법이 바로 RAII(Resource Acquisition Is Initialization, 자원 획득은 초기화다) 패턴입니다.

RAII의 핵심 철학은 간단합니다. “자원의 생명주기를, 스택에 생성된 객체의 생명주기와 일치시킨다.” 즉, 객체가 생성될 때(생성자 호출) 자원을 획득하고, 객체가 스코프를 벗어나 소멸될 때(소멸자 호출) 자원을 자동으로 해제하는 것입니다. C++ 컴파일러는 객체의 소멸자가 어떤 경우(정상적인 함수 종료, 예외 발생 등)에도 반드시 호출됨을 언어 차원에서 보장합니다. 이를 통해, 프로그래머가 free()fclose()와 같은 자원 해제 함수를 직접 호출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인간의 실수’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원 관리의 ‘책임’을 불안정한 인간의 기억력에서, 결정론적으로 작동하는 컴파일러의 객체 관리 규칙으로 이전시킨 기념비적인 발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RAII 패턴을 동적 할당된 메모리 관리에 가장 효과적으로 적용한 도구가 바로 스마트 포인터(Smart Pointers)입니다. 특히 모던 C++(C++11 이후)에 도입된 표준 스마트 포인터들은, 러스트 소유권 개념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std::unique_ptr (유일한 소유권): 이 스마트 포인터는 하나의 포인터만이 특정 자원을 독점적으로 ‘소유’한다는 개념을 구현합니다. unique_ptr는 복사가 금지되며, 오직 std::move를 통해 소유권을 다른 포인터로 ‘이동’시킬 수만 있습니다. 소유권을 가진 unique_ptr 객체가 소멸되면, 그 포인터가 가리키는 메모리는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이것은 러스트의 기본 소유권 규칙 및 이동 의미론(move semantics)과 철학적으로 정확히 일치하며, 사실상 러스트 소유권의 직접적인 프로토타입입니다.
  • std::shared_ptr (공유된 소유권): 참조 카운팅(reference counting) 기술을 사용하여, 여러 포인터가 하나의 자원을 안전하게 ‘공동 소유’하는 방법을 제공합니다. 마지막 포인터가 소멸될 때 자원이 해제되는 이 방식은, 러스트의 Rc<T>(Reference Counting)와 Arc<T>(Atomic Reference Counting)의 원형입니다.

이처럼 C++은 RAII와 스마트 포인터를 통해, ‘누가 자원을 소유하고 해제할 책임이 있는가’라는 ‘소유권’의 문제를 이미 오래전에 개념적으로 정립하고, 매우 정교한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C++에 이미 이 모든 개념이 존재했다면, 러스트의 소유권은 도대체 무엇이 다르며, 왜 그토록 특별한 평가를 받는 것일까요?

4.2. 러스트 소유권의 ‘혁신성’에 대한 재평가

앞선 절에서 제기한 질문, 즉 “C++에 이미 소유권 개념이 존재하는데, 러스트의 소유권은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답을 이 절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러스트의 ‘혁신성’은 개념 자체의 새로움이 아닌, 그것을 적용하고 강제하는 ‘방식’의 차이에 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이 ‘컴파일러 강제’라는 방식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분석하고, 숙련된 C/C++ 개발자의 시각에서 그 가치와 한계를 재평가할 것입니다.

개념 자체의 새로움이 아닌 ‘컴파일러 강제’의 의미 분석

러스트의 진정한 가치와 공학적 성취는, 소유권이라는 개념을 ‘개발자가 따르기를 권장하는 좋은 패턴’의 수준에서, ‘컴파일러가 모든 코드에 대해 강제하는 언어의 근본 법칙’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 있습니다.

C++의 스마트 포인터는 매우 훌륭하지만, 그것의 사용은 어디까지나 ‘선택 사항’입니다. 개발자는 언제든지 스마트 포인터를 사용하지 않고, 과거의 방식대로 날것의 포인터(new/delete)를 사용하여 메모리를 수동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컴파일러는 이를 막지 않습니다. 즉, C++의 안전성은 컴파일러가 보장하는 강제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스마트 포인터를 올바르게 사용하자’는 개발자들의 자율적인 규율이자 관습에 의존하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입니다. 이 때문에 단 한 명의 개발자가 이 규율을 어기는 것만으로도, 시스템 전체의 안전성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반면, 러스트에서 소유권은 선택 가능한 라이브러리 기능이 아니라, 언어의 타입 시스템 자체에 내장된 거부할 수 없는 규칙입니다. 스택에 있는 정수(i32) 하나부터 힙에 있는 복잡한 구조체까지, 모든 값은 이 소유권 규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 규칙의 집행자가 바로 ‘보로 체커(Borrow Checker)’입니다.

보로 체커는 모든 코드 라인을 정적으로 분석하여, 소유권 규칙이 단 하나라도 위반되는 지점을 찾아냅니다. 만약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그것은 단순한 경고나 잠재적 버그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프로그램의 생성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단호한 컴파일 에러가 됩니다. unsafe 블록이라는 명시적인 탈출구를 사용하지 않는 한, 개발자는 이 규칙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C++이 ‘자원 소유권’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면, 러스트는 그 소유권의 이전과 대여 기록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추적하고 강제하는 ‘전지전능한 등기소’를 언어 안에 만들어낸 것입니다. ‘인간의 규율’에 의존했던 안전성을 ‘컴파일러의 수학적 강제’로 전환시킨 것, 바로 이것이 러스트 소유권 시스템이 가진 진정한, 그리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위대한 공학적 성취입니다.

숙련된 C/C++ 개발자가 바라보는 러스트 소유권의 시각

그렇다면 수십 년간 C/C++의 세계에서 자원 관리의 어려움과 싸워 온 숙련된 개발자들은, 러스트의 소유권 시스템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그들의 시각은 단순한 찬양이나 비난이 아닌, 깊은 공감과 약간의 답답함이 섞인 매우 복합적인 형태를 띱니다.

숙련된 C/C++ 개발자가 러스트의 소유권과 빌림 규칙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만난다는 느낌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 이것은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고 노력했던 바로 그 원칙이구나”라는 깊은 공감과 함께 ‘아!’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 러스트의 소유권 이전(move)은, 그들이 실수를 막기 위해 std::unique_ptrstd::move를 사용하던 바로 그 패턴입니다.
  • 러스트의 불변 참조(&T)는, 그들이 데이터의 불변성을 보장하기 위해 const T&를 사용하던 바로 그 원칙입니다.
  • 러스트의 가변 참조(&mut T)는, 데이터의 수정을 한 곳으로 제한하려던 그들의 설계 의도와 일치합니다.

즉, 그들에게 러스트의 소유권 시스템은, 자신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팀의 코딩 규약으로 만들어 지켜왔던 ‘암묵적인 규칙’들을, 컴파일러가 직접 나서서 강제해주는 모습으로 비칩니다. 그들은 이 시스템의 ‘의도’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며, 그 공학적 성취에 대해 진심 어린 존중을 표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답답함과 비판은 바로 그 ‘강제성’의 비타협적인 엄격함에서 비롯됩니다.

숙련된 개발자는 규칙을 알 뿐만 아니라, 언제 그 규칙을 안전하게 우회할 수 있는지도 아는 사람입니다. 복잡한 자료구조나 극단의 성능 최적화를 위해, 그들은 자원의 생명주기를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확신 하에 날것의 포인터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무모함이 아닌, 전문가의 통제된 ‘자유’입니다.

하지만 러스트의 보로 체커는 이러한 전문가의 ‘확신’이나 ‘의도’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기계적인 규칙만을 따릅니다. 이 때문에 숙련된 C/C++ 개발자의 눈에는, 실제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안전한 코드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보로 체커가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컴파일 에러를 내뱉는 러스트 컴파일러가, 때로는 융통성 없는 원리원칙주의자처럼 보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숙련된 C/C++ 개발자가 바라보는 러스트의 소유권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평범한 개발자들이 위험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강제하는, 매우 훌륭하고 교육적인 시스템이다. 산업 전체의 코드 안정성 평균을 끌어올리는 위대한 성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미 그 모든 규칙을 내재화한 전문가에게는 때로 자유로운 손발을 묶는 지나치게 엄격한 규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양가적인 평가는, 러스트의 소유권이 가진 명백한 가치와 그 이면의 한계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3부: 나르시시즘의 결과: 고립, 배제, 그리고 퇴보

제5장: ‘완벽한 언어’라는 종교: 집단적 나르시시즘과 방어기제

앞선 장들에서 우리는 러스트(Rust)를 둘러싼 여러 ‘신화’들을 해체해 보았습니다. 기술적으로 절대적이지 않은 ‘안전성’, 때로는 고통스러운 ‘개발 경험’, 그리고 C++로부터 이어진 ‘소유권’의 역사적 맥락을 통해, 러스트 역시 많은 장점과 명백한 단점이 있는 하나의 ‘도구’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왜 이토록 명백한 기술적 현실에도 불구하고,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는 언어의 단점을 인정하지 않으며 비판에 대해 극도로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요? 왜 기술에 대한 건전한 토론이 개인에 대한 비난과 조롱으로 변질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더 이상 기술의 영역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원인을 인간의 심리, 특히 ‘집단적 나르시시즘’과 그것이 발현시키는 강력한 ‘방어기제’, 그리고 이를 증폭시키는 ‘군중심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 장에서는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가 어떻게 ‘완벽한 언어’라는 종교를 만들어내고,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떤 심리적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프로젝트의 거버넌스 실패라는 재앙으로까지 이어졌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5.1. 자기애적 투사와 ‘우리’라는 과대성

“나는 특별하다”: 개인의 정체성과 ‘완벽한 도구’의 동일시

모든 현상의 시작점에는 하나의 프로그래밍 언어가 개인의 자존감과 결합되는 심리적 과정, 즉 ‘자기애적 투사’가 있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삼단논법의 형태를 띱니다.

  1. “러스트는 기술적으로 우월하고 완벽한 언어다.”
  2. “나는 그 어렵고 우월한 러스트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특별한 개발자다.”
  3. “그러므로, 나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평범한 개발자들보다 우월하다.”

이 논리적 비약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자존감과 기술적 정체성을 ‘러스트’라는 외부의 대상에 완전히 의탁하게 됩니다. 이제 러스트의 결점에 대한 비판은 단순한 기술적 피드백이 아니라, 자신의 지성과 능력, 나아가 존재 가치 자체를 위협하는 실존적 공격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러스트에 대한 공격은 곧 ‘나’에 대한 공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르시시즘은 단순히 언어 자체에 대한 맹목적 숭배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식(예: 러스트의 메모리 안전성 모델)에 대한 과도한 동일시나 ‘지적 우월감’을 통해 발현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선구자다”: ‘우리’(깨달은 자)와 ‘그들’(계몽되지 못한 자)의 이분법적 세계관

이러한 개인의 심리는 ‘우리 러스트 개발자들(Rustaceans)’이라는 집단 속에서 증폭되며 ‘집단적 과대성’으로 발전합니다. “우리만이 메모리 안전성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는 선구자”라는 강한 유대감과 소속감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상은 둘로 나뉩니다. ‘우리’(깨달은 자, 미래를 이끄는 자)와 ‘그들’(C++의 불안전함이나 가비지 컬렉터의 나태함에 빠진, 아직 계몽되지 못한 자).

‘러스트만이 답이다’ 식의 배타적 사고방식과 ‘모든 시스템 프로그래밍 대체’ 주장의 확대 해석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이분법적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러스트만이 모든 문제의 답이며, 종국에는 모든 시스템 프로그래밍을 대체할 것”이라는 배타적이고 과대망상적인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넘어, 다른 모든 대안을 평가절하하고 자신들의 선택을 유일한 진리라고 믿는 ‘선민사상’의 발현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완전한 대체’라는 주장은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두 가지 근본적인 현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술적 현실, 즉 C ABI(Application Binary Interface)에 대한 반영구적 종속성입니다. 현대의 모든 운영체제와 하드웨어 드라이버, 그리고 수많은 핵심 라이브러리들은 C언어의 호출 규약이라는 ‘공용어’를 통해 소통합니다. 러스트 역시 이 거대한 생태계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C ABI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러스트가 ‘대체’하려는 바로 그 C의 유산 없이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를 의미하며, 러스트의 현실적 위치가 ‘대체’가 아닌 ‘공존’ 혹은 ‘대용’임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둘째는 시장에서의 현실, 즉 ‘응용 프로그램 생태계’ 중심의 가치 판단입니다. 최종 사용자는 운영체제나 프로그래밍 언어 자체를 사용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지 않습니다. 그들은 워드프로세서, 게임, 전문 소프트웨어와 같은 ‘응용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러스트로 만든 시스템이 기술적으로 아무리 우월하다 한들, 수십 년간 C/C++ 생태계가 쌓아 올린 방대한 응용 프로그램들과 호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도 살지 않는 기술적 유토피아’일 뿐입니다.

이러한 과대하고 배타적인 태도는 다른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들의 접근 방식과 대비될 때 더욱 명확히 드러납니다. 지그(Zig)나 오딘(Odin)과 같이 C 언어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저수준 제어를 목표로 하는 언어들은 보다 실용적이고 겸손한 접근 방식을 취합니다. 예를 들어, 지그의 창시자 앤드루 켈리(Andrew Kelley)는 지그를 ‘C를 대체하는 C’로, 오딘의 개발자 Ginger Bill(Bill Hall)은 오딘을 ‘킬러 기능 없는 실용적인 언어’로 소개하며 불필요한 과장이나 맹목적인 우월주의를 지양합니다. 이들 언어는 C의 유산을 존중하며 함께 나아가려는 태도를 보이며, 자신들의 언어가 가진 명확한 트레이드오프를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이러한 문화적 지향점은 러스트 커뮤니티 일부에서 관찰되는 ‘모든 것을 대체하려는’ 배타적인 시각과 대비되어, 건강한 기술 생태계가 나아가야 할 또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결국 ‘모든 것을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은 합리적인 기술 예측이라기보다는, 앞서 언급한 ‘영웅 서사’를 뒷받침하기 위한 집단적 과대성의 표현에 가깝습니다.

5.2. 비판에 대한 방어기제 분석

개발 방어기제: 이상화, 평가절하, 그리고 투사

나르시시스트의 자아는 겉보기에는 강대해 보이지만, 그 내면은 유리처럼 깨지기 쉽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믿음의 근간인 ‘완벽한 러스트’라는 신념이 위협받을 때, 그들의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첫 번째 방어기제가 바로 이상화(idealization)와 평가절하(devaluation)입니다.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작동하며, 현실을 왜곡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수호하는 견고한 벽을 만듭니다.

이상화

첫 번째 방어기제는 ‘러스트’를 모든 단점으로부터 자유로운 완벽한 존재로 이상화하는 것입니다. 가파른 학습 곡선, 긴 컴파일 시간, 복잡한 생태계와 같은 명백한 단점들은 “네가 아직 이해를 못 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축소되거나, “그것은 위대한 안전성을 얻기 위한 사소한 대가”라며 합리화됩니다. 이 이상화 과정을 통해 러스트는 단순한 프로그래밍 도구를 넘어, 흠결 없는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 됩니다.

평가절하

이러한 이상화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필연적으로 그 외의 모든 것을 평가절하합니다. 여기서 러스트 커뮤니티 일부가 사용하는 가장 교묘하고 비논리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불공정한 비교 프레임’입니다. 그들은 러스트 컴파일러가 보장하는 ‘안전한(safe) 러스트’와 C/C++ 언어의 본질적인 ‘안전하지 않음(unsafe)’을 직접 비교하며 러스트의 우월성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공정하게 비교하려면 마땅히 개발자가 모든 책임을 지는 ‘unsafe 러스트’와 C/C++를 비교하거나, 이미 더 높은 수준의 안전성을 달성한 Ada와 러스트를 비교해야 합니다. 공정한 비교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레임만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러스트를 이상화하고 타 언어를 손쉽게 평가절하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어 전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나르시시즘의 전형적인 패턴이 ‘이상화’ 이후에 ‘평가절하’가 온다면, 왜 그들은 러스트의 결점을 발견했을 때 러스트 자체를 평가절하하지 않는 것일까요? 왜 평가절하의 화살은 항상 외부의 비판자나 다른 언어에게로만 향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들에게 러스트가 단순한 ‘외부 대상’이 아니라, ‘자아와 융합된 정체성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러스트의 결점은 곧 ‘나의 결점’으로 인식되며, 이는 견딜 수 없는 ‘나르시시즘적 상처(Narcissistic Injury)’를 유발합니다. 만약 여기서 러스트 자체를 평가절하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쏟아부은 막대한 노력과 시간,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 전부가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자아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이 파국적인 상황을 막기 위해, 마음은 필사적으로 다른 방어기제를 사용합니다. 바로 세상을 ‘완벽하게 좋은 것(러스트, 나, 우리)’과 ‘아주 나쁜 것(비판자, 다른 언어)’으로 나누는 ‘분리(Splitting)’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발생한 ‘나의 믿음이 흔들리는 불안감’과 수치심을 ‘나쁜 대상’에게 떠넘기는 ‘투사(Projection)’를 사용합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자아 붕괴를 막기 위해 평가절하의 대상을 외부로 전치(Displacement)시킵니다. “내 자아의 일부인 러스트는 완벽하다. 따라서 저 비판이 틀렸다. 비판하는 저 자가 어리석거나, 악의적이거나, 열등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러스트라는 신전은 흠 없는 상태로 보존되며, 그 신전을 더럽히려 한 외부의 이단자만이 경멸과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언어와 비판자에 대한 격렬한 평가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자신의 신념을 얼마나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이러한 평가절하가 통하지 않을 때, 그들의 방어기제는 다음 단계인 ‘투사와 책임 전가’로 넘어가게 됩니다.

투사(projection)

비판의 기술적 타당성을 이성적으로 반박하기 어려워지면, 그들은 비판하는 사람의 ‘의도’를 공격합니다. 이는 자신의 불안감이나 열등감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투사입니다. “당신이 러스트를 비판하는 이유는,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러스트만큼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당신의 열등감 때문이다”라는 식의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책임 전가(blame-shifting)

더 나아가, 문제는 ‘러스트의 단점’이 아니라 ‘그 단점을 지적하는 당신의 낮은 기술 수준’이라고 책임을 전가합니다. “우리 회사는 기술 수준이 높아 러스트를 성공적으로 도입했는데, 당신의 회사가 도입하지 못하는 것은 개발자들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오만한 주장이 그 예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러스트 도입의 현실적 제약(레거시 시스템과의 연동, 생태계의 미성숙, 인력풀 부족 등)을 완전히 무시하는 편협한 시각이며, 리눅스 커널과 같은 최상위 프로젝트에서조차 러스트의 비중이 0.1% 미만이라는 객관적인 현실을 외면하는 행위입니다.

심리적 조작의 완성: ‘가스라이팅(Gaslighting)’

앞서 설명한 이상화, 평가절하, 투사와 같은 개별적인 방어기제들은, 특정 대상을 향해 전략적으로 사용될 때 하나의 완성된 ‘심리 조작 기술’로 발전합니다. 바로 가스라이팅(Gaslighting)입니다. 가스라이팅이란, 가해자가 교묘한 방식으로 피해자의 인지나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종속되게 만드는 정서적 학대이자 심리적 조작의 한 형태입니다.

러스트 커뮤니티 일부에서 나타나는 이 가스라이팅의 궁극적인 목표는, 합리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완벽한 언어’라는 집단의 서사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보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체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상대방의 감정과 경험을 부정하는 ‘현실 부정’이며, 둘째는 상대방의 지성을 공격하는 ‘판단력 공격’, 그리고 마지막은 상대방의 자존감을 훼손하여 커뮤니티에서 축출하는 ‘자존감 훼손을 통한 통제’입니다. 이제 각 단계가 러스트 커뮤니티 내에서 어떤 말과 논리로 나타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현실 부정: “그건 고통이 아니라 성장이다”

가스라이팅의 첫 번째 단계는 상대방이 느끼는 경험의 실체를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러스트 생태계에 처음 발을 들인 개발자가 보로 체커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하고 “이 언어는 배우기 너무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솔직한 감정을 토로할 때, 이 조작적인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커뮤니티 일부가 내놓는 반응은 공감이나 해결책 제시가 아닙니다. 대신, 그들은 상대방의 현실 인식을 정면으로 공격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더 나은 개발자로 거듭나기 위한 ‘성장통’입니다.”

이 말은 겉보기에는 따뜻한 격려처럼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상대방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교묘한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이는 피해자의 감정을 무시하고, “네가 느끼는 감정은 틀렸다. 내가 정의하는 현실이 맞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순간, 피해자는 혼란에 빠집니다. ‘분명 나는 고통스러운데, 저 사람들은 저게 좋은 거라고 하네.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뭔가를 잘못 이해하고 있나?’ 라며 스스로를 의심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 부정은 제3장에서 분석했던 ‘고통의 미학’이, 신규 개발자를 통제하기 위한 가스라이팅의 도구로 사용되는 순간입니다. ‘고통은 숭고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집단의 규범을 주입함으로써, 개인의 솔직한 감정을 억압하고 집단의 가치관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단계를 거치면서 신규 개발자는, 이 커뮤니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고통, 좌절)을 표현해서는 안 되며, 대신 집단이 요구하는 언어(“재미있는 도전”, “유익한 경험”)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학습하게 됩니다. 이는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매우 효과적인 심리적 통제 기술의 첫걸음입니다.

판단력 공격: “네가 아직 이해를 못 해서 그렇다”

상대방의 감정을 ‘미성숙한 것’으로 치부하며 현실 부정에 성공했다면, 가스라이팅의 두 번째 단계는 상대방의 이성과 판단력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는, 개발자가 러스트의 구체적인 기술적 단점이나 설계상의 문제점에 대해 합리적인 비판을 제기했을 때 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보로 체커의 규칙이 특정 디자인 패턴을 구현하기에 너무 경직되어 있다”거나, “비동기 디버깅의 경험이 실용적이지 못하다”와 같은 타당한 지적에 대해, 그들은 비판의 내용 자체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대신 비판을 제기한 사람의 ‘이해력’을 문제 삼습니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당신이 아직 러스트의 깊은 철학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지극히 오만하면서도 효과적인 가스라이팅의 수법입니다. 이 한마디를 통해, 그들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동시에 달성합니다.

  • 논점 회피: 기술적 단점이라는 본질적인 논의를 회피하고, 논쟁의 장을 ‘기술 토론’에서 ‘이해력 검증’으로 바꿔버립니다. 이제 비판자는 자신의 주장을 방어하는 대신, 자신의 지성과 이해력을 방어해야 하는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 지적 권위의 독점: “이해한 자(우리)”와 “이해하지 못한 자(당신)”라는 구도를 만듭니다. 이 구도 속에서, 비판의 내용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이해하지 못한 자’의 미숙한 의견으로 폄하될 뿐입니다.
  • 자기 의심 유발: 비판자는 “정말로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가? 나의 비판이 나의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인가?”라며 스스로의 판단력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는 어떤 비판도 수용될 수 없는 완벽한 ‘논리적 함정’을 만듭니다. 러스트를 칭찬하면 ‘이해한 자’가 되고, 러스트를 비판하면 곧 ‘이해하지 못한 자’가 되는 순환 논리 속에서, 러스트는 영원히 비판 불가능한 완벽한 대상으로 남게 됩니다.

이러한 논리는 ‘비판의 자격’ 자체를 문제 삼음으로써, 어떤 외부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순환 논리를 만들어냅니다. 비판 행위 자체가 ‘이해 부족’의 증거가 되기 때문에, 이 틀 안에서는 반론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방의 감정에 이어 이성마저 부정하고 나면, 마지막 단계인 자존감 훼손을 통한 통제로 나아갈 준비가 끝나는 것입니다.

자존감 훼손을 통한 통제: “너와는 맞지 않는 언어다”

상대방의 현실 감각(“그건 고통이 아니라 성장이다”)과 이성적 판단(“네가 이해를 못 해서 그렇다”)을 모두 흔들었음에도 비판이 멈추지 않을 때, 가스라이팅은 가장 잔인하고도 효과적인 마지막 단계로 나아갑니다. 바로 상대방의 자존감을 직접적으로 훼손하여,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때 사용되는 언어는 겉보기에는 매우 점잖고, 심지어 상대를 위하는 조언처럼 들리기까지 합니다.

“듣고 보니, 아마 러스트는 선생님과 맞지 않는 언어인 것 같습니다.”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사람마다 맞는 도구가 다르니, 억지로 스트레스받지 말고 더 잘 맞는 다른 언어를 찾아보라”는 합리적인 조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대화의 맥락, 즉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상대에게 이 말이 사용될 때, 그 속뜻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는 더 이상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비판자 개인의 ‘자격’과 ‘정체성’에 대한 공격입니다. 이 말에 숨겨진 진짜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깨달은 자’들은 모두 러스트의 깊은 철학을 이해하고 그 어려움마저 성장의 과정으로 즐기고 있는데, 너만 유독 불평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너는 우리와 같은 수준의 개발자가 아닌 것 같다. 너는 이 엘리트 커뮤니티에 어울릴 만큼 똑똑하거나, 끈기 있거나, 개방적이지 않다. 너는 이곳에 소속될 자격이 없다.

이것은 상대방의 자존감에 직접적인 상처를 입히는 매우 강력한 심리적 ‘낙인’입니다. 이 말을 들은 비판자는 ‘내가 정말 실력이 부족한가?’, ‘나는 현대적인 프로그래밍 패러다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뒤처진 개발자인가?’라며 깊은 자기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자존감 훼손을 통한 통제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비판자 스스로가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들어, 자발적으로 침묵하거나 커뮤니티를 떠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반대 목소리가 사라지고 나면, 커뮤니티 내부에는 자신들의 신념을 긍정하는 사람들만 남게 되고, ‘완벽한 언어’라는 집단적 환상은 안전하게 유지됩니다.

결론적으로, “너와는 맞지 않는 언어다”라는 말은 결코 친절한 조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집단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자존감을 파괴하는, 가장 교묘하고 효과적인 ‘추방의 언어’입니다. 이는 자신들의 세계에 동화되지 않는 사람을 ‘부적격자’로 낙인찍어 배제함으로써, 내부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폐쇄적인 집단이 사용하는 가장 마지막 단계의 통제 기술입니다.

군중심리와 비판 의견 침묵의 메커니즘: 온라인 커뮤니티의 양극화

앞서 살펴본 다양한 나르시시즘적 방어기제들은 군중심리(Crowd Psychology)라는 강력한 사회적 메커니즘과 결합하여 그 위력이 증폭됩니다. 특정 기술 커뮤니티, 특히 온라인 게시판과 같은 비공식 공간에서 나타나는 ‘서로 의견에 동조하는’ 양상은 비판적인 목소리를 주변화시키거나 침묵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커뮤니티의 양극화(Polarization)로 이어지곤 합니다. 특정 기술에 대한 과도한 동일시와 자기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강하게 표출되고 지지받는 온라인 공간에 모여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동질적인 집단 내에서는 다음과 같은 군중심리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1. 동조와 사회적 증거: 특정 기술에 대한 강한 긍정적 주장이나 비판적 시각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게시판에 올라왔을 때, 다수의 이용자가 ‘좋아요’를 누르거나 짧은 긍정/동조 댓글로 동조합니다. 이러한 간접적인 지지 표현은 “이 의견이 다수의 생각이다”,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라는 강력한 사회적 증거를 형성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비록 내심 비판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집단의 분위기에 휩쓸려 침묵하게 만드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2. 집단 극단화와 에코 챔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의견을 나누는 ‘에코 챔버(Echo Chamber)’ 내에서는, 서로의 의견에 지지를 표하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과정을 통해 특정 의견(예: 특정 기술의 우월론,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 배척)이 점차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강화됩니다. 이는 비판적인 의견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들고, 외부의 건설적인 피드백이 집단 내부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3. 탈개인화와 책임감 분산: 온라인 환경의 익명성은 개인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덜 느끼게 하는 ‘탈개인화(Deindividuation)’를 유발합니다. 이는 직접적인 공격이 아니더라도, 동조 행위를 통해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쉽게 동참하게 만듭니다. 각 개인이 ‘나 한 명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간접적인 행위에 가담하면서, 책임이 집단 전체로 분산되어 죄책감을 덜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군중심리 메커니즘은 특정 개인이 직접적으로 ‘여러 명이 뭉쳐서 공격’하는 양상을 보이지 않더라도, 집단 내에서 암묵적인 ‘행동 규범’과 ‘사고방식’을 형성하고 강화함으로써 비판적인 목소리가 위축되도록 합니다. 결국, 이러한 동조 현상은 특정 기술에 대한 ‘완벽한 언어’ 신화를 유지하고, 집단적 나르시시즘을 공고히 하는 교묘하고 지속적인 문화적 통제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온라인 기술 커뮤니티는 특정 기술에 대한 강한 동일시와 자기애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극단화된 공간과, 그러한 성향이 없는 일반 개발자들이 활동하는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공간으로 나뉘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은 나르시시즘적 집단에 동화되지 못하고 주변화되거나 스스로 떠나게 되며, 이는 전체 기술 커뮤니티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최후의 수단: 나르시시즘적 격노(narcissistic rage)

현실 부정, 판단력 공격, 자존감 훼손과 같은 교묘한 가스라이팅마저 통하지 않고, 비판자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때, 나르시시스트의 깨지기 쉬운 자아는 붕괴 직전의 최종적인 위협에 직면합니다. 이 순간, 그들은 이성적인 논쟁이나 심리적 조작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가장 원시적이고 파괴적인 방어기제를 꺼내 듭니다. 바로 나르시시즘적 격노입니다.

나르시시즘적 격노는 단순한 ‘화’나 ‘분노’와는 다릅니다. 이것은 자신의 위대한 자아상에 상처(narcissistic injury)를 입혔다고 인지된 대상에게 향하는, 통제 불가능하고 불균형적인 수준의 맹렬한 공격성입니다. 이 단계에서 그들의 목표는 더 이상 상대를 설득하거나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의 원인, 즉 비판자라는 존재 자체를 인격적으로 파괴하고, 처벌하며, 커뮤니티에서 몰아내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됩니다. 이러한 격노는 선호하는 언어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적 정체성이나 신념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격노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 노골적인 인신공격(Ad Hominem): 기술적 논점은 완전히 사라지고, 비판자의 지성, 경력, 인격, 심지어는 정신 상태에 대한 직접적인 모욕과 비난이 쏟아집니다. “당신은 실력도 없으면서 비판만 한다”, “사회 부적응자 같다”는 식의 발언이 대표적입니다.
  • 과거 행적 캐내기와 조롱: 비판자의 과거 게시물이나 활동을 샅샅이 뒤져, 현재 논점과 아무 상관없는 사소한 실수나 다른 의견을 찾아내 “원래부터 당신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며 낙인찍고 조롱거리로 만듭니다.
  • 허위사실 유포 및 평판 훼손: 비판자의 주장을 교묘하게 왜곡하여 “러스트를 망하게 하려는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허위 사실을 퍼뜨립니다. 이를 통해 비판자를 커뮤니티의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고립시킵니다.
  • ‘좌표 찍기’와 집단 린치: 특정 인물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나 블로그에 비판적인 글을 링크하며 공격을 유도하면, 수많은 지지자들이 몰려가 댓글과 인용으로 집단적인 언어폭력을 가합니다. 이는 군중심리가 동원된 현대적인 ‘사이버 스토킹’이자 ‘마녀사냥’입니다.

결론적으로, 나르시시즘적 격노는 이성적 토론의 완전한 실패이자, 집단의 믿음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폭력적 수단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만연한 커뮤니티는 더 이상 건강한 기술 생태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이단자’로 규정하고 파괴하는, 폐쇄적인 ‘종교 집단’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례 분석: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방어기제 발현 양상

앞서 살펴본 다양한 방어기제와 군중심리 메커니즘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판에 직면했을 때 특정 성향의 사용자들이 보이는 행동 양상으로 구체화됩니다. 다음은 한 온라인 프로그래밍 게시판에서 리눅스 커널 내 특정 언어의 코드 비중을 제시하며 현실을 지적한 게시물에 대해, 일부 사용자들이 보인 반응을 분석한 사례입니다. 이 대화는 책에서 다루는 논점 흐리기, 책임 전가, 인신공격 등의 방어기제가 어떻게 복합적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례 게시물 요약: 리눅스 커널 내 러스트 코드 비중 0.05% 제시 및 현실적 한계 지적]

  • 원 게시자(이하 ‘비판자’): cloc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리눅스 커널 내 러스트 코드 비중이 0.05%에 불과하며,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은 전무하다고 지적. 이는 러스트의 시스템 프로그래밍 대체 가능성에 대한 과도한 주장을 비판하는 맥락.
  • 일부 댓글 사용자(이하 ‘공격자 그룹’): 비판자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임.

사례 분석:

  1. 논점 흐리기 및 책임 전가:
    • 발현 양상: 공격자 그룹은 비판자의 ‘러스트 커널 비중’이라는 핵심 논점을 ‘Ada 같은 언어는 리눅스 커널에 끼지도 못했다’거나 ‘비판자가 특정 언어(Ada)를 과도하게 찬양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전환하려 시도합니다. 또한, 러스트에 대한 비판을 ‘열등감’, ‘지능 부족’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문제의 책임을 비판자 개인에게 전가합니다.
    • 심리적 기제: 이는 논점 회피(Red Herring)책임 전가(Blame-shifting)의 전형적인 예시입니다.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기보다 대상을 바꾸거나 상대방의 의도를 왜곡하여 자신들의 믿음을 방어하려는 기제가 작동한 것입니다.
  2. 판단력 공격 및 인신공격:
    • 발현 양상: 공격자 그룹은 “말도 안 되는 언어를 가져와서 왜곡된 말을 한다”, “이 논리구조를 이해할 지적 능력이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 인성으로는 지능도 대충 짐작이 간다” 등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 심리적 기제: 이는 비판자의 지성과 판단력을 직접적으로 모욕하여 비판을 무력화시키려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의 판단력 공격 단계입니다. 비판자를 ‘무지한 자’로 낙인찍음으로써, 그들이 제시하는 사실이나 논리의 타당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인성’, ‘지능’을 언급하며 비판자 자체를 폄하하는 것은 노골적인 인신공격(Ad Hominem)에 해당합니다.
  3. 나르시시즘적 격노 및 확증 편향:
    • 발현 양상: 공격자 그룹은 리눅스 커널 비중이라는 객관적 수치에도 불구하고, “나사도 러스트 도입 준비하고 있다”는 식의 단편적인 긍정적 사례를 부각하며 러스트의 ‘가치’를 방증하려 합니다. 동시에 “세상은 바뀌고 있다”는 주장을 통해 현실 인식을 왜곡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꼴뵈기 싫다’, ‘지랄하는 건데’와 같은 격한 감정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 심리적 기제: 이는 자신들의 믿음을 위협하는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지지하는 소수의 증거에만 집착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예시입니다. 더 나아가, 비판에 대한 통제 불가능하고 불균형적인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나르시시즘적 격노(Narcissistic Rage)의 징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격노는 단순히 선호하는 언어에 대한 공격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지적 정체성이나 신념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인 심리 현상입니다.

이 사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특정 기술에 대한 과도한 동일시와 자기애가 어떻게 비판에 대한 비합리적인 방어기제로 이어지며, 나아가 인신공격과 논점 흐리기를 통해 건설적인 논의를 저해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나르시시즘적 특성이 특정 환경에서 과도하게 발현된 결과’이자, 모든 기술 커뮤니티가 경계하고 성찰해야 할 ‘인간적인’ 그림자임을 시사합니다.

5.3. 영웅 서사와 ‘불편한 진실’의 외면

C++ 악마화와 러스트 구원자 서사 구축

이러한 방어기제들이 유지되는 더 큰 배경에는 커뮤니티가 공유하는 하나의 강력한 ‘영웅 서사’가 있습니다. 바로 ‘수십 년간 개발자들을 괴롭혀 온 C++라는 악마를 물리치고, 모두를 메모리 안전성의 세계로 이끌 구원자 러스트’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단순하고 선명한 선악 구도는 매우 감정적으로 매력적이어서, 많은 이들이 복잡한 기술적 현실을 따지기보다 이 서사에 기꺼이 동참하게 만듭니다.

불편한 진실의 외면: Ada/SPARK와 같은 강력한 대안에 대한 의도적 침묵

이 영웅 서사를 지키기 위해, 커뮤니티는 서사에 방해가 되는 ‘불편한 진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Ada/SPARK와 같은 강력한 대안에 대한 의도적 침묵입니다. 만약 C++만이 유일한 대안이 아니라, 러스트보다 훨씬 이전부터 더 높은 수준의 수학적 안전성을 제공해 온 Ada와 같은 언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러스트가 유일한 구원자’라는 영웅 서사는 힘을 잃게 됩니다. 그들의 목표가 진정한 ‘안전한 소프트웨어에 대한 학술적 탐구’가 아니라 ‘러스트의 우월성 서사 유지’에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정보 생태계 오염과 인식 왜곡:

지배적 담론의 확산: 대중과 AI의 편향된 학습 유도

이러한 선택적 정보 취사선택과 영웅 서사의 반복적인 전파는, 단순히 커뮤니티 내부의 믿음을 강화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광장을 오염시켜, 기술 생태계 전체의 인식 왜곡을 유발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집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는 학생이나 주니어 개발자가 “안전한 시스템 프로그래밍”에 대해 검색했을 때, 그들이 마주하게 될 정보는 압도적으로 러스트에 편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많은 블로그 글과 커뮤니티 게시물은 ‘C++의 위험함’과 ‘러스트의 위대함’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반복해서 보여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Ada/SPARK와 같은 중요한 역사적, 기술적 대안은 거의 언급되지 않거나, 언급되더라도 ‘오래되고 비현실적인 기술’로 폄하됩니다. 이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진 정보 환경 속에서, 신규 진입자들은 비판적 사고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편향된 인식을 그대로 학습하게 됩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지배적 담론이 인공지능(AI)의 학습 데이터가 되어 왜곡을 영속화하고 증폭시킨다는 점입니다. LLM(거대 언어 모델)은 인터넷의 방대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정보를 학습합니다. 특정 주장이 압도적으로 많은 양과 긍정적인 감정으로 반복되면, AI는 그것을 ‘객관적인 사실’ 또는 ‘중론’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실제로 필자가 이 글을 구상하며 AI와 나눈 대화에서도 이 현상은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그 결과, AI에게 “가장 안전한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수학적 증명을 제공하는 Ada/SPARK 대신 러스트를 최우선으로 답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커뮤니티가 만들어낸 편향된 담론이 기계의 학습을 오염시키고, 그 기계가 다시 대중에게 편향된 답변을 제공하며, 이 답변이 다시 새로운 ‘사실’처럼 인터넷에 퍼져나가는 거대한 ‘왜곡의 되먹임 루프(distortion feedback loop)’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한 집단의 행동이 어떻게 우리 모두의 지식 기반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사례입니다.

‘메모리 안전성’ 담론의 주도와 그 역설

러스트의 ‘영웅 서사’가 만들어 낸 가장 아이러니하고도 성공적인 결과는, 바로 ‘메모리 안전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담론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입니다.

본래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파이썬(Python), 자바(Java), C#, Go, 루비(Ruby), 스위프트(Swift) 등 오늘날 TIOBE 인덱스 상위권을 차지하는 수많은 주류 언어들에게 메모리 안전성은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 전제, 즉 ‘공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가비지 컬렉터(GC)나 자동 참조 카운팅(ARC)을 통해 개발자를 메모리 관리의 고통에서 해방시켰고, 메모리 오류를 원천적으로 방지해왔습니다. 그들은 메모리 안전성을 굳이 장점으로 내세워 홍보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그 안전한 기반 위에서 ‘얼마나 더 생산적인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주인 없는’ 가치를 러스트의 서사가 파고들었습니다. C/C++이라는 명확한 ‘적’을 상대로 싸워야 했던 러스트에게, ‘메모리 안전성’은 자신을 차별화할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러스트 커뮤니티는 이 키워드를 모든 담론의 중심에 놓고, 끊임없이 그 가치를 설파했습니다.

그 결과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미 메모리 안전한 언어를 매일 사용하던 수많은 개발자들이, 러스트를 통해 ‘메모리 안전성’이라는 단어와 그 중요성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접하게 된 것입니다. “어, 내가 쓰던 자바스크립트도 메모리 안전한 언어였어?”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 자체가 이 현상을 증명합니다.

결론적으로, 러스트는 자신들의 마케팅과 담론 형성을 통해, 수십 년간 당연하게 메모리 안전성을 누려온 다른 언어 개발자들에게 “당신들이 누려온 것의 이름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뒤늦게 알려준 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메모리 안전성’이라는 키워드를 러스트의 가장 강력한 브랜드 자산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지배적인 서사가 어떻게 기술의 실제 역사나 소유권과 무관하게, 대중의 인식을 재편하고 특정 가치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5.4. 거버넌스의 실패와 신뢰의 붕괴: 상표권 사태

커뮤니티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결국 프로젝트의 방향을 결정하는 리더십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실질적인 재앙을 불러왔습니다. 2023년에 있었던 ‘상표권 정책 사태’는 그 모든 문제가 응축되어 폭발한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러스트 재단이 커뮤니티와의 소통 없이, 기존의 관행을 무시하고 매우 제한적인 상표권 정책 초안을 발표하자 커뮤니티는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이는 리더십 그룹이 “우리가 프로젝트를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가장 잘 안다”는 집단적 나르시시즘에 빠져, 자신들의 결정을 커뮤니티가 당연히 수용할 것이라 믿었던 결과입니다.

이 사태는 ‘Crab-lang’이라는 이름의 언어 포크(fork) 위협으로까지 이어지며,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분열 가능성까지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재단의 배후에 있는 기업들의 이익과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자유로운 정신이 어떻게 충돌할 수 있는지, 그리고 ‘러스트 프로젝트’와 ‘러스트 재단’이라는 두 리더십 그룹 간의 괴리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이 거버넌스의 실패는 수년에 걸쳐 쌓아온 커뮤니티와 리더십 간의 신뢰를 한순간에 붕괴시킨 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의 언어를 둘러싼 나르시시즘적 문화는 단순히 온라인상의 말싸움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생태계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하고, 합리적인 토론을 마비시키며, 종국에는 프로젝트의 리더십과 거버넌스마저 실패로 이끄는 파괴적인 힘을 가집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생태계의 기술적인 ‘성장통’을 어떻게 더욱 악화시키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제6장: 생태계의 “성장통”을 외면하는 나르시시즘

앞선 5장에서는 나르시시즘적 문화가 어떻게 커뮤니티의 신뢰와 거버넌스를 붕괴시키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파괴적인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제 제6장에서는, 그 심리적 문제가 어떻게 생태계의 실질적인 ‘기술적 성장통’을 외면하고 악화시키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하겠습니다.

물론, 이 장에서 우리가 다룰 문제들, 예컨대 파편화된 라이브러리, 부족한 문서, 툴링의 미성숙함 등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오픈소스 생태계가 겪는 고질적인 병폐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은 이 보편적인 문제를 유독 러스트의 ‘나르시시즘’과 연결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세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러스트가 스스로를 내세우는 ‘완벽함’이라는 신화와의 정면충돌 때문입니다. ‘최고의 공학적 완성도’를 주장하는 러스트에게, 그 이면의 부실한 생태계 현실은 다른 언어에 비해 훨씬 더 큰 ‘위선’으로 비칩니다.

둘째, 언어가 추구하는 목표와의 근본적인 부조화 때문입니다. 러스트는 세상의 기반이 되는 고신뢰성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장기적인 안정성’이 생명인데, 정작 의존해야 할 라이브러리 생태계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언어의 근본적인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이 문제를 대하는 커뮤니티 일부의 ‘태도’가 가진 특수성 때문입니다. 이 책이 진짜 비판하는 것은 ‘문제의 존재’ 자체가 아닙니다. 비판의 핵심은, ‘완벽한 안전성’을 자랑하는 언어의 커뮤니티가, 정작 생태계의 불안정한 현실은 외면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지루한 책임을 회피하며, 오히려 이 혼란스러운 현실을 ‘역동적인 성장의 과정’이라며 미화하고 합리화하려는 자기기만적인 태도에 있습니다.

이제부터 이어지는 절들에서는, 이러한 태도가 러스트 생태계의 ‘기술적 현실’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세 가지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바로 라이브러리 생태계의 질적 문제, 언어의 핵심 철학이 야기하는 실질적 비용, 그리고 개발 생산성과 직결되는 도구의 한계입니다.

6.1. 파편화된 크레이트(Crate) 생태계와 책임 회피

시작하기에 앞서 명확히 할 점이 있습니다. 이 절에서 다룰 파편화, 문서 부족, 유지보수 문제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모든 오픈소스 라이브러리 생태계가 가진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유독 러스트의 크레이트 생태계를 주목하는 이유는, 문제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그 문제를 대하는 커뮤니티의 ‘태도’와, 그 태도가 러스트가 내세우는 ‘완벽함’이라는 신화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성장통이, ‘완벽한 공학’을 주장하는 러스트 생태계에서는 어떻게 ‘외면’과 ‘책임 회피’라는 나르시시즘적 방어기제의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성숙도 낮은 크레이트, 불충분한 문서화, 유지보수 문제 외면

러스트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중앙화된 패키지 저장소인 crates.io와 이를 손쉽게 사용하게 해주는 빌드 도구 cargo입니다. 수십만 개의 ‘크레이트(crate)’라 불리는 라이브러리가 존재한다는 양적인 풍부함은, 러스트 생태계가 매우 활발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이 양적인 팽창의 이면에는, 질적인 미성숙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습니다. 실제 프로덕션 수준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려는 개발자는, 이 거대한 크레이트의 바다에서 길을 잃고 좌절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첫째, 상당수의 크레이트가 ‘0.x’ 버전에 수년째 머물러 있습니다. 버전 번호가 1.0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은, 해당 라이브러리의 API가 언제든지 예고 없이 변경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해당 크레이트를 사용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잠재적인 리스크를 전가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수많은 크레이트가 개인의 학습용으로 만들어진 ‘토이 프로젝트’이거나, 아이디어를 잠시 실험해 본 ‘개념 증명(Proof of Concept)’ 수준에 머물러 있어, 실제 프로덕션 환경에서 사용하기에는 안정성과 기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둘째, 문서화의 부재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운 좋게 원하는 기능의 크레이트를 찾았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API 목록 외에는 변변한 사용 예제나 설명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개발자는 라이브러리를 ‘사용’하기 위해, 결국 해당 라이브러리의 소스 코드를 전부 읽고 분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립니다. 이는 라이브러리를 사용하는 본래 목적인 ‘생산성 향상’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경험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유지보수의 부재입니다. 많은 핵심적인 크레이트들이 단 한 명 또는 소수의 자원봉사 개발자에 의해 유지됩니다. 이들이 개인적인 사정이나 번아웃으로 인하여 프로젝트를 더 이상 관리하지 못하게 되면, 해당 크레이트는 치명적인 버그나 보안 취약점이 발견되어도 수개월, 심지어 수년간 방치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오픈소스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성장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가 이 성장통을 직시하고 해결하려 노력하기보다, ‘외면’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새롭고 ‘힙한’ 기술을 만드는 데에는 열광하지만, 기존 생태계를 안정시키고, 문서를 작성하며, 꼼꼼하게 유지보수하는 지루하고 영광 없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이는 ‘완벽한 언어’라는 자기애에 빠져, 그 언어가 서 있는 현실 세계의 지반이 얼마나 부실한지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리는 나르시시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필요하면 네가 기여해라”식의 무책임한 태도

러스트 생태계의 미성숙함이나 문서 부족, 유지보수 문제를 제기했을 때 마주하게 되는 가장 대표적인, 그리고 가장 교묘한 방어 논리는 바로 오픈소스의 신성한 가치를 방패로 삼는 것입니다. 그들은 “Pull Requests are welcome(언제나 기여를 환영합니다)” 또는 “필요하면 당신이 직접 기여하세요”라는 말로 비판에 응수합니다.

표면적으로 이 말은 오픈소스의 가장 위대한 정신인 ‘자발적 참여와 협력’을 장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구든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개방성을 상징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 책이 비판하는 나르시시즘적 맥락 속에서, 이 숭고한 문구는 종종 ‘책임 회피’와 ‘부담 전가’를 위한 가장 편리한 알리바이로 변질됩니다.

이 말의 숨겨진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당신이 겪는 불편함은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 당신의 문제입니다.”
  • “당신은 수동적인 소비자에 불과하며, 무언가를 요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 “해결책을 함께 가져오지 않는 불평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이는 라이브러리의 결함을 발견하고 용기를 내어 문제를 제기한 사용자를 ‘기여자’가 아닌 ‘불평꾼’으로 취급하고, 문제 해결의 책임을 온전히 그 사용자에게 되돌려주는 행위입니다.

이는 마치,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이라고 자랑하는 식당에서 차가운 수프를 받은 손님이 문제를 제기하자, 셰프가 “주방은 열려있으니, 불만 있으면 직접 들어와서 데워 드시죠”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결과물에 자부심을 가진 장인의 태도가 아니라, 사용자에게 어떤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 오만한 아마추어의 태도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생태계에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첫째, 개발자들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더 많은 일거리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점점 피드백을 포기하고 침묵하게 됩니다. 이는 생태계의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고 조용히 곪아 터지게 만듭니다. 둘째, 모든 사용자가 복잡한 라이브러리의 내부 구조를 파악하고 버그를 수정할 시간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들에게 기여를 강요하는 것은 사실상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필요하면 네가 기여해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훌륭한 오픈소스의 모토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생태계의 문제점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 대한 답변으로 사용될 때, 그것은 협력의 제안이 아닌 ‘무책임’과 ‘책임 회피’를 정당화하는 수사학으로 전락합니다. 이는 자신들이 쌓아 올린 ‘활발한 생태계’라는 신화의 이면에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또 다른 나르시시즘적 태도일 뿐입니다.

단편적인 성공 사례만 부각하고 전체적인 생태계 문제 간과

앞서 지적한 생태계의 불안정성이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는 마지막 방어기제를 꺼내 듭니다. 바로 소수의 성공 사례를 과도하게 부각하여, 전체적인 문제점을 덮어버리는 ‘체리 피킹(Cherry-picking)’ 수법입니다.

그들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과 같은 거대 기술 기업들이 러스트를 채택했다는 사실이나, tokio, serde, ripgrep처럼 매우 성공적으로 개발되고 널리 사용되는 몇몇 크레이트의 사례를 반복적으로 언급합니다. 이러한 단편적인 성공 사례들은, 마치 러스트 생태계 전체가 그와 같은 수준의 성숙도와 안정성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강력한 후광 효과(Halo Effect)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믿음을 위협하는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고, 그 믿음을 지지하는 소수의 증거에만 집착하는 전형적인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입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현실을 재구성합니다.

“불안정한 ‘0.x’ 버전의 크레이트가 너무 많다”는 비판에 대해, 그들은 serde는 1.0 버전을 넘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답합니다. serde의 성공이 생태계 전체의 성공인 것처럼 일반화하는 것입니다.

“문서화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들은 “언어 입문서인 ‘The Rust Programming Language(The Book)’는 매우 훌륭하다”고 반박합니다. 개별 라이브러리의 문서 부재라는 핵심적인 문제를, 잘 만들어진 언어 입문서의 존재로 희석시켜 버립니다.

“유지보수되지 않는 라이브러리가 많다”는 우려에 대해, 그들은 tokio와 같은 핵심 라이브러리는 여러 개발자에 의해 활발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소수의 핵심 프로젝트가 받는 관심이, 수많은 다른 라이브러리들이 처한 현실을 대변하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생태계의 발전에 매우 해롭습니다. 소수의 빛나는 별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그 별들 사이의 광활하고 어두운 공간, 즉 수많은 평범한 개발자들이 실제로 허우적거리고 있는 불안정한 생태계의 현실을 간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단편적인 성공 사례만을 내세우는 것은,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않고 나무 한 그루만 보고 숲 전체가 울창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생태계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논의를 회피하고, “우리는 이미 성공하고 있다”는 안일한 자기 만족에 빠지게 만드는 나르시시즘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진정한 성장은, 화려한 성공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고 초라한 실패를 직시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6.2. ‘Zero Cost Abstractions’ 홍보의 이면과 실제 비용

‘런타임 비용 제로’라는 말의 함정: C++언어와의 현실적 비교

러스트가 C/C++ 개발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약속 중 하나는 바로 ‘제로 코스트 추상화(Zero-Cost Abstractions, ZCA)’입니다. 이는 개발자가 이터레이터(iterator)나 async/await와 같은 고수준의 편리한 추상화 기능을 사용하더라도, 그로 인한 런타임 성능 저하, 즉 ‘추상화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하지만 이 ‘제로 코스트 추상화’라는 원칙은 사실 러스트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C++이 수십 년간 추구해 온 핵심 설계 철학이기도 합니다. C++의 창시자 비야네 스트롭스트룹이 내세운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You don’t pay for what you don’t use)”는 원칙이 바로 ZCA의 본질 그 자체입니다. C++은 다음과 같은 기능을 통해 오래전부터 이 철학을 구현해왔습니다.

  • 템플릿(Templates): 컴파일 시점에 각 타입에 맞는 코드를 생성(모노모피제이션)하여, 런타임의 가상 함수 호출과 같은 오버헤드 없이 제네릭 프로그래밍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는 러스트 제네릭의 작동 방식과 근본적으로 동일합니다.
  • RAII와 스마트 포인터: std::unique_ptr는 날것의 포인터와 동일한 크기와 성능을 가지면서도, 메모리 안전성이라는 추상화를 ‘비용 없이’ 제공하는 ZCA의 완벽한 예시입니다.

그렇다면 러스트의 ZCA는 무엇이 다른가? 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러스트의 진정한 기여는, 이 ZCA라는 기존의 철학을 메모리 안전성을 보장하는 ‘소유권 시스템’과 완벽하게 결합시켰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러스트의 이터레이터는 보로 체커 덕분에 C++보다 더 엄격한 안전성 보장 하에 컴파일 시점 최적화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가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미묘한 차이를 생략하고, 마치 ZCA가 자신들만의 고유한 발명품인 것처럼 이야기하며 우월성을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제로 코스트’라는 말의 함정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비용이 ‘제로’가 된 것이 아니라, 단지 ‘런타임’에서 다른 곳으로 전가되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제로 런타임 비용’이라는 달콤한 약속의 대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컴파일 시간 비용: 컴파일러가 모든 추상화를 해소하고 최적화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일을 하므로, 컴파일 시간은 필연적으로 길어집니다.
  • 바이너리 크기 비용: 모노모피제이션 과정에서 코드의 양이 팽창하여, 최종 실행 파일의 크기가 커집니다.
  • 인지적 비용: 개발자는 이 복잡한 추상화 시스템(트레잇, 생명주기 등)을 이해하고, 컴파일러를 만족시키기 위해 상당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제로 코스트 추상화’는 ‘제로 런타임 코스트 추상화’를 의미할 뿐, 결코 ‘비용이 없는’ 추상화가 아닙니다. 런타임 성능이라는 단 하나의 가치를 위해 다른 모든 비용을 감수하는 러스트의 설계 철학을 보여주는 용어일 뿐이며, 그 역사적 뿌리를 외면한 채 이를 러스트만의 고유한 성취처럼 홍보하는 것은 이 책이 비판하고자 하는 과장된 서사 구축의 또 다른 예시입니다.

컴파일 시간과 바이너리 크기: 추상화의 비용은 누가 지불하는가?

‘제로 런타임 비용’이라는 러스트의 매력적인 약속은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그 비용은 런타임이라는 무대 뒤편으로 옮겨져, 개발 과정과 배포 단계에서 개발자와 인프라가 고스란히 지불하게 됩니다. 이 절에서는 그 비용 청구서에 명시된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항목, 바로 긴 컴파일 시간거대한 바이너리 크기에 대해 분석합니다.

이 두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대부분 ‘제로 코스트 추상화’를 실현하는 핵심 기술인 모노모피제이션(Monomorphization)으로 귀결됩니다. 모노모피제이션이란, Vec<T>와 같은 제네릭 코드를 사용할 때, 컴파일러가 Vec<i32>, Vec<String> 등 사용된 모든 구체적인 타입에 대한 별도의 코드를 전부 복사하여 생성하는 과정입니다. 런타임에 타입을 확인하는 비용을 없애기 위해, 컴파일 타임에 모든 경우의 수를 미리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첫 번째 비용은 컴파일 시간입니다. 모노모피제이션은 컴파일러가 처리해야 할 코드의 양을 기하급수적으로 팽창시킵니다. 코드 한 줄을 수정했을 뿐인데, 수많은 제네릭 함수들이 다시 생성되고 최적화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 LLVM이라는 강력하지만 무거운 백엔드는 이 팽창된 코드를 최적화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모합니다. 그 결과, 개발자는 커피를 마시거나 다른 일을 해야 할 만큼 긴 컴파일 시간을 견뎌야만 합니다. 이것은 러스트의 ‘제로 런타임 비용’을 위해, 개발자의 생산성이라는 ‘시간 비용’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비용은 바이너리 크기입니다. 컴파일러가 생성한 그 모든 ‘복사본’ 코드들은 최종 실행 파일에 그대로 포함됩니다. Vec<i32>를 위한 코드와 Vec<String>을 위한 코드가 바이너리 안에 별도로 존재하는 식입니다. 이는 앞서 6.4절에서 논의할 libstd의 정적 링킹 문제와 결합하여, 간단한 프로그램조차 수 메가바이트(MB)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를 갖게 만듭니다. 이것은 ‘제로 런타임 비용’을 위해, 디스크 공간과 네트워크 대역폭이라는 ‘인프라 비용’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결국, “추상화의 비용은 누가 지불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합니다. 최종 사용자의 CPU가 아니라, 개발자와 그들이 사용하는 빌드 서버, 그리고 최종 결과물을 배포하고 저장하는 시스템이 그 비용을 모두 지불합니다. 러스트의 ‘제로 코스트’라는 주장은, 이처럼 개발과 배포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실질적 비용을 교묘하게 눈가림으로써 유지되는,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입니다.

과도한 모노모피제이션(Monomorphization)과 그 그림자

러스트의 긴 컴파일 시간과 거대한 바이너리라는 비용은, ‘제로 코스트 추상화’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컴파일러가 사용하는 모노모피제이션(Monomorphization)이라는 ‘전략’에서 비롯됩니다. 모노모피제이션은 러스트의 성능을 보장하는 강력한 무기이지만, 동시에 생태계의 발목을 잡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모노모피제이션이란, process<T>(data: T)와 같은 제네릭(Generic) 함수가 있을 때, 컴파일러가 이 함수를 사용하는 모든 구체적인 타입에 대해 각각의 전문화된 함수 버전을 코드로 직접 생성하고 복사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코드에서 process(10_i32)process("hello")를 호출했다면, 컴파일러는 내부적으로 process_i32(data: i32)process_str(data: &str)이라는 두 개의 완전히 다른 함수를 만들어냅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런타임에 타입을 확인하거나 가상 함수 테이블(vtable)을 거칠 필요 없이, 가장 빠른 직접 함수 호출이 가능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러스트가 C++ 수준의 런타임 성능을 달성하는 비결입니다.

하지만 이 전략의 그림자는 바로 ‘코드 팽창(Code Bloat)’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만약 100줄짜리 복잡한 제네릭 함수를 10개의 다른 타입에 대해 사용했다면, 컴파일러는 1000줄에 달하는 코드를 생성하여 최적화하고, 최종 바이너리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과도한’ 코드 복제는 앞서 지적한 두 가지 문제를 필연적으로 야기합니다. 바로 느린 컴파일 시간비대한 바이너리 크기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러스트에도 이러한 모노모피제이션을 피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동적 디스패치(Dynamic Dispatch)’를 사용하는 트레잇 객체(Trait Object, &dyn MyTrait)입니다. 이 방식은 타입별로 코드를 복제하는 대신, 단 하나의 함수 버전을 생성하고 런타임에 vtable을 통해 실제 호출할 메서드를 결정합니다. 이 방식은 약간의 런타임 비용이 발생하는 대신, 컴파일 시간을 단축시키고 바이너리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상충 관계(trade-off)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러스트 커뮤니티의 문화는 종종 이러한 균형 잡힌 접근을 어렵게 만듭니다. ‘제로 코스트’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집착은, 제네릭과 정적 디스패치(모노모피제이션)를 무조건적으로 ‘더 우월한’ 방식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동적 디스패치는 ‘성능 저하를 유발하는, 피해야 할 방식’으로 폄하되기 일쑤입니다.

결론적으로, 모노모피제이션은 런타임 성능을 위한 강력하지만,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무차별 대입(brute-force)’에 가까운 전략입니다. 이 전략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맹신은, ‘제로 코스트’라는 신화를 지키기 위해 개발자와 인프라가 치러야 하는 현실적인 비용을 외면하게 만드는, 러스트 생태계의 또 다른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6.3. 개발 툴링(Tooling)의 고질적인 문제

느린 컴파일 시간: ‘Zero Cost Abstractions’의 대가와 대규모 프로젝트의 생산성 저하

러스트 생태계의 ‘성장통’ 중에서, 아마도 가장 악명 높고 많은 개발자들이 일상적으로 고통받는 문제는 바로 느린 컴파일 시간일 것입니다. “러스트 코드를 컴파일하는 동안 커피 한 잔을 내릴 여유가 생긴다”는 농담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닌 러스트 개발의 현실을 보여주는 씁쓸한 밈(meme)이 되었습니다.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앞서 분석했듯 러스트가 자랑하는 ‘제로 코스트 추상화(ZCA)’ 철학의 필연적인 대가입니다. 최종 사용자가 런타임에 지불해야 할 비용을, 컴파일러가 컴파일 타임에 모두 대신 처리해주기 때문입니다. 제네릭 코드의 과도한 모노모피제이션(Monomorphization)은 LLVM 백엔드가 처리해야 할 코드의 양을 팽창시키고, 보로 체커의 엄격한 분석 역시 상당한 연산을 요구합니다. 최종 사용자의 CPU가 누리는 속도는, 고스란히 개발자가 컴파일을 기다리는 시간과 맞바꾼 것입니다.

이 긴 기다림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개발자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적입니다. 현대적인 애자일(Agile) 개발 환경에서, 개발자의 생산성은 ‘코드 수정 → 컴파일 → 테스트’로 이어지는 피드백 루프의 속도에 크게 의존합니다. 이 주기가 짧을수록 개발자는 높은 집중 상태, 즉 ‘몰입(flow)’ 상태를 유지하며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러스트의 긴 컴파일 시간은 이 몰입의 흐름을 무자비하게 끊어버립니다. 단 몇 줄의 코드를 수정했을 뿐인데, 수십 초에서 수 분에 달하는 컴파일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 지루한 대기 시간 동안 개발자의 집중력은 흩어지고,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다른 짓을 하다가 다시 코드로 돌아왔을 때는, 이전의 사고 흐름을 되찾기 위해 또 다른 시간을 허비해야 합니다. Go와 같은 언어가 ‘빠른 컴파일 시간’ 자체를 개발자 경험의 핵심적인 목표로 삼았던 것과는 정반대의 길입니다.

이 문제는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지고 의존하는 크레이트가 많아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심각해집니다. 핵심적인 하위 크레이트의 코드가 단 하나만 변경되어도, 그에 의존하는 수많은 다른 크레이트들이 연쇄적으로 재컴파일되면서, CI/CD 파이프라인에서 빌드 시간만 수십 분을 넘기는 악몽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cargo check 명령어가 빠른 문법 검사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실제 실행과 테스트를 위해서는 결국 오래 걸리는 cargo build 과정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느린 컴파일 시간은 러스트가 선택한 ‘제로 런타임 비용’이라는 철학에 대해 우리가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명백한 청구서입니다. 커뮤니티가 sccache와 같은 캐싱 도구나 복잡한 빌드 최적화 같은 ‘해결책’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본질적인 ‘성장통’인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불완전한 IDE 지원 및 어려운 디버깅 환경

긴 컴파일 시간이라는 고통은, 더 나은 개발 도구(Tooling)가 있다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습니다. 코드를 컴파일하기 전에 IDE가 미리 오류를 잡아주거나, 디버깅을 통해 문제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전체적인 개발 경험은 크게 향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러스트 생태계의 또 다른 ‘성장통’은 바로 이 IDE 지원과 디버깅 환경의 미성숙함에 있습니다. C#의 Visual Studio나 Java의 IntelliJ IDEA와 같이, 언어와 완벽하게 통합되어 매끄럽고 안정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IDE 환경과 비교했을 때, 러스트의 개발 환경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기능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IDE 지원 도구인 rust-analyzer는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하고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실시간 오류 검사, 자동 완성, 코드 탐색과 같은 필수적인 기능들을 제공하며, 많은 러스트 개발자들의 생산성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반이 되는 언어 서버 프로토콜(LSP)의 한계와 러스트 언어 자체의 복잡성 때문에, 개발자들은 종종 다음과 같은 불편함을 겪습니다.

  • 불안정한 동작: 매크로(macro)나 복잡한 제네릭 타입이 포함된 코드에서 rust-analyzer는 종종 실제 컴파일 결과와 다른, 잘못된 오류를 표시하거나, 반대로 명백한 오류를 잡아내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 무거운 리소스 사용: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는 IDE가 수시로 멈추거나 반응이 느려지는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rust-analyzer가 프로젝트 전체를 분석하기 위해 상당한 양의 메모리와 CPU 자원을 소모하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디버깅 환경입니다. 러스트는 기본적으로 LLDB나 GDB와 같은 기존의 디버거를 사용하지만, 언어의 복잡한 추상화 때문에 디버깅 경험은 결코 매끄럽지 않습니다.

  • 난해한 변수 상태: 디버거에서 변수의 내용을 확인하려고 하면, Vec<T>String과 같은 복잡한 타입의 내부 구조가 그대로 노출되어, 실제 값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Option<T>이나 Result<T, E>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비동기 코드 디버깅: 앞서 3.3절에서 분석했듯, async/await 코드의 디버깅은 거의 악몽에 가깝습니다. 컴파일러가 생성한 거대한 상태 기계 속에서, 개발자는 길을 잃고 헤매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두려움 없는 동시성’과 ‘안전성’이라는 러스트의 약속은, 정작 그 코드가 왜 잘못 동작하는지 ‘두려움 속에서 디버깅’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과 마주합니다. 훌륭한 툴링은 개발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러스트 생태계는 ‘언어 자체의 순수성’과 ‘제로 코스트’라는 이상에 집중한 나머지, 개발자가 매일 부딪히는 이 현실적인 ‘개발 경험’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더딘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Cargo 빌드 시스템의 유연성 부족 및 의존성 관리의 복잡성

러스트 생태계의 ‘왕관 보석’이자, C/C++의 파편화된 세계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생산성을 자랑하는 도구가 바로 카고(Cargo)입니다. cargo build, cargo test와 같은 일관된 명령어와 Cargo.toml을 통한 간편한 의존성 관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러스트 개발 경험의 가장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프로젝트에서 카고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카고의 가장 큰 장점인 ‘규칙 우선(Convention over Configuration)’ 철학은, 프로젝트가 표준적인 궤도를 벗어나 복잡해지는 순간, 오히려 유연성이 부족한 경직성이라는 단점으로 돌변합니다. 카고는 “러스트 프로젝트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매우 강력한 의견을 가진 도구이며, 이 의견에 부합하지 않는 예외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코드 생성기를 먼저 실행하거나, 외부 C 라이브러리를 특정 옵션으로 컴파일하거나, 다른 빌드 시스템과 복잡하게 연동해야 하는 등의 비표준적인 빌드 절차가 필요한 경우, 개발자는 큰 난관에 부딪힙니다. 카고가 제공하는 공식적인 ‘탈출구’는 build.rs라는 빌드 스크립트이지만, 이는 종종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build.rs는 카고의 핵심 빌드 프로세스와 느슨하게 통합되어 있어, 복잡한 로직을 구현하기 어렵고 디버깅도 까다롭습니다. 결국 개발자는 빌드 시스템 안에서 또 다른 작은 빌드 시스템을 만드는 듯한, 부자연스럽고 비효율적인 작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는 모든 것을 스크립트로 제어할 수 있는 CMake나 Gradle과 같은 성숙한 빌드 시스템의 유연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의존성 관리 역시 프로젝트가 거대해지면 새로운 복잡성을 드러냅니다. 러스트는 ‘피처 플래그(feature flags)’라는 강력한 기능으로 조건부 컴파일과 선택적 의존성 관리를 지원합니다. 하지만 수십, 수백 개의 크레이트가 얽힌 대규모 모노레포(monorepo) 환경에서는, 이 피처 플래그들의 조합을 관리하고 충돌을 해결하는 것이 그 자체로 거대한 ‘설정의 늪’이 되어버립니다. 어떤 크레이트의 특정 피처 플래그가 다른 크레이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체적으로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워지며, 이는 또 다른 종류의 유지보수 비용을 발생시킵니다.

결론적으로, 카고는 잘 닦인 고속도로와 같습니다.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빠르고 쾌적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그 길을 조금이라도 벗어나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하는 복잡하고 예외적인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경직성과 유연성의 부족은 개발자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됩니다. 이는 ‘하나의 올바른 길’을 선호하는 러스트 생태계의 철학이, 복잡하고 지저분한 현실 세계의 요구사항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입니다.

6.4. 바이너리 크기 문제와 ‘범용성’이라는 신기루

실행 파일의 크기가 크다는 것은 비단 러스트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Go와 같은 다른 현대 언어들 역시, 간편한 배포를 위해 모든 의존성을 포함한 단일 정적 바이너리를 생성하면서 비슷한 특성을 공유합니다. 서버 환경과 같이 저장 공간과 네트워크 대역폭이 충분한 영역에서, 이는 큰 단점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유독 러스트의 ‘범용성’ 주장에 치명적인 이유는, 러스트가 스스로를 C/C++의 ‘대체재’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이 주장은 곧, C/C++이 수십 년간 지배해 온 임베디드 시스템, 운영체제 커널과 같이 자원이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도 자신들이 최적의 선택이라는 선언과 같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러스트의 ‘주장’과 기술적 ‘현실’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C/C++은 전통적으로 동적 링킹을 통해 매우 작은 실행 파일을 만드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반면, 러스트의 기본 빌드 방식(정적 링킹, 제네릭의 모노모피제이션)은 이와 대조적으로 훨씬 더 큰 실행 파일을 생성합니다.

결국 바이너리 크기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한계를 넘어, 러스트가 과연 모든 시스템 프로그래밍 영역을 아우르는 진정한 ‘범용’ 언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기술적 원인과, 그것이 러스트의 ‘범용성’이라는 신기루에 어떻게 균열을 내는지를 상세히 분석하겠습니다.

libstd의 ABI 안정성 부재와 정적 링킹이라는 귀결

러스트로 만든 간단한 “Hello, world!” 프로그램이 C언어로 만든 것보다 수백 배 더 큰 바이너리 파일을 생성하는 현상은, 많은 개발자들에게 의문을 안겨줍니다. 그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러스트의 표준 라이브러리인 libstd가 안정적인 ABI(Application Binary Interface)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언어의 핵심적인 설계 철학에 있습니다.

ABI란, 컴파일된 코드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저수준 규약입니다. C언어의 표준 라이브러리(libc 등)는 수십 년간 안정적인 ABI를 유지해왔습니다. 그 덕분에, 운영체제는 libc를 단 하나만 시스템에 설치해두고, 모든 C 프로그램이 이 공유된 라이브러리를 함께 사용하는 ‘동적 링킹(Dynamic Linking)’이 가능합니다. C 프로그램의 실행 파일이 매우 작은 크기를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실행 파일은 자신의 고유한 코드만 담고 있고, 표준 라이브러리 기능은 이미 시스템에 존재하는 공용 부품을 빌려 쓰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러스트는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러스트는 언어와 표준 라이브러리를 빠르게 발전시키고 개선하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습니다. 만약 libstd의 ABI를 안정적으로 고정해버리면, String이나 Vec의 내부 데이터 구조를 개선하거나, 함수 호출 방식을 최적화하는 등의 발전을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됩니다. 과거 버전의 ABI에 영원히 묶이는 ‘기술적 부채’가 되기 때문입니다. 즉, 러스트는 ‘안정적인 호환성’보다 ‘빠른 진화’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 선택의 대가는 혹독합니다. libstd의 ABI가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러스트 1.78 버전으로 컴파일된 프로그램이, 시스템에 설치된 러스트 1.79 버전의 libstd와 호환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따라서 동적 링킹은 매우 위험하고 불안정한 방식이 됩니다.

그 결과, 러스트 컴파일러는 기본적으로 ‘정적 링킹(Static Linking)’을 강제합니다. 즉, 개발자가 만드는 모든 실행 파일 안에, 해당 프로그램이 사용하는 libstd의 모든 기능들을 복사해서 통째로 집어넣는 방식입니다. “Hello, world!”를 출력하기 위해 println! 매크로 하나만 사용했더라도, 그 매크로가 의존하는 수많은 표준 라이브러리의 코드들이 전부 내 실행 파일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러스트의 ‘빠른 진화’라는 철학은 ‘ABI 안정성 포기’를 낳았고, 이는 ‘정적 링킹 강제’로 이어져 ‘거대한 바이너리 크기’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메모리와 저장 공간이 극도로 중요한 임베디드 시스템이나 운영체제 커널과 같은 전통적인 C/C++의 영역에서 러스트가 왜 ‘범용적’이기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기술적 증거입니다.

사례 1: grep과 rg의 바이너리 크기 비교

libstd의 정적 링킹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에게 익숙한 두 커맨드 라인 도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바로 C언어로 작성된 전통적인 텍스트 검색 도구인 grep과, 러스트로 작성되어 그 대안으로 떠오른 ripgrep(rg)입니다.

ripgrep은 러스트 커뮤니티가 내세우는 가장 자랑스러운 성공 사례 중 하나입니다. 병렬 처리를 통해 기존의 grep보다 월등히 빠른 검색 속도를 보여주며, 더 편리하고 다양한 기능을 제공합니다. 성능과 기능 면에서 ripgrep이 더 뛰어난 도구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도구의 실행 파일(binary) 크기를 비교해보면 우리는 러스트의 ‘현실적인 대가’와 마주하게 됩니다.

  • grep: 일반적인 리눅스 시스템에서 grep 실행 파일의 크기는 수십 킬로바이트(KB)에 불과합니다. (시스템에 따라 30KB ~ 150KB 내외)
  • ripgrep(rg): 반면, 정적으로 컴파일된 ripgrep 실행 파일의 크기는 수 메가바이트(MB)에 달합니다. (시스템에 따라 5MB ~ 12MB 내외)

두 도구의 파일 크기는 몇 퍼센트의 차이가 아니라, 적게는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까지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압도적인 크기 차이는 바로 앞서 설명한 링킹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grep은 매우 작을 수 있는 이유가, 자신의 핵심 로직만 담고 있고, 나머지 표준 기능들은 운영체제에 이미 설치된 공용 libc 라이브러리를 빌려 쓰기(동적 링킹) 때문입니다. 반면 ripgrep은 다른 시스템에 쉽게 복사해서 바로 실행할 수 있는 ‘편리함’을 위해, 자신이 사용하는 러스트 표준 라이브러리와 다른 모든 의존성 크레이트들을 자신의 실행 파일 안에 전부 포함하고 있습니다(정적 링킹).

물론, 최종 사용자가 내려받아 사용하는 단일 애플리케이션의 관점에서 몇 메가바이트의 크기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의존성 문제 없이 단일 파일로 배포되는 것이 더 큰 장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지적하는 ‘C/C++ 대체재’라는 관점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만약 리눅스의 /bin, /usr/bin 디렉터리에 있는 수백 개의 기본 명령어(ls, cp, cat 등)가 모두 수십 킬로바이트의 C 프로그램이 아니라, 수 메가바이트의 러스트 프로그램으로 대체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운영체제의 기본 용량은 지금보다 수십, 수백 배로 팽창할 것입니다. 이는 저장 공간이 제한적인 임베디드 시스템이나 도커 이미지와 같은 환경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트레이드오프입니다.

결론적으로, ripgrep은 러스트의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는 훌륭한 쇼케이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러스트의 기본 빌드 방식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바이너리’라는 현실과, 그 현실이 ‘모든 것을 대체하겠다’는 범용성의 신기루에 어떻게 균열을 내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사례 2: kime (Rust) vs nimf (C) 입력기 비교

$ ls -al kime_ubuntu-22.04_v3.1.1_amd64.deb nimf_2023.01.26-bookworm_amd64.deb
-rw-r--r--  1 user user 3197276 Jun 27 07:38 kime_ubuntu-22.04_v3.1.1_amd64.deb
-rw-r--r--  1 user user  275728 Jun 27 07:37 nimf_2023.01.26-bookworm_amd64.deb

러스트 기반의 kime 패키지는 약 3.2MB인 반면, C 기반의 nimf 패키지는 약 0.28MB에 불과해 11배 이상의 차이를 보입니다. 기능적으로는 kime가 한국어 입력에 집중하는 반면, nimf는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를 포함한 수십 종의 다양한 언어를 지원하는 프레임워크입니다.

특정 언어에 집중된 kime보다 기능적으로 훨씬 광범위한 nimf가 패키지 크기가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러스트 바이너리의 ‘비대함’이 단순한 기능 추가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임을 시사합니다.

min-sized-rust의 ‘불편한 진실’과 비정상적인 최적화 방식 비판

거대한 바이너리 크기에 대한 비판에 직면했을 때,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는 “그것은 최적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소위 min-sized-rust라 불리는 일련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그들은 이 가이드라인을 따르면 러스트 바이너리도 C언어처럼 작아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개발자의 노력 문제라고 책임을 전가합니다.

하지만 이 min-sized-rust가 제시하는 방법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최적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것은 정상적인 개발 과정이 아니라, 작은 크기를 위해 언어의 장점을 스스로 거세하는 기이하고 비정상적인 과정에 가깝습니다.

min-sized-rust 가이드가 일반적으로 제안하는 방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패닉 핸들링 포기 (panic = 'abort'): 러스트의 안전장치 중 하나인 ‘스택 되감기(unwinding)’ 기능을 비활성화하여, 패닉 시 프로그램을 즉시 중단시킵니다. 이는 관련 라이브러리 코드를 제거하여 크기를 줄이지만, 프로그램이 자원을 안전하게 정리할 기회를 박탈합니다.
  • 표준 라이브러리 포기 (no_std): 운영체제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기능(파일 입출력, 네트워크, 스레딩, 힙 메모리 할당 등)을 제공하는 표준 라이브러리(libstd)의 사용을 포기합니다. 이는 사실상 러스트를 임베디드 환경용 언어처럼 사용하는 것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던 Vec<T>, String, HashMap과 같은 핵심적인 기능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불편한 진실’입니다. 러스트 바이너리의 크기를 줄이는 방법은, 러스트가 자랑하는 대부분의 현대적이고 편리한 기능들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안전한 실패’를 보장하는 패닉 핸들링을 버려야 하고, 풍부한 기능을 제공하는 표준 라이브러리를 버려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min-sized-rust의 존재는 바이너리 크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본질적인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C언어가 기본적으로 작은 바이너리를 생성하는 반면, 러스트는 이토록 비정상적이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겨우 크기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러스트의 기본 설계가 ‘작은 바이너리’라는 목표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지를 명백히 드러냅니다. 이는 ‘범용성’이라는 신화에 가려진, 러스트의 명백한 한계입니다.

6.5. 실제 산업 적용의 한계와 회피적 해석

임베디드 시스템 및 리눅스 커널 적용의 실제적 제약 (바이너리, ABI 등)

러스트가 진정한 C/C++의 대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C/C++이 수십 년간 군림해 온 시스템 프로그래밍의 최전선, 즉 임베디드 시스템운영체제 커널 영역을 정복해야만 합니다. 러스트 커뮤니티는 ‘Rust for Linux’ 프로젝트 등을 내세우며, 러스트의 안전성이 이 분야에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홍보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장밋빛 전망 이면에는, 이 책에서 꾸준히 지적해 온 러스트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만들어내는 냉혹하고 실제적인 제약들이 존재합니다.

첫째, 임베디드 시스템의 세계에서 러스트는 ‘거대한 바이너리 크기’라는 첫 번째 장벽에 부딪힙니다. 수 킬로바이트(KB)의 플래시 메모리와 램(RAM)으로 동작해야 하는 수많은 마이크로컨트롤러 환경에서, libstd를 정적으로 링크하여 수 메가바이트(MB)에 달하는 바이너리를 생성하는 러스트의 기본 방식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러스트 생태계의 대답은 no_std 환경입니다. 이는 표준 라이브러리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바이너리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여줍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no_std 환경을 선택하는 순간, 개발자는 Vec, String과 같은 기본적인 자료구조, 동적 메모리 할당, 운영체제 추상화 등 러스트가 제공하는 대부분의 편리하고 현대적인 기능을 포기해야 합니다. 결국, 개발자는 C언어처럼 모든 것을 맨바닥부터 직접 구현하거나, 아직은 파편화되어 있는 no_std용 크레이트 생태계에 의존해야 하는, 또 다른 종류의 ‘고통’과 마주하게 됩니다.

둘째, 리눅스 커널과 같은 거대한 C언어 기반 프로젝트에 적용될 때, 러스트는 ‘C ABI에 대한 종속성’이라는 또 다른 장벽과 마주합니다. ‘Rust for Linux’ 프로젝트가 이룬 성과는 분명 인상적이지만, 그 현실을 들여다보면 러스트 코드는 커널의 ‘주인’이 아닌 ‘손님’에 가깝습니다.

러스트로 작성된 드라이버 모듈은, 커널의 다른 부분과 소통하기 위해 C언어의 데이터 구조 레이아웃(#[repr(C)])을 따라야 하고, 수많은 unsafe 블록을 통해 C 함수를 호출하며, 커널이 기대하는 복잡한 포인터 기반의 인터페이스에 자신을 맞춰야 합니다. 이는 러스트의 소유권 모델이 제공하는 순수한 안전성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현재 리눅스 커널 내 러스트의 현실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2025년 6월 30일 기준으로 kernel.org에서 배포된 리눅스 커널 6.15.4 버전을 cloc으로 분석한 결과, 순수 코드 라인(주석, 공백 제외) 약 2,878만 줄 중 러스트 코드는 약 1만 4천 줄(14,154 라인)로, 전체의 약 0.05%에 불과합니다.

아래의 요약 표는 해당 시점 커널 내 주요 시스템 언어들의 비중을 보여줍니다.

순위 언어 코드 라인 수 비율 (%)
1 C & C/C++ Header 26,590,955 92.36%
2 reStructuredText 506,910 1.76%
3 JSON 518,853 1.80%
4 YAML 421,053 1.46%
5 Assembly 231,394 0.80%
14 Rust 14,154 0.05%

(표는 주요 언어만 발췌하여 표시했습니다. 총 코드 라인 수 28,789,463 라인 기준)

현재 포함된 러스트 코드는 대부분 드라이버 작성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 수준이며, 실제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은 전무합니다. 리눅스 커널 내에서 러스트가 의미 있는 존재감을 갖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임베디드와 커널이라는 두 영역에서, 러스트의 채택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 열쇠’가 아니라, 수많은 기술적, 구조적 한계와 타협하며 특정 ‘틈새’를 어렵게 파고드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이는 러스트의 ‘범용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주장에 깊은 의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국제 표준 부재와 미션 크리티컬 벤더 지원의 어려움

러스트가 진정한 C/C++의 대체재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산업 생태계와 비즈니스 현실이라는 관점에서도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러스트가 국제 표준 언어가 아니라는 점은 특히 미션 크리티컬(Mission Critical) 분야에서 심각한 약점으로 작용하며, 관련 벤더들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을 받기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미션 크리티컬 시스템은 인간의 생명이나 막대한 재산에 직결되므로, 언어 선택에 있어 극단적인 보수성과 안정성을 요구합니다. 국제 표준(ISO/IEC 표준 등)은 단순한 ‘인증’을 넘어, 이러한 분야에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가치를 제공합니다.

  • 극도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보장: 표준화된 언어는 문법, 런타임 동작, 라이브러리 등이 예측 가능하게 유지될 것을 보장합니다. 이는 시스템의 장기적인 신뢰성과 유지보수 가능성에 필수적입니다.
  • 폭넓은 벤더 지원 생태계 형성: 항공, 우주, 국방, 의료 등 미션 크리티컬 분야의 기업들은 자체 개발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언어 개발사, 고신뢰 컴파일러 벤더, 정적 분석 툴 벤더, 컨설팅 및 교육 서비스 제공업체 등 전문 벤더들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국제 표준은 여러 벤더가 상호 호환되는 툴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공급망 전체의 안정성을 확보합니다.
  • 규제 준수 및 인증 용이성: 많은 미션 크리티컬 분야는 엄격한 국제/국가 규제(예: 항공 소프트웨어 DO-178C, 자동차 기능 안전 ISO 26262)를 준수해야 합니다. 표준화된 언어와 그를 기반으로 한 툴 체인은 이러한 규제 준수 및 인증 프로세스를 훨씬 용이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러스트는 국제 표준 언어가 아니므로, C/C++이나 Ada처럼 미션 크리티컬 분야에 특화된 광범위하고 성숙한 상업 벤더 생태계를 아직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는 해당 분야 기업들이 러스트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기 어렵게 만드는 큰 장벽입니다. 러스트가 표준화 대신 빠른 진화를 택한 것은 단기적인 혁신에는 유리할 수 있으나, 미션 크리티컬 분야가 요구하는 ‘변화에 대한 극도의 보수성’과는 상충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국제 표준 부재와 그로 인한 벤더 지원의 어려움은 러스트의 기술적 강점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장벽입니다. 이는 러스트 커뮤니티 일부의 나르시시즘적 태도가 자신들의 기술적 우월성만을 맹신하고, 산업 생태계, 비즈니스 모델, 규제 준수와 같은 복잡하고 현실적인 제약을 간과하는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줍니다.

특정 분야 외 대규모 도입의 어려움을 인정하지 않음

러스트 커뮤니티는 종종 언어의 미래에 대해 매우 장밋빛 전망을 내놓습니다. 스택 오버플로우 설문조사에서 수년째 ‘가장 사랑받는 언어’로 선정된 결과나,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거대 기술 기업들이 일부 프로젝트에 러스트를 채택했다는 소식을 근거로, 러스트가 곧 소프트웨어 개발의 주류를 차지할 것이라는 필연적인 승리의 서사를 만들어냅니다. 이 서사 속에서, 아직 러스트를 전면적으로 도입하지 않은 기업들은 마치 ‘시대에 뒤처진’ 존재처럼 비칩니다.

하지만 이러한 낙관적인 서사는, 대부분의 평범한 기업들이 러스트를 대규모로 도입하는 것을 망설이는 냉혹한 현실적인 장벽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력풀의 한계와 높은 교육 비용입니다. 러스트는 ‘가장 사랑받는 언어’일지는 몰라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와는 거리가 멉니다. 시장에는 수년 간의 실무 경험을 갖춘 숙련된 러스트 개발자가 자바나 C#, 파이썬 개발자에 비해 극소수이며, 이들의 몸값은 매우 높습니다. 기업이 기존 개발자들을 러스트로 전환시키는 데에는 앞서 분석했듯 막대한 교육 비용과 긴 생산성 저하의 기간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매우 부담스러운 투자입니다.

둘째는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필수적인 생태계의 미성숙입니다. 대규모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안정적이고 기능이 풍부한 ORM(객체 관계 매핑), 다양한 클라우드 서비스와의 원활한 통합을 위한 SDK, 복잡한 인증/인가 프레임워크 등이 필수적입니다. 러스트 생태계는 이러한 영역에서 Java나 C# 생태계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안정성과 풍부함에 아직 미치지 못합니다. 기업이 “필요하면 직접 만들어 쓰라”는 식의 오픈소스 문화를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셋째는 레거시 시스템과의 연동 및 마이그레이션 비용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시스템은 여전히 거대한 C++, Java, C# 코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들을 하루아침에 러스트로 재작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국 러스트는 이 레거시 시스템과 공존해야 하지만, 언어 간의 원활한 상호 운용(interoperability)은 그 자체로 또 다른 기술적 복잡성과 비용을 발생시킵니다.

문제는 러스트 커뮤니티 일부가 이러한 지극히 현실적인 비즈니스상의 어려움을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의 변명’ 정도로 치부하며, 그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개발자 인력풀’의 문제보다 ‘언어의 기술적 순수성’을, ‘생태계의 성숙도’보다 ‘메모리 안전성’이라는 단일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는 자신들이 선택한 도구의 기술적 우월성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믿음에 빠져, 기술이 실제로 사용되는 비즈니스 현장의 복잡하고 현실적인 제약 조건들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외면은, 러스트가 왜 아직도 특정 ‘틈새시장’을 벗어나 진정한 주류 언어로 발돋움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가장 명확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레거시 시스템과의 연동 문제, 마이그레이션 비용 등 현실적 문제 간과

러스트 우월주의 서사가 외면하는 가장 거대한 현실은, 이 세상의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새로 시작하는 ‘그린필드(greenfield)’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상은 수백만, 수억 라인의 C++, Java, C#으로 작성된 ‘레거시 시스템(legacy system)’이라는 거대한 빙산 위에 서 있습니다. 이 시스템들은 겉보기에는 낡았을지 몰라도, 수십 년간의 비즈니스 로직과 안정화 노하우가 축적된 기업의 핵심 자산입니다.

러스트 커뮤니티의 일부는 이러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그렇다면 러스트로 점진적으로 바꾸면 된다”거나, 심지어는 “전부 러스트로 재작성해야 한다(Rewrite It In Rust)”는 식의 순진한 주장을 펼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레거시 시스템과의 ‘연동’과 ‘마이그레이션’이 수반하는 엄청난 비용과 기술적 장벽을 완전히 간과하는 발언입니다.

첫째, 레거시 시스템과의 연동 문제입니다. 러스트는 C ABI 호환을 위한 FFI(Foreign Function Interface)를 제공하지만, 이것은 결코 마법의 지팡이가 아닙니다. C++의 복잡한 클래스나 Java의 객체를 러스트의 소유권 모델과 안전하게 연결하는 것은 매우 까다롭고 오류가 발생하기 쉬운 작업입니다. 이 경계면에서는 러스트가 자랑하는 컴파일러의 안전성 보장이 대부분 무력화되며, 개발자는 모든 것을 수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unsafe 코드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즉, 다른 시스템과 ‘연동’하는 순간, 러스트는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을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둘째, 천문학적인 마이그레이션 비용과 리스크입니다. 수십, 수백 명의 개발자가 수년에 걸쳐 안정화시킨 시스템을 전부 러스트로 재작성하는 것은, 단순히 코드를 번역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밑바닥부터 다시 만드는 것과 같으며, 여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과 시간이 소요됩니다. 더 무서운 것은 ‘리스크’입니다. 겉보기에는 낡았어도, 기존 레거시 코드는 수많은 버그가 수정되고 온갖 예외 상황이 처리된, ‘전투에서 살아남은 코드’입니다. 이것을 재작성하는 과정에서,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치명적인 버그가 발생할 확률은 매우 높습니다.

이는 마치, 약간 낡았지만 튼튼하고 잘 작동하는 대저택의 배관을 교체하기 위해, 집 전체를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짓자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합리적인 선택은 필요한 부분만 점진적으로 리모델링하는 것이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레거시 시스템의 존재는 러스트가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 혹은 ‘공존’의 길을 걸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비용과 리스크를 간과한 채 “모든 것을 러스트로 재작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술의 순수성만을 좇는 나머지 비즈니스와 공학의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또 다른 형태의 나르시시즘적 오만함일 뿐입니다.

“아직 초기 단계라서 그렇다”는 변명만 반복

지금까지 우리는 러스트 생태계가 가진 여러 현실적인 한계와 문제점들을 분석했습니다. 파편화된 라이브러리, 부족한 문서, 느린 컴파일 시간, 거대한 바이너리, 그리고 특정 산업 분야에서의 도입의 어려움까지.

이처럼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에 직면했을 때, 러스트의 우월성 서사를 지키려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꺼내 드는 방패가 있습니다. 바로 “아직 초기 단계라서 그렇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겁니다”라는, 모든 비판을 무력화시키는 마법의 주문입니다.

하지만 이 ‘초기 단계’라는 변명은, 이제 그 유효기간이 한참 지나버린 자기기만적인 주장에 불과합니다. 러스트는 2010년에 처음 등장하여, 2015년에 1.0 안정화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안정화된 지 이미 10년이 지났고, 세상에 등장한 지는 15년이 된 언어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IT 기술의 세계에서, 10년 넘게 발전해 온 언어를 더 이상 ‘유아기’나 ‘초기 단계’라고 부르는 것은 현실 왜곡에 가깝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변명이 러스트가 가진 문제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흐린다는 점입니다. 러스트의 여러 한계점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성장통’이 아니라, 언어의 핵심 설계 철학에서 비롯된, 앞으로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본질적인 특성(trade-off)’이기 때문입니다.

  • 가파른 학습 곡선: 이것은 보로 체커라는 안전 모델을 선택한 필연적인 ‘대가’이지, 시간이 지나면 쉬워지는 ‘성장통’이 아닙니다.
  • 느린 컴파일 시간과 거대한 바이너리: 이는 ‘제로 코스트 추상화’를 위한 모노모피제이션과 정적 링킹이라는 설계 ‘선택’의 결과이지, 언젠가 마법처럼 해결될 ‘버그’가 아닙니다.
  • C ABI에 대한 종속성: 이는 러스트가 현실 세계의 다른 소프트웨어와 공존하기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구조적 현실’이지, 언젠가 러스트가 세상을 정복하면 사라질 ‘일시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아직 초기 단계라서 그렇다”는 말은, 이러한 불편한 ‘본질적 한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된 회피적인 변명입니다. 이는 ‘언젠가는 모든 것이 완벽해질 것’이라는 신화를 유지시켜 주며, 현재 마주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논의를 가로막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지루한 변명을 넘어설 시간입니다. 러스트의 한계를 ‘성장통’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하는 것을 멈추고, 그것을 언어가 가진 명백한 ‘상충 관계’로 인정해야 합니다. 진정한 성장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4부에서는, 이 모든 비판을 바탕으로 러스트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제언을 하고자 합니다.

제4부: 나르시시즘을 넘어, 성숙한 러스트 생태계를 향하여

제7장: 러스트의 재평가: 현실적 장점, 한계, 그리고 개발자의 자세

7.1. 러스트의 실제적 강점과 ‘틈새 시장’

보안성 향상: 메모리 오류 방지와 그 실질적 가치

이 책 전반에 걸쳐 러스트를 둘러싼 신화와 과장된 서사, 그리고 커뮤니티의 병리적인 문제들을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그 모든 비판이 러스트의 핵심적인 기술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논쟁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러스트가 현대 소프트웨어 개발에 기여한 가장 중요하고 실질적인 공헌은 명확합니다. 바로 C/C++이 수십 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메모리 관련 보안 취약점의 거대한 클래스 하나를, 언어와 컴파일러 차원에서 원천적으로 제거했다는 점입니다.

잘못된 메모리 참조 오류 컴파일 시 방지

소프트웨어의 보안 취약점 역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언제나 메모리 관련 오류였습니다. 버퍼 오버플로우(Buffer Overflow), 해제 후 사용(Use-after-Free), 널 포인터 역참조(Null Pointer Dereference)와 같은 문제들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비정상 종료시키는 것을 넘어, 공격자가 시스템의 제어권을 탈취하거나 악성 코드를 실행시키는 치명적인 통로가 되어왔습니다.

C/C++에서는 이러한 오류를 막는 책임이 전적으로 개발자의 꼼꼼함과, 값비싼 정적/동적 분석 도구, 그리고 고된 코드 리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러스트는 이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러스트의 보로 체커(Borrow Checker)는, 이러한 종류의 모든 잘못된 메모리 참조 가능성을 컴파일 시점에 찾아내고, 코드가 단 한 줄이라도 규칙을 위반하면 컴파일 자체를 거부합니다.

이는 ‘런타임에 버그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영역에서, ‘컴파일만 통과하면, 특정 유형의 메모리 취약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증의 영역으로 안전성의 수준을 끌어올린, 기념비적인 발전입니다.

민감 정보 노출 방지 가능성

러스트의 메모리 안전성은 시스템의 제어권을 탈취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민감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 또한 크게 줄여줍니다. 2014년 전 세계 인터넷을 공포에 빠뜨렸던 ‘하트블리드(Heartbleed)’ 취약점은, SSL 라이브러리의 경계 검사(bounds check) 누락이라는 사소한 메모리 오류 하나가 어떻게 서버의 비밀 키나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유출시킬 수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었습니다.

러스트는 배열이나 벡터에 대한 접근 시 경계 검사를 기본으로 수행하고, 소유권 시스템을 통해 이미 해제된 메모리에 접근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합니다. 이를 통해 ‘하트블리드’와 같은 유형의 정보 유출 버그가 발생할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크게 낮춥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과 같은 거대 기술 기업들이 자사 제품의 심각한 보안 버그 중 약 70%가 메모리 안전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인정한 현실 속에서, 러스트가 제공하는 이러한 구조적인 안전성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실질적인 가치를 가집니다. 이것이야말로 러스트 커뮤니티가 자부심을 느껴야 할 진정한 기술적 성취입니다.

현실적 포지션: 클라우드, 서버 등 ‘틈새’에서의 가능성과 C/C++, Java의 벽

러스트가 제공하는 ‘메모리 안전성’이라는 강력한 무기는, 분명 모든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가치를 가집니다. 하지만 어떤 기술이 시장의 주류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우월성뿐만 아니라 생태계, 인력풀, 그리고 기존 강자들이 쌓아 올린 ‘벽’이라는 현실적인 요소들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러스트의 가장 현실적인 포지션은, 모든 것을 대체하는 ‘만능 언어’가 아니라, 기존 언어들이 가진 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어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특정 ‘틈새 시장(Niche Market)’에서의 강력한 도전자입니다.

러스트가 가장 큰 가능성을 보여주는 분야는 바로 클라우드 네이티브(Cloud-Native) 인프라스트럭처와 고성능 네트워크 서버 영역입니다. 이 분야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 성능과 안정성이 극도로 중요: 서비스의 안정성과 응답 속도가 곧 비즈니스의 경쟁력과 직결됩니다.
  • 메모리 안전성이 곧 보안: 외부의 공격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므로, 메모리 취약점은 치명적인 보안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상대적으로 새로운 생태계: 기존의 거대한 레거시 코드베이스가 적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러스트가 가진 강점(성능, 메모리 안전성)을 극대화하고, 단점(생태계 미성숙, 높은 학습 곡선)은 상대적으로 감수할 수 있게 만듭니다. 실제로 링크드인(Linkerd)과 같은 서비스 메시나, 디스코드(Discord)의 고성능 서비스, 그리고 다양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러스트로 성공적으로 개발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틈새 시장’에서 러스트는 가비지 컬렉터의 성능 저하를 피하고 싶으면서도 C/C++의 메모리 위험은 감당하기 싫은 개발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대안이 됩니다.

하지만 이 틈새를 벗어나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가려 할 때, 러스트는 두 개의 거대한 벽과 마주하게 됩니다.

  • C/C++의 벽: 수십 년간 축적된 임베디드, 운영체제, 게임 엔진, 고성능 컴퓨팅(HPC) 영역의 거대한 코드 자산과, 하드웨어에 대한 극한의 제어 능력을 요구하는 이 시장의 벽은 여전히 견고합니다. 러스트의 바이너리 크기와 유연성 부족은 이 벽을 넘기 어려운 현실적인 제약으로 작용합니다.
  • Java/C#의 벽: 압도적인 생산성과 방대한 라이브러리, 그리고 거대한 개발자 인력풀을 바탕으로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의 벽은 더욱 높습니다. 대부분의 기업 환경에서는 러스트의 원초적인 성능보다, 자바와 C#이 제공하는 개발 속도와 안정적인 생태계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집니다.

결론적으로, 러스트는 특정 ‘틈새’에서 기존 강자들의 약점을 파고드는 강력한 ‘특수부대’와 같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는 특수부대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러스트가 진정한 주류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이 틈새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삼되, 다른 거대한 벽들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에 대한 더 현실적이고 겸손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7.2. 개발자의 현명한 선택과 학습 방향

‘장밋빛 미래’에 대한 맹목적 기대 경계

지금까지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러스트가 가진 명백한 강점과 현실적인 한계를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복잡한 현실 속에서 개발자 개인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수년째 반복되는 ‘가장 사랑받는 언어’라는 타이틀, 거대 기술 기업들의 채택 소식, 그리고 커뮤니티의 열정적인 분위기는, 이제 막 기술의 세계에 발을 들인 주니어 개발자나 새로운 무기를 찾는 시니어 개발자에게 ‘러스트의 미래는 장밋빛일 것’이라는 강한 기대를 심어주기에 충분합니다. “지금 러스트를 배워두면, 미래의 유망한 기회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매우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맹목적인 기대는 개인의 커리어에 있어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커뮤니티에서의 인기’와 ‘실제 채용 시장의 수요’를 냉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러스트 개발자에 대한 채용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그 절대적인 규모는 여전히 자바, 파이썬, 자바스크립트, C++ 등 주류 언어에 비해 매우 작습니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일부 팀에서 러스트를 사용한다는 화려한 소식 이면에는, 그보다 수천, 수만 배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검증된 기존 언어 생태계 위에서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는 현실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모든 경력을 ‘러스트’라는 단 하나의 바구니에 담는 것은, 특히 커리어 초반의 개발자에게는 매우 위험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기본적인 칼질과 재료 손질법을 마스터하기도 전에, 오직 난해한 ‘분자 요리’에만 매달리는 젊은 요리사와 같습니다. 그 기술은 분명 특별하고 가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대부분의 주방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더 현명한 접근법은, 러스트를 ‘모든 것을 대체할 미래의 언어’가 아닌, ‘나의 기술적 무기고를 강화해 줄 강력한 두 번째 무기’로 여기는 것입니다. 러스트를 배우는 과정에서 얻는 시스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안전한 코드 작성 습관은,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개발자로서의 당신을 한 단계 성장시켜 줄 훌륭한 자산이 됩니다. 파이썬으로 빠른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성능이 중요한 부분만 러스트로 교체할 수 있는 개발자는, 오직 러스트만 할 줄 아는 개발자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가치 있는 인재입니다.

결론적으로, 특정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와 ‘올인’ 전략을 경계해야 합니다. 러스트의 장밋빛 미래를 믿는 것과, 그 미래가 오기까지 현실의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성숙한 개발자는 기술의 ‘신화’가 아닌, ‘현실’에 발을 딛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기초의 중요성: C/C++, 자료구조 등 보편적 컴퓨터 과학 지식의 가치

러스트의 가파른 학습 곡선에 대한 논의에서, 우리는 종종 “러스트를 배우면 시스템 프로그래밍의 기초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러스트의 소유권과 생명주기 개념은 분명 메모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주지만, 역설적으로 러스트는 진정한 ‘기초’를 배우기에 최적의 언어가 아닐 수 있습니다.

‘기초’의 진정한 가치는, 특정 언어의 화려한 기능 이면에 숨겨진, 컴퓨터 과학의 보편적이고 변치 않는 원리를 이해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를 가장 날것 그대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언어가 바로 C/C++입니다.

수동 메모리 관리의 경험: C언어를 통해 직접 mallocfree를 다루며 메모리 릭과 싸워 본 경험은, 왜 러스트의 RAII와 소유권 시스템이 그토록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줍니다. 안전한 길만 걸어본 사람은 그 길이 왜 안전한지, 그 길을 벗어났을 때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포인터 연산을 통해 메모리의 주소를 직접 넘나드는 경험이야말로, 컴퓨터 메모리의 실제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자료구조의 직접 구현: 러스트의 편리한 Vec<T>HashMap<K, V>을 사용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연결 리스트(Linked List)나 해시 테이블(Hash Table)을 C언어로 직접 구현해보는 경험은, 그 자료구조들이 어떤 시간 복잡도를 가지고, 어떤 메모리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장단점을 갖는지를 깊이 이해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이해는 단순히 라이브러리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자료구조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학적 판단력을 길러줍니다.

러스트는 이러한 기초적인 원리들을 매우 정교하게 ‘추상화’하여 개발자에게 제공합니다. 이는 매우 편리하지만, 동시에 그 추상화의 벽 뒤에 있는 진짜 원리를 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기초 공사를 직접 해보지 않은 건축가는, 잘 지어진 건물의 편리함만을 누릴 뿐, 그 건물이 왜 튼튼한지, 어떤 원리로 서 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현명한 개발자는 특정 언어의 ‘신화’에 휩쓸리기보다, 변치 않는 컴퓨터 과학의 기초에 투자해야 합니다. C/C++을 통해 메모리와 시스템의 동작 원리를 배우고, 자료구조와 알고리즘의 보편적인 지식을 쌓는 것은, 어떤 새로운 언어가 등장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가 되어줄 것입니다. 러스트는 그 뿌리 위에 피울 수 있는 아름다운 꽃이지만, 결코 뿌리 그 자체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7.3. 성숙한 기술 문화를 향한 개인의 노력

우리는 앞선 논의들을 통해 러스트 커뮤니티 일부의 나르시시즘적 태도가 어떻게 언어의 발전을 저해하고 생태계를 고립시키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순환을 끊어내고 러스트가 진정으로 성숙한 언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판’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비판을 개인에 대한 공격이나 언어에 대한 불경으로 여기는 대신, 건강한 성장을 위한 소중한 자양분으로 인식하는 열린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건설적인 비판은 단순히 문제점을 지적하는 행위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더 나은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고, 잠재된 위험을 미리 발견하며, 혁신을 촉진하는 핵심적인 동력이 됩니다. 마치 건축가가 건물의 구조적 약점을 발견했을 때, 이를 설계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는 대신 더 튼튼한 건물을 짓기 위한 정보로 활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러스트는 완벽한 언어가 아니며, 모든 문제에 대한 만능 해결책도 아닙니다. 이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변화는 시작됩니다. 러스트의 개발자들이 자신의 선호하는 언어를 진정으로 아끼고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고 비판적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마음가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우선, 비판을 공격이 아닌 기술적 피드백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러스트를 잘 몰라서 그렇다”와 같은 방어적인 태도 대신, “어떤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와 같이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특히 C++, Ada, Go 등 다른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자들의 비판에는 더욱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러스트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수십 년간 다뤄왔던 전문가들이며, 그들의 경험과 시각은 러스트가 미처 보지 못했던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비판에 대한 피드백 루프를 만들고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비판을 듣는 것을 넘어, 그것을 실제 언어 개선이나 생태계 발전에 반영하려는 가시적인 노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공식 문서나 로드맵에 커뮤니티의 비판적 의견을 반영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공유함으로써, ‘열린 자세’가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증명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건설적인 비판을 수용하는 열린 자세는 러스트가 ‘가장 사랑받는 언어’라는 수식어를 넘어, ‘가장 존경받고 신뢰받는 언어’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덕목입니다. 이는 러스트 커뮤 ‘니티가 기술적 성숙을 넘어 인간적인 성숙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제8장: 러스트의 미래: 나르시시즘 극복을 통한 진정한 성장

깊이 있는 고찰 끝에, 우리는 이제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앞선 내용들에서 우리는 러스트(Rust)라는 언어를 둘러싼 ‘완벽함’의 신화와 그 이면에 자리한 나르시시즘적 태도가 어떻게 생태계의 성숙을 가로막고 있는지 날카롭게 분석해왔습니다.

물론, 러스트는 기술적으로 훌륭한 언어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러스트를 비판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러스트 자체의 기술적 결함보다는 일부 러스트 커뮤니티에서 관찰되는 특정 문화적 현상에 있습니다. 이 현상은 지나치게 경직되고 배타적이며, 특정 기술에 대한 맹신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양상을 띠며, 이는 여타 건강한 기술 커뮤니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드문 특성으로 보입니다.

이 비판적 고찰은 러스트라는 언어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반 개발자들이 이러한 커뮤니티의 과대 주장에 휩쓸려 합리적인 기술 선택을 방해받지 않도록, 러스트 생태계의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세 가지 차원에서 러스트가 현재의 나르시시즘적 경향을 극복하고 더 건강하게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먼저 생태계의 실질적인 성장을 위한 ‘기술적 과제’를 살펴보고, 이어서 폐쇄성을 넘어 포용성으로 나아가야 할 ‘커뮤니티 문화의 개선 방향’을 논의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러스트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장의 제언들이 비단 러스트뿐만 아니라, 특정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넘어 다양한 가치와 관점을 존중하는 모든 기술 커뮤니티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청사진이 되기를 바랍니다.

8.1. 생태계의 양적/질적 성장을 위한 과제

러스트가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언어 자체의 우아함’을 넘어, 그 언어를 둘러싼 생태계 전반의 질적 성숙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자동차라도, 그 차가 달릴 도로가 비포장이고 주유소나 정비소가 없다면 그 가치는 절반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절에서는 러스트 생태계가 양적인 팽창을 넘어 질적인 성숙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고민해야 할 구체적인 기술적, 정책적 과제들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는 단순히 ‘더 많은’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것을 넘어, ‘더 신뢰할 수 있고’, ‘더 사용하기 쉬우며’, ‘더 유연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러스트 표준 라이브러리(libstd)의 ABI 안정화라는 거대한 과제

현재 러스트 바이너리의 비대함과 광범위한 시스템 영역으로의 확장을 가로막는 주요 걸림돌 중 하나는 바로 libstd의 ABI(Application Binary Interface) 불안정성입니다. 이는 러스트가 ‘제로 코스트 추상화’를 추구하고 언어 자체의 빠른 진화를 우선시하는 설계 철학에서 비롯된 의도적인 선택입니다. libc와 같은 C 표준 라이브러리가 수십 년간 ABI 안정성을 유지하며 모든 프로그램이 공유 라이브러리를 통해 동적으로 링크되는 것과 달리, 러스트는 libstd의 내부 구현 변경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ABI를 불안정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택 덕분에 러스트는 핵심 데이터 구조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언어를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모든 러스트 프로그램은 libstd의 모든 기능들을 자신의 바이너리 안에 통째로 포함시키는 정적 링킹이 사실상 필수적입니다. 이는 바이너리 크기 증가의 주요 요인 중 하나입니다

libstd의 ABI 안정화는 러스트가 특정 전문 영역을 넘어 범용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로 거듭나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실용적 과제입니다. 이를 통해 사용자 공간(user-space) 애플리케이션의 바이너리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컴파일 시간을 어느 정도 단축할 수 있습니다.

또한, libstd ABI가 안정화되면 임베디드 시스템이나 운영체제 커널처럼 자원이 매우 제한적인 환경에서도 러스트 코드를 더 쉽게 활용하고 기존 C 코드와 통합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이런 환경에서 libstd 없이 개발(no_std)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개발 복잡성을 크게 높입니다. ABI 안정화는 libstd 자체를 더 작고 모듈화하여, 이런 극한의 환경에서도 러스트의 유용한 부분을 활용할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제는 러스트의 현재 설계 철학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ABI 안정성은 언어의 빠른 진화에 제약을 가하고, 복잡한 타입 시스템과 제로 코스트 추상화를 유지하는 데 기술적인 난이도를 가중시킬 것입니다. 따라서 libstd의 ABI 안정화는 단순한 기술적 과제를 넘어, 러스트 프로젝트가 미래에 어떤 정체성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중요한 논점이 될 것입니다.

핵심 크레이트의 안정화와 표준화 노력

현재 러스트 생태계는 crates.io라는 중앙 저장소를 통해 수십만 개의 크레이트가 존재한다는 양적인 풍부함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는 ‘0.x’ 버전에 머물러 있거나, 충분한 유지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아 프로덕션 환경에서 사용하기에는 불안정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러스트의 ‘메모리 안전성’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개발자들이 실제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 주요 핵심 크레이트의 1.0 버전 달성 및 안정화 지원: 재단이나 커뮤니티 차원에서, 각 도메인(웹 프레임워크, 데이터베이스 드라이버, 비동기 런타임 등)별로 핵심적인 크레이트들을 선정하고, 이들이 조속히 1.0 안정화 버전을 달성하여 예측 가능한 API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자원봉사를 넘어, 풀타임 개발자들이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 API 설계 가이드라인 강화 및 표준화: libstd의 API는 매우 일관성 있고 잘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이 개별 크레이트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명확한 API 설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커뮤니티 차원에서 이를 장려해야 합니다. 유사한 기능을 제공하는 여러 크레이트들 간의 인터페이스를 표준화하여, 개발자들이 쉽게 크레이트를 교체하거나 조합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제공해야 합니다.
  • 유지보수 인력 확보 및 인센티브 제공: 핵심 크레이트들이 소수의 개인에게 의존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해당 크레이트들의 유지보수를 담당할 팀을 꾸리거나,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합니다. 또한, 단순히 코드를 작성하는 것을 넘어, 문서화, 버그 수정, 보안 취약점 패치 등 유지보수에 기여하는 개발자들에게도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는 ‘기존 것을 안정화하는 것’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다양한 산업 분야로의 진출을 위한 유연성 확보

러스트가 현재의 ‘틈새시장’을 넘어, 이름 그대로 ‘범용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엄격하고 비타협적인 철학에 ‘유연성’이라는 가치를 더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단 하나의 방식으로만 풀려는 경직된 태도를 버리고, 다양한 산업 분야의 각기 다른 요구사항에 맞춰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는 러스트의 핵심 가치인 ‘안전성’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안전성을 유지하면서도 더 많은 개발자와 프로젝트가 러스트를 선택할 수 있도록 진입로를 다양하게 만들고, 사용의 편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언어 자체의 유연성 확보

러스트의 가장 큰 장벽인 보로 체커의 사용성을 개선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보로 체커 ‘폴로니어스(Polonius)’처럼, 실제로는 안전하지만 기존의 분석 방식으로는 증명하지 못했던 코드 패턴들을 더 많이 수용하여, 개발자가 ‘컴파일러와의 싸움’에 들이는 불필요한 노력을 줄여주어야 합니다. 또한, unsafe 코드 작성을 위한 더 나은 가이드라인과 정적 분석 도구를 제공하여, 저수준 제어가 반드시 필요한 개발자들이 더 안전하게 ‘탈출구’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다양한 패러다임의 포용

‘제로 코스트’라는 단 하나의 이상만을 고집하는 대신, 상황에 따라 다른 트레이드오프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극단적인 성능이 필요 없는 대부분의 네트워크 서버 환경을 위해, Go의 고루틴처럼 사용하기 쉬운 ‘그린 스레드(Green Thread)’ 기반의 비동기 런타임을 ‘선택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약간의 런타임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개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면, 이는 수많은 기업에게 훨씬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

취약한 생태계에 대한 전략적 투자

러스트가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분야, 예를 들어 데스크톱 GUI 애플리케이션, 데이터 과학, 머신러닝과 같은 영역에 대한 생태계의 전략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필요하면 누군가 만들겠지”라는 방관자적 태도를 넘어, 재단이나 기업들이 직접 나서서 해당 분야의 핵심 라이브러리 개발을 후원하고, 전문가를 육성하며, 다른 언어 생태계(예: 파이썬)의 훌륭한 자산들을 쉽게 가져와 사용할 수 있는 FFI(Foreign Function Interface) 기술을 고도화하는 노력을 포함합니다.

결론적으로, 러스트의 미래는 ‘더욱 완벽하고 순수한 언어’가 되는 것에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핵심적인 가치는 지키면서도, 현실 세계의 다양한 문제와 요구사항에 맞춰 기꺼이 ‘타협’하고 ‘변화’할 줄 아는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야만 러스트는 소수의 전문가만이 감탄하는 언어를 넘어, 더 많은 산업 분야에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위대한 도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8.2. 개발 커뮤니티의 문화 개선: 폐쇄성을 넘어 열린 생태계로

‘기술적 다양성’의 존중과 ‘지적 겸손’의 회복

이 책이 앞서 길게 비판해 온 나르시시즘적 우월주의와 폐쇄적인 문화의 뿌리에는, 자신들이 선택한 기술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믿는 ‘지적 오만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러스트 커뮤니티가 진정으로 성숙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이 오만함을 버리고 ‘기술적 다양성’을 존중하며 ‘지적 겸손’을 회복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첫째, 다른 언어와 프레임워크가 가진 고유의 가치와 장점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소프트웨어의 세계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기 다른 철학과 장점을 가진 수많은 도구들이 공존하는 풍부한 생태계입니다. 자바(Java)의 안정성과 방대한 엔터프라이즈 생태계, 파이썬(Python)의 압도적인 생산성과 데이터 과학 라이브러리, Go의 단순함과 효율적인 동시성 모델은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수많은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하며 그 가치를 증명해왔습니다.

이러한 다른 기술들을 ‘낡은 것’, ‘미개한 것’, ‘장난감’으로 폄하하는 것은, 러스트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편협한 시각을 드러낼 뿐입니다. 성숙한 엔지니어는 자신의 망치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에 따라 톱과 드라이버, 렌치를 능숙하게 바꿔 들 줄 아는 사람입니다.

둘째, 모든 문제에 대한 ‘최적의 도구’는 없으며, 상황에 맞는 상충 관계(trade-off)가 존재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러스트가 제공하는 ‘성능과 메모리 안전성’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지만, 세상의 모든 프로젝트가 이 두 가지를 최우선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어떤 프로젝트는 ‘빠른 시장 출시’가, 어떤 프로젝트는 ‘낮은 학습 비용과 개발자 인력풀’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러스트는 모든 면에서 최고다”라는 주장을 버리고, “러스트는 이러이러한 상충 관계를 가진 도구이며,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문제에 가장 적합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자신감의 부족이 아니라, 공학적 현실을 이해하는 지적인 정직함의 표현입니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틀릴 수 있고,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개인의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지적 겸손’은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타인과 협력하며, 실수를 통해 성장하는 모든 과정의 출발점입니다.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사람은 더 이상 배울 수 없습니다. “나는 틀릴 리 없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의 오류를 수정할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됩니다.

비판적인 의견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대신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겠네요.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바로 그 용기가 나르시시즘의 굴레를 끊고, 개인과 커뮤니티 모두를 진정한 성장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입니다.

‘질문하는 문화’의 개선과 심리적 안전 공간 만들기

지적 겸손을 회복하고 기술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는, 커뮤니티 내부에서 다른 개발자를 대하는 방식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특히, 언어의 가파른 학습 곡선 앞에서 좌절하고 있는 초보 개발자들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그 커뮤니티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척도입니다. 이 책이 앞서 비판했던 ‘가스라이팅’과 ‘게이트키핑(gatekeeping, 특정 집단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려는 배타적 행위)’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안심하고 질문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 공간(Psychologically Safe Space)’을 만드는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첫째, “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는 원칙을 존중하고, 초보자의 좌절에 공감해야 합니다.

숙련된 개발자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소유권 규칙이나 생명주기 오류는, 초보자에게는 거대한 벽과도 같습니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이 아무리 기초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수준 낮은 질문’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질문의 내용이 아니라, 그 질문을 하기까지 겪었을 상대방의 좌절감에 먼저 공감하는 것이 성숙한 자세입니다.

“그건 공식 문서 3장에 나와 있습니다”라는 건조한 답변 대신, “그 부분은 저도 처음 배울 때 정말 헷갈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니 걱정 마세요”라는 공감의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러한 공감대는 질문하는 사람이 느끼는 심리적 위축감을 해소하고, 더 자유롭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둘째,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대신, 시스템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호소에 대해 “노력이 부족하다”거나 “다른 언어의 나쁜 습관 때문이다”라고 답하는 것은,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폭력적인 행위입니다. 성숙한 커뮤니티는, 러스트라는 언어 자체가 본질적으로 복잡하고 어렵다는 시스템의 현실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복잡한 시스템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합니다. 단순히 공식 문서의 링크를 던져주는 ‘RTFM(Read The Fucking Manual)’ 식의 권위적인 태도를 지양해야 합니다. 대신, 오류가 발생하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주거나,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코드 조각을 보여주거나, 혹은 더 나은 설계 방향을 함께 고민해주는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초보자의 질문을 환영하고 그들의 좌절에 공감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은 단순한 ‘친절 운동’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 좌절하던 초보자가, 내일은 생태계에 기여하는 숙련된 개발자가 되고, 마침내는 또 다른 초보자를 이끌어주는 멘토가 되는, 생태계의 건강한 선순환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투자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대신, 시스템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도움 제공하기

개발자가 특정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것이 개인의 역량 부족 때문이라고 단정 짓는 대신, 언어나 라이브러리의 복잡성, 문서의 불충분함 등 시스템적인 문제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코드 예시나 문서 링크를 제공하고, 필요하다면 직접 디버깅을 돕는 등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합니다.

‘비난’이 아닌 ‘건설적 비판’과 ‘협력’의 문화 조성

지적 겸손을 회복하고, 초보자의 질문을 환영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러스트 커뮤니티는 비판 그 자체를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완벽한 언어’라는 신화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던 비판을, 이제는 생태계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면역 체계’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첫째, 언어의 단점이나 생태계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를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자신감 있는 커뮤니티는 자신들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공개적인 토론을 장려합니다. 러스트의 리더십 그룹과 영향력 있는 개발자들은, “러스트로 개발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점”, “현재 생태계의 가장 큰 구멍은 무엇인가”와 같은 주제에 대해 먼저 입을 열고, 커뮤니티 전체가 이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비판적인 블로그 글에 ‘좌표’를 찍어 공격하는 대신, 그 글을 커뮤니티의 공식적인 토론 채널로 가져와 “좋은 지적입니다. 함께 해결책을 고민해 봅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외부 커뮤니티와의 소모적인 ‘언어 전쟁’을 중단하고,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기술 교류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러스트 vs. C++’, ‘러스트 vs. Go’와 같은 대립 구도는, 단기적으로는 커뮤니티의 결속력을 다지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러스트를 고립시키고 기술적 시야를 좁게 만들 뿐입니다. 다른 언어는 타도의 대상이 아닌, 배움의 대상입니다. C++의 방대한 역사 속에서 어떤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 배우고, Go의 단순함이 어떻게 놀라운 생산성으로 이어지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다른 언어의 성공을 깎아내려야만 우리의 가치가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기반으로서, 비판을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생태계 발전을 위한 소중한 피드백으로 여기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의 코드는 내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선호하는 언어는 내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러스트에 대한 비판은 당신의 지성이나 노력, 혹은 정체성에 대한 공격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당신이 아끼는 도구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제언일 뿐입니다. “당신은 틀렸다”는 말 대신,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커뮤니티의 진정한 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성숙하게 비판을 수용하고, 그 비판을 성장의 동력으로 삼는가에 있습니다. 비난과 조롱이 아닌, 건설적인 비판과 협력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질 때, 러스트는 비로소 ‘가장 사랑받는 언어’를 넘어, ‘가장 존경받는 언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8.3.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러스트의 가치

(나르시시즘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안전성”과 “성능” 추구

‘안전성’과 ‘성능’은 러스트라는 언어의 정체성을 이루는 두 개의 위대한 기둥입니다. 이 가치들은 앞으로도 러스트가 흔들림 없이 추구해야 할 핵심 목표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지적했듯이 이 숭고한 가치들은 종종 다른 언어를 깎아내리고, 커뮤니티의 우월성을 과시하며, 새로운 개발자를 배척하는 ‘나르시시즘적’ 도구로 변질되어 왔습니다.

진정한 성장은, 바로 이 두 가치를 나르시시즘의 오염으로부터 구해내어, 그 본래의 더 깊고 넓은 의미를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첫째, ‘진정한 안전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나르시시즘적인 안전성은, ‘Undefined Behavior의 부재’라는 기술적 정의에만 집착하며 “우리는 C/C++보다 안전하다”고 선언하는, 배타적이고 자기 만족적인 안전성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안전성은 그보다 훨씬 더 넓은 개념입니다.

  • 그것은 메모리 오류를 막는 기술적 안전성을 넘어, 프로그램이 의도대로 정확히 동작하는 논리적 정확성을 포함합니다.
  • panic으로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는 ‘안전한 실패’를 넘어, 예상치 못한 오류에도 시스템이 살아남아 임무를 지속하는 강건한 회복력(Resilience)을 포함합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 개발자가 컴파일러와의 싸움이나 커뮤니티의 비난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안심하고 코드를 작성하고 질문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성까지 포함합니다.

진정한 안전성은 단순히 ‘메모리로부터 안전한 코드’가 아니라, ‘그 코드를 만들고 사용하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신뢰의 생태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 ‘진정한 성능’을 추구해야 합니다.

나르시시즘적인 성능은, 다른 언어와의 벤치마크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나노초(nanosecond)를 다투는, 과시적인 성능입니다. 이 과정에서 개발자의 생산성이나 긴 컴파일 시간과 같은 현실적인 비용은 쉽게 무시됩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성능은 기계의 CPU 사이클만으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 그것은 빠른 런타임 성능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개발자의 생산성을 포함합니다.
  • 빠른 초벌 빌드를 넘어, 거대한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유지보수하고 개선해나가는 장기적인 유지보수성을 포함합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개발자가 느끼는 즐거움과 성취감이라는, 인간적인 성능까지 포함합니다.

진정한 성능은, 기계가 아닌 인간을 중심에 둘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개발자가 행복하고 생산적일 때, 가장 빠르고 훌륭한 소프트웨어가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러스트는 이제 ‘안전성’과 ‘성능’이라는 단어를 다른 이들을 배척하는 칼이 아닌, 더 많은 이들을 포용하는 방패로 사용해야 합니다. 나르시시즘적 자기만족을 넘어, 개발자와 사용자 모두를 위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할 때, 러스트는 비로소 그 위대한 잠재력을 모두 꽃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개발자의 행복과 생산성 증진에 기여하는 언어

러스트를 논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는 바로 스택 오버플로우 설문조사에서 수년째 차지한 ‘가장 사랑받는 언어’라는 타이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랑’이라는 단어의 실체를 신중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설문조사의 ‘사랑’은, 해당 언어를 경험해 본 개발자 중 계속 사용하고 싶다고 답한 비율을 나타내는 ‘선호도’ 지표에 가깝습니다. 여기에는 러스트의 이상적인 철학에 매료되었거나, 취미로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 강력함을 맛본 수많은 개발자들의 긍정적인 ‘첫인상’이 크게 반영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과연 실제 프로덕션 환경에서 수개월간 러스트와 씨름하며 마감일에 쫓기는 개발자의 일상적인 ‘행복’‘생산성’을 온전히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이 앞서 길게 분석했듯이, 러스트를 사용하는 경험은 종종 ‘고통’과 ‘좌절’을 동반합니다.

따라서 러스트가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는, 설문조사의 화려한 타이틀을 넘어, 코드를 작성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고, 개발자를 행복하게 만들며, 그 결과로 생산성을 극대화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개발자의 행복’은 단순히 감성적인 구호가 아닙니다. 이것은 소프트웨어의 품질과 팀의 성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생산성 지표입니다.

  • 행복한 개발자는 창의적입니다: 컴파일러와의 싸움에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문제 해결의 본질에 집중하며 더 나은 설계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 행복한 개발자는 생산적입니다: ‘몰입(flow)’의 상태에서, 언어는 장벽이 아닌 생각의 자연스러운 확장 도구가 됩니다. 이는 개발 속도의 향상으로 직접 이어집니다.
  • 행복한 개발자는 쉽게 지치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좌절과 스트레스의 감소는, 개발자의 번아웃을 방지하고 장기적으로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는 건강한 동력을 제공합니다.

결론적으로, 러스트의 성공을 측정하는 기준은 더 이상 ‘벤치마크 점수’나 ‘선호도 조사 순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많은 개발자가 러스트를 사용하며 ‘짜증’이 아닌 ‘즐거움’을 느끼는가, 얼마나 많은 팀이 러스트를 통해 ‘생산성의 향상’을 경험하는가가 새로운 성공의 척도가 되어야 합니다. 개발자의 행복에 기여하는 언어야말로, 진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지속 가능한 발전과 상호 협력적인 생태계 구축

우리는 지금까지 러스트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의미의 ‘안전성’, ‘성능’, 그리고 ‘개발자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모든 가치를 실현하고, 러스트가 반짝이는 유행을 넘어 다음 수십 년을 책임지는 위대한 언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지속 가능한 발전’과 ‘상호 협력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첫째, ‘영웅의 희생’이 아닌 ‘시스템’에 의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러스트의 눈부신 발전은, 소수의 핵심 개발자들이 보여준 영웅적인 헌신과 희생에 크게 의존해왔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열정에만 의존하는 생태계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핵심 개발자의 번아웃은 곧 생태계의 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지속 가능성은, ‘영웅’이 없어도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앞서 제안했듯이, 핵심 인프라(라이브러리, 문서, 툴링)의 유지보수에 대해 정당한 자원을 투자하고, 새로운 기여자들이 쉽게 유입되어 다음 세대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기적인 성과나 새로운 기능 추가에 대한 열광을 넘어, 장기적인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둘째, ‘언어 전쟁’을 넘어선 ‘상호 협력적인 생태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러스트의 정체성은 오랫동안 ‘C++의 대안’이라는 구도 속에서 형성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신감은, 더 이상 경쟁자를 깎아내리지 않고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 때 생겨납니다. 이제 러스트는 다른 언어를 ‘타도해야 할 적’이 아닌,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동료’로 인식하는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C++ 생태계가 수십 년간 쌓아온 거대 시스템 운영의 노하우를 존중하고 배워야 합니다.

Go 언어가 보여준 동시성 모델의 단순함과 높은 생산성에서 영감을 얻어야 합니다.

Ada/SPARK가 지키고 있는 ‘수학적 증명’이라는 안전성의 정점에 대해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들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러스트 커뮤니티가 먼저 손을 내밀고, 다른 언어 커뮤니티와의 건강한 기술 교류와 상호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 러스트는 ‘고립된 섬’이 아닌, 전체 소프트웨어 공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열린 대륙’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러스트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모습은, 몇몇 기술적 지표에서 1등을 차지하는 ‘승리하는 언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안정적인 시스템 위에서, 행복한 개발자들이, 다른 생태계와 즐겁게 협력하며,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언어입니다. 이러한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나르시시즘을 극복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자, 러스트가 진정으로 위대해지는 유일한 길이 될 것입니다.

결론: 러스트여, 나르시시즘을 버리고 겸손해져라

러스트의 잠재력은 여전히 큽니다. 이 책에서 지적한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러스트가 시스템 프로그래밍의 역사에 중요한 진보를 이루어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적 태도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발전을 저해합니다. 자신들의 방식을 유일한 진리라 믿고, 다른 모든 기술을 폄하하며, 비판에 귀를 닫는 문화는 결국 그 잠재력을 스스로 갉아먹는 독이 될 뿐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현상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풍미했던 ‘리눅스 vs. MS윈도우’의 대립, 즉 ‘오픈소스’와 ‘비오픈소스’ 진영 간의 ‘성전’ 속에서도 우리는 이와 똑같은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한쪽은 ‘자유와 공유’라는 도덕적 우월감을, 다른 한쪽은 ‘안정성과 편의성’이라는 실용적 가치를 내세우며, 서로를 ‘악’이자 ‘결함투성이’로 규정했습니다. 기술적 장단점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은, 종종 진영 논리에 기반한 맹목적인 비난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처럼 특정 기술 커뮤니티에서 나타나는 과도한 동일시, 배타성, 그리고 비판에 대한 방어적 태도는 소수의 병리적인 나르시시스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 본연의 자기애적 특성이 특정 환경(예: 온라인 커뮤니티의 익명성, 집단의 동질성)에서 과도하게 발현될 때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인 심리 현상입니다. 따라서 러스트 커뮤니티에서 관찰되는 모습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기술 커뮤니티가 경계하고 성찰해야 할 ‘인간적인’ 그림자입니다.

따라서 러스트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한 자기 성찰과 외부와의 소통을 통해 진정한 “우월함”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는 기술의 완벽함이 아닌,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기술의 가치를 존중하며, 비판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는 성숙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모두에게 더 나은 시스템 프로그래밍 언어가 되기 위한 러스트의 새로운 시작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